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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Dec 28. 2016

런던의 조용한 크리스마스

영국 워킹홀리데이 #8 Merry Christmas from London

10월 중순, 런던 거리는 이곳저곳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느라 분주했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인 옥스퍼드 서커스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가장 화려하게 달리는 곳들 중 하나라, 조명을 다 설치할 때까지 늦은 밤 시간에는 도로 군데군데가 폐쇄되고는 했었다. 덕분에 집 가는 버스 경로가 달라지고, 집 가는 시간이 평소보다 배로 걸려서 2달도 넘게 남은 크리스마스인데 다들 왜 벌써부터 이리도 유난일까 투덜투덜 댔었다.




영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란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당연한 투덜거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크리스마스는 보통 연인들의 날로 인식된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커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커플들이 거리를 꽉 메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에 따라 ‘이번 크리스마스는 누구랑 보내?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 있어?’가 당연한 질문이 되어버린다. 이런 한국과는 달리, 런던의 크리스마스는 가족 대명절이다. 크리스마스는 누구나 인식하는 공휴일,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미리 요리할 것들을 사두고, 당일에는 친지들끼리 오순도순 모여 집에서 거한 식사를 하고 간단한 술을 곁들인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에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거리에는 차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 전까지 떠들썩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도시 전체가 고요해지는 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을 제외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매일이 축제 같은 분위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갔는데 산타 복장을 입은 무리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거나, 다른 산타 복장을 입은 무리들이 오토바이를 줄지어 타기도 하고, 거리에 캐롤이 나오면 다 같이 합창을 하기도 한다.

산타복을 입은 오토바이 행렬
분주한 카나비 스트릿
역시나 분주한 리젠트 스트릿

우리 가게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옴에 따라 계속 바빠졌고, 크리스마스 전 주 금요일에는 약 2만 3천 파운드, 한화로 3천만 원이 훨씬 넘는 매출을 올리며 평소 금요일보다 2~3배는 많은 판매액을 세웠다. 숫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내가 몸소 느낀 바쁨을 표현하는 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날 나는 너무 바빴던 탓에 쉬는 시간 한 번 갖지 못하고 거의 10시간을 내리 일했고, 가게 친구들 누구와도 잠깐의 담소조차 나누지 못했으며, 손님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어 가게를 돌며 빈 잔들을 모으지도 못했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나서는 가게에 잔이 아예 없어서 손님들에게 술을 팔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입을 떡 벌리니, 가게 제너럴 매니저 브루스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전체가 영국인들에게는 축제와도 같다며 허허 웃었다.




‘크리스마슨데, 한국에 안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연인의 날, 영국에서는 가족의 날. 그래서 그런지 이 질문은 이 두 나라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각기 다른 인식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질문인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때 뭐 하냐는 질문을 잘 하지 않았다. 가족과 보내는 게 당연하니까. 대신 나에게는 수없이 똑같은 질문들이 날아왔다. ‘크리스마슨데, 한국에 안가?’. 안 간다고 하면 곧 이어 이어지는 질문이 또 있다. ‘그럼 뭐 할 계획이야?’


글쎄, 처음 영국 크리스마스에 대한 개념이 아무 것도 없을 때는, 타국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두근댔다. 거리에 반짝이는 온갖 크리스마스 조명들, 캐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얼마나 거리가 더 활기찰까 두근댔다. 하지만 곧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모든 게 정지되어서 마치 서울이 추석이나 설날에 고향에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람들 때문에 고요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아니 그것보다 더 죽은 도시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도 갈 수 없는 마당에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영국에 있지만 출신이 영국이 아닌,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가게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꾸리기로 했다. 사실 파티를 계획한다고 말하기도 뭣한 게, 난 그냥 초대만 받은 상태였다. 파티를 초대해준 키아라, 그리고 고향에 가지 않는 리카르도와 루카스까지 우리 가게 친구들은 총 4명이 참석하게 될 예정이었고, 이외에도 키아라네 플랏 메이트들의 친구들까지 해서 꽤 많은 인원이 키아라네 플랏에 모이게 될 예정이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당일에 찾아 간 키아라네 플랏은 큰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이 공간들은 침실들이 있는 층과 다른 층에 위치해 있어서 파티를 해도 절대 불편할 게 없어보였다.



크리스마스 당일의 교통


나는 크리스마스 당일 키아라네에 가기 위해 우버를 불러야 했다. 우버는 말하자면 개인 택시 개념의 이동수단. 앱을 깔고 카드를 등록한 뒤 픽업 포인트와 도착지를 설정해 놓으면 최단 경로, 예상 요금이 다 나오고, 근처에 있는 기사님들 중 하나가 내 콜을 받으면 기사님의 프로필과 자동차 기종까지 전부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를 타기 전, 후에도 전부 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앱으로 다 확인할 수 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귀찮게 내릴 때 요금을 결제할 필요도 없이 바로 바로 카드에서 돈이 빠져 나간다. 일명 블랙캡이라고 불리는 택시는 영국에서 너무 비싸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4파운드의 추가 요금이 더 붙기 때문에 나는 우버를 선택했다. 평소 같았으면 지하철을 타고 가면 키아라네까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도착하겠지만 이 날은 크리스마스. 모든 교통수단 또한 정지되는 날이다. 나는 자가용이 없으니 다소 돈을 많이 지불하더라도 우버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우버를 타러 나오니 거리에 차도 별로 다니지 않고, 사람도 없이 한산했다.

차를 타고 키아라네로 향하는 도중 보이던 거리의 많은 상점들 역시 전부 문을 닫았다. 한산한 거리를 보며 따뜻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을 부엌, 트리 밑에 놓인 양말과 선물들, 아이, 어른 너나할 것 없는 웃음이 넘쳐나고 있을 전형적인 영국의 가정집을 상상했다.



푸짐한 식탁, 크리스마스 파티


여차저차 도착한 키아라네 집.

전화를 걸자 키아라가 마중을 나왔고, 들어가서 키아라네 플랏 친구들, 플랏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모두 악수와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부엌에 들어가자 키아라네 플랏 메이트 벤과 알렉스의 어머니가 이탈리아 음식을 잔뜩 하고 계셨다. 키아라는 이탈리아 출신, 그래서인지 같이 사는 친구들도 전부 이탈리아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의도치 않게 영국에서 이탈리아 식탁을 체험하게 됐다.

라자냐, 구운 파스타, 버섯 리조또까지. 남아도 모자라지는 않게 만들어야 한다며 음식을 잔뜩 해주신 어머니들. 이건 그냥 시작일 뿐, 이후에도 두 번째 코스와 후식을 잔뜩 꺼내주셔서 배가 터져라 음식을 먹었다. 음식과 함께 곁들여 와인도 먹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 노래들을 듣고, 거실에 달아 놓은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는 걸 보고 있자니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가 시작되자 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디제잉을 하기 시작했다. 벤 역시도 바텐더인데, 테크노 음악을 좋아해서 이렇게 기기를 마련해놓고 거실에서 종종 음악을 튼다고 한다. 다들 술에 취해 흥이 나자 일어나서 춤판이 벌어졌다.



마지막 Merry Christmas


완전한 밤, 아주 깜깜한 밤이 찾아오자, 하나 둘 씩 소파에 주저앉아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영화였다. 벽 한 켠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을 제외하고는 깜깜한 거실, 모두 조용히 앉아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꾸벅꾸벅 졸았다.

좀 전까지 떠들썩했던 게 무색하게 갑자기 모두에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서로 간간히 나누던 조용한 대화 소리, 하나 둘 씩 잠을 자러가며 나누는 ‘Merry Christmas' 인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항상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인사를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 날은 진짜 크리스마스 당일,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날일 거다.

난 홀로 영국이고, 가족들은 전부 한국에 있다. 가족들과는 크리스마스 인사도 핸드폰을 보며 나눈 음성이 전부였지만, 영국에서 이렇게 크리스마스에 날 불러주고, 따뜻한 음식을 먹여주고, 무엇보다도 아낌없이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 한켠에 차오르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잠깐 달랠 수 있었다. 꽤나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두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고 복작거렸던 거리, 가게들, 모두 꿈 같이 느껴졌다. 이제 너무나 친숙해진 크리스마스 캐롤, 거리의 장식들, 하다못해 빨간 산타 모자와 빨간 네일, 빨간 립스틱까지. 그리고 다들 그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듯 건네던 ‘Merry Christmas' 인사가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한국에 있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낸 적이 별로 없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은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였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나는 연말에 늘 서울에 있고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다보니까 그랬다. 생각해보니 작년 크리스마스도 친구들과, 재작년 크리스마스도 친구들과 보냈었다. 다시 말해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별로 가족이 떠오르는 날이 아니었다. 그냥 애인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하하호호 떠들며 술자리를 가지는 날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가족들을 위한 날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 자체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정말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내가 영국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리에 있었고, 함께 집에서 만든 음식을 나눠 먹고, 한 식탁에 앉아 함께 잔을 기울이고, 함께 늘어지고, 웃고 떠들고. 이 정도면 그래도 영국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치고는 나름 영국식으로, 화기애애하게 보낸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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