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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Mar 22. 2017

들었다 놨다, 런던 날씨

영국 워킹홀리데이 #10 그래도 난 네가 좋아


영국에 산다고 하면 꼭 듣는 말 몇 가지가 있다.

'음식 맛없지 않아?'

'영국 영어 어렵지 않아?'

'거기 맨날 비 오지 않아?'


그중에서도 날씨에 관련된 질문을 많이 듣는다. 항상 흐리다던데, 우울하지 않느냐고.





맞다, 런던은 비가 많이 온다.

사실 많이 온다기보다 자주, 조금씩 내린다고 해야 더 맞는 말일 거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우산을 챙겨 들고나가는 날에는 금세 비가 멎고 눈 앞에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도 하고, 우산은 생각지도 못한 날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런던에 내리는 비는 가랑비, 우산을 펼쳐 들기가 민망하게 만드는 작은 빗방울들이다. 비를 맞다 보면 내가 비를 맞는 게 아니라 축축한 주위의 공기에 둘러싸여 그 공기를 들이마신다는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물론 머리를 공들여 손질한 날은 빼고.  


가끔 런던은 가랑비라기보다는 이슬비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것 같은 빗방울을 뿌리기도 한다. 가랑비에는 내가 축축하게 스며든다면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머리에, 피부에, 비가 닿는 곳마다 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런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앞머리에 맺힌 빗방울들을 털어내느라 자꾸만 머리카락들을 비비적대게 된다.


자주 볼 수 있는 하늘 색깔



요즘 런던에는 봄 냄새가 물씬 풍긴다.

걷다가 문득 폭신한 느낌에 발 밑을 보면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있기도, 나도 모르는 새에 집 앞 나무들에 꽃이 피어 있기도 한다. 그 꽃들이 파란 하늘과 함께 시야에 들어올 때면 '봄이구나' 싶다. 봄이 오고 있어서 그런지 부쩍 런던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날들도 잦아졌다. 요즘 하늘은 이틀에 한 번 꼴로 파랗게 고개를 내민다. 얼마 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개서, 일 하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다짐하고 1시간 장장을 걸었다.


기분이 좋아 하루 종일 걸어다녔던 날



나는 이런 런던의 날씨가 싫지 않다.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면 친구들과 목적지까지 깔깔대며 서둘러 걷는 그 웃음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때로는 우산이 있는 한 명에게 다들 착 달라붙어 몸을 꼭 맞대고 걷는 그 온기가 좋다. 가끔은 비가 좋아서 작정하고 비를 맞기도 한다. 피부에, 머리칼에 들러붙는 축축함이 좋다. 비가 내린 후 맑고 차가워지는 공기를 들이쉬려 일부러 크게 호흡하기도 한다. 비 온 뒤 축축한 거리에 발을 디딜 때 느껴지는 그 푹신푹신함, 들이쉬면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 거기에 서서히 드러나는 파란 하늘도 함께라면 걷는데 이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 비 온 뒤의 공기와 함께 햇살까지 내리쬐면 금상첨화다. 내리쬐는 따뜻함과 비의 촉촉함, 차가움이 동시에 몸에 닿는 기분이란. 해가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보통 비 온 다음은 해가 뜰 걸 알기에 괜찮다. 그리고 '어제는 비가 왔었지'하고 떠올리며 그 날의 해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해진다. 런던 사람들이 해가 쨍한 날이면 너 나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돗자리도 없이 잔디에 드러눕는 까닭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축축한 길, 파란 하늘, 시원한 공기


오늘도 아까까지 비 내가 내리더니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해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오늘도 일하러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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