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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May 04. 2017

너희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웃음이 나와

영국 워킹홀리데이 #13 가끔 내 진짜 이름이 낯설기는 해도


나는 여기서 그냥 '조(Jo)'가 되어버렸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단순히 외국인들 입장에서 부르기 쉽다는 이유로 나는 여기저기 내 소개를 할 때마다 내 이름을 단순하게 '조'라고 소개했다. 대개 많은 한국인들이 '리, 킴, 팍' 등의 이름으로 불리길 택하는 것과 같이. 그러면 보통 연이어 날아오는 질문이 있다.

"그거 네 진짜 이름이야?"


그럼 나는 그제야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인다.

"아, 사실 Jo는 내 진짜 이름이기는 한데 내 성이고, Suyeong이라는 진짜 한국에서 불리는 이름이 따로 있어."


맞다, 내 진짜 이름은 수영이다.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다시피 '조'는 나의 성(family name)이다. 굳이 여기서 '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택한 건, 외국인들에게는 이게 부르고 기억하기 더 편할 테니까. 단순히 말하자면 그들의 편의를 고려한 셈이다. 내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도 만들어 세웠다. 나는 영어 이름을 아예 새로 만들지는 않았다며, '조'가 내 성이기는 해도 진짜 내 이름의 일부니까 나는 내 진짜 이름을 쓰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그게 네 진짜 이름이냐, 혹은 그럼 네 성은 뭐냐, 물어볼 때마다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다. 또 간혹 가다가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령 매달 월급과 세금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페이 슬립에 내 성이 Suyeong으로, 이름이 Jo로 반대로 나와있다던가(매일 나를 Jo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진 매니저가 깜빡하고 저지른 실수였다), 자기 친구의 친구도 한국인이고 이름이 '조'인데 네가 혹시 그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던가(나는 그 사람이 아니었고, 그분도 그저 여기서 자기 성으로 이름 불리기를 결정한 흔한 한국인 중 하나였을 거다). 어찌 됐든 '조'라고 불리는 게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 요즘은 거리에서 누가 '조'라는 이름을 조그맣게 부르기라도 하면 혹여나 누가 나를 불렀나 싶어서 고개를 돌려 두리번두리번 거리기까지 하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자꾸 옆에서 쏘영, 쑤용, 쒀용 하는 소리를 내서 어리둥절 쳐다봤다. 리카르도였다. 몇 초 뒤에 그게 내 이름이라는 걸 깨닫고 깨닫고 씩 웃으며 리카르도에게 물어봤다. "그거 내 이름이야?"


어떻게 불러야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리나 긴가민가해하며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던 리카르도. 그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말이지, 20년 넘게 불리던 수영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몇 달 동안 여기서 '조'라고만 불려 와서 벌써 그게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영어 원어민이 내는 어색한 수영이라는 발음 때문이었나?



리카르도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이때 리카르도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며 내 진짜 first name이 뭔지 잠깐 스치듯 얘기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내가 "조라고 불러줘."하면 알겠다며 수긍하는데, 리카르도만 굳이 왜 그대로 수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냐며 물어봤었다. 낯선 이름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익숙해질 텐데 하며. 나는 그때 내 진짜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렵지 않냐고, 괜찮다고 웃어넘겼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리카르도는 꾸준히 나를 '수영'이라고 부르려고 애썼다. 물론 주위 친구들이 모두 나를 '조'라고 부르니까 대개는 조-하고 말을 붙이기는 하지만, 가끔 '아, 얘 진짜 이름은 다른 건데!'하고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오르나 보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면, 금세 리카르도는 나를 '수영!'하고 부른다. 그 표정은 '아차차, 수영! 수영이라고 불러야지!' 하는 표정이겠지.


지금도 리카르도는 다른 친구들이 "네 First name이 뭐였더라?"하면 갑자기 등장해서 "쑤용!"하고 대신 대답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가끔 손님들이 내 이름을 물어볼 때면 불쑥불쑥 대화에 끼어들어 또다시 "쑤용!" 하고 씨익 웃고 가기도 한다.


'Jo'라는 이름에 익숙해졌다. 내가 불리기로 선택한 이름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부르면서 차츰 이 '조' 자체가 이곳에서의 나로서 자리 잡는 느낌이 들어 싫지 않다. 그럼에도 내 진짜 이름을 불러주려고 노력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그 덕에 영국에서 '수영'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느꼈던 어색함도 많이 사라졌다. 사실 이 친구들이 쑤여엉-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귀여워서 좋기도 하고. 아니, 그래도 내 진짜 이름을 들을 때마다 히죽 웃음이 나오는 건 스쳐가며 말했던 내 진짜 이름을 기억해주고 불러주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대한 기쁨, 고마움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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