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조드푸르의 한 카페에서
천장에서 팬이 핑글핑글 위태롭게 돌아가고, 밖에서는 오토바이들이 시끄럽게 빵빵거리고, 나는 다음에 어디를 갈지 오늘 무엇을 할 지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상태다. 꼭 무언가를 봐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다니고 싶었던 여행이라, 알람도 꺼두고 실컷 늦잠을 자다가 아침 일찍 문 연 카페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더운 여름에 몬순이라는 계절풍 때문에 일년 중 드물게 비가 자주 오는 요즘의 인도는 비수기인지라 문을 연 가게가 많이 없다. 겨우 아침 겸 점심을 떼울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김종욱 찾기 촬영지, 공유가 밥을 먹은 곳이란다. 내 앞에서 공유 사진을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직원들에게 아아, 네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한 뒤 자리에 앉았다. 더위를 먹은 걸까, 종일 멍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누가 뭘 말해도 끄덕끄덕 대꾸가 최선이다. 오늘은 길에서 누가 헬로니, 재팬이니, 코리아에서 왔니 뭐니 말을 걸어도 한 번 쳐다보고 희미하게 웃고서는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힌디어는 하나도 못 알아 들으니까 영어로 괜히 말 거는 사람만 없으면 현지인들이 떠드는 소리는 그냥 공간음처럼 풍경 속에 녹아 든다. 그 누구의 말에도 집중할 필요가 없고 애써 이해할 필요도, 듣고 싶지 않은 대화가 머리에 저절로 들어오는 일도 없다. 머리 속이 새하얗게 비워져서 깨끗하다. 뭐든 정돈되어 있고, 규칙이 있는 서울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사실 뭐든 순서와 규칙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만 조금 어긋나도 눈에 쉽게 띄니 까 혹시나 내가 틀린 게 아닐까, 고쳐야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 속에서 그 어떤 때보다 편안하고 고요하게 멈춰 있다. 어떤 의미에서 무질서나 혼란이 오히려 초조함과는 대척점에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대척점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