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볼이 불긋해지기 시작한다.
태열증상이란다.
초보엄마가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보니 수딩젤 같은 것들을 발라줘야 한단다.
가격을 찾아봤다.
[20000원]
터무니 없었다.
집에 쌀도 없는데,
그 돈이면 한참 먹을 쌀도 살텐데.
유아용품은 왜 그렇게 비싼건지...
무슨 종류는 또 그렇게 많은건지...
이걸 다 사려면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건지...
숨이 막혀왔다.
우리 형편에 이걸 살 돈이 있기나 할까?
이걸 남편한테 얘기하면?
얘기한다고 답이 나오기는 할까?
주변에 당장 손이야 벌려볼 수도 있겠지...
출산 선물 달랍시고 얼굴에 철판깔고 연락 한번 쭉 돌려봐?
그래.. 당장 몇개 용품 구할 수야 있겠지....
그런데..?
그 다음엔...?
쓰던 용품들 다 떨어지고 나면?
우리 살림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있을까?
로또라도 자동으로 딱 당첨되어 나타나 줄까?
"하아........ 눈물나네..."
솔직히 [비참하다]라는 감정이 살갗을 파고들어 뼛속까지 사무쳤다.
온 몸에 혈관을 피가 돌아 다니듯 비참, 비통, 슬픔이 온 몸에 가득차 올랐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하루 2시간 잠을 자 가면서 캐나다에서 요리를 배우고 쉐프를 한걸까?
결혼 후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삶이 힘들다는게 정말 이런걸 얘기했던걸까?
그렇게 이제 갓 세상을 만나 곤히 잠든 아이를 곁에 두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능함, 무력함이라는 처절한 현실.
하지만 그 현실과 싸울 수 있는 힘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였기에.
"여보~ 나왔어~"
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다.
"울었어? 왜?"
눈물 한 방울 숨길 시간조차 주질 않는 이 좁아터진 집마저 원망스러웠다.
"쌀도 없고 살 형편도 안되지... 그런데 애기 태열은 올라서 수딩젤은 필요해.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해?"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월급이 절대 밀리지 않는 직장. 부족할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삶조차 벗어던지고 외식창업컨설팅을 배워 돈 많이 벌겠다는 포부를 안고 있었는데 현실은 까마득한 적자, 적자, 적자... 적자를 넘어 서 이제는 모든 삶이 무너져가기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아이가 막 태어난 이 순간에.
하지만, '이해한다', '믿어 주겠다' 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 혼자라면, 둘만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얼마간 끼니를 못때우건 월세가 밀렸다고 독촉전화가 오건 어떻게든 해결해 갈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있잖아?
상황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에.
'제발 다 그만 두고 취직을 하든 뭘 하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턱 끝까지 말이 차올라 입 밖에 튀어 나오려는 그 찰나.
"생계는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취직을 해볼께. 아이 용품은 일단 블로그 체험단을 찾아보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순간 멍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둘만 있을 때는 체험단 한다고 무료로 맛집들을 그렇게 찾아 다녔고, 물건들을 받아서 썼으면서? 허탈했다. 하지만 동시에 유일하지만 명확한 출구가 하나 보이는 느낌이었다. 어디 갈 수도 없이 집에만 꼬박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는 것. 내게 다시금 직장과 직업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체험단을 한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업체들 홈페이지들도 잘 되어있지만 당시엔 체험단 업체들이 카페, 블로그, 홈페이지 등으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그렇다고 못할까? 전혀. '유아', '아기용품'이라면 쇼핑 하듯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떨어지는 곳도 있었지만 하나 둘 체험단에 선정되기 시작하더니 머잖아 아이 용품을 체험단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건 돈. 현금이었다.
체험단에 선정되고 아이에게 쓰지 않거나 여유가 있는 상품들은 중고장터를 통해서 처분하면서 꼭 필요한 소모품인 기저귀 등을 구매하는데 사용했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더 필수로 사용되는 월세, 공과금 등을 내기 위해서는 정말 돈이 절실했다.
그러다 문뜩.
여태까지 무시하던 이메일과 쪽지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후기를 썼을 때 어느정도 상위권 노출이 점점 되어가다 보면 [블로그 판매] 나 [블로그 대여] 에 관한 연락을 많이 받게 된다. 정식적인 방법이 아님에도 급전이 필요한 경우 개인정보 누출 등 여러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내 경우는 이 블로그가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선택지 자체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
"000 상품에 대한 후기를 올려주시면 0만원을 드립니다."
라는 글.
예전같으면 사기꾼이라고 여기고 무슨 포스팅 하나 해주는데 이만큼이나 돈을 주겠냐며 가뿐하게 삭제해 버렸던 그 연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사의 규모나 마진, 중간 대행사의 마진 그런 부분들을 다 감안 하고서 마지막에 돌아가는 수익이 블로거라는 시장 생태계를 잘 알기 때문에, 나아가 마케팅 대행사 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두려울 것 없지만 그 때는 처음이었으니까.
떨리고 두려운 마음. 하지만 정말 돈이 필요했기에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포스팅 하면 입금 해준다는 쪽지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방법이랑 금액 문의 드립니다.]
그렇게 시작한 원고단.
처음에 1만원이라는 작은 돈 부터 시작해서 하나 둘 원고를 받아 올리며 상위권에 점점 뜨기 시작하더니 덩달아 회당 포스팅 금액 역시 3만, 5만, 10만에서 나아가 몇 십만원이라는 큰 금액까지 받게 되었다.
당연히 아이 기저귀값은 물론, 식비, 생활비 등 모든 삶에서 그동안 팍팍하게 졸이며 포기했던 많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포스팅을 의뢰해놓고 몇십만원을 떼 먹고 잠적해버린다거나 잘 모를 때 회당 3만원에 6개월간 독점계약을 하자는 등 블로그 포스팅 대행이라는 시장 자체에 대해서 몰랐기에 이용만 당하거나 당할 뻔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던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생각에 포기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온 블로그가 월 수익 500만원을 넘겼을 때.
그리고, 블로그 하나만 있으면 비행기 표 하나 끊고 제주도 정도는 숙박, 차량, 식사 등 여행 전 일정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모두 협찬으로 가능한 꿈 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을 때.
불행은 소리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눈물을 가슴에 안고 이겨낸 시간을 통해 만들어낸 화려한 이 모든 순간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까지는
정말 한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