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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Jun 11. 2019

오늘의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

생각을 폭넓게 확장시키거나 깊게 들어갈 수 있는 통로



김승섭 교수님의 신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 만큼의 충격은 없었지만 이 책 역시 좋은 책임은 분명하다. 소수자의 인권이나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부분들이 좋았다.


나는 ‘죽음’을 무서워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 말. 무서워한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린 시절이 사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깜깜한 밤에 잠들기 전이었는데 갑자기 죽는 게 너무 무서웠다. 뜬금없이.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동생을 붙들고 무섭다고 엄청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고 이제는 저 정도는 아닌데 그때는 되게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심했다. 초등학생인데도.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항상 시작은 나였지만. 아무도 이 주제를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맨날 물어봐서 지금 생각해보면 10대 시절 친구가 적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0대가 돼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증은 일상을 지내다 가도 갑작스럽게 떠오르거나 다가왔다. 그때마다 답을 찾고 싶어서 인터넷에 엄청난 검색을 했는데 전부 종교 타령이라서 질려서 포기했다. 하긴 누가 답을 알겠냐고.


더 웃긴 건 평소 삶의 모토가 끝이 있는 인생이니까 태어난 이상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것.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받아들였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정리가 되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사회적으로 깔려 있는 죽음=나쁜 것,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는 인식에 이미 물들어 있는 상태인 데다가 죽음이 너무 막연해서 인 것 같다. 과연 이 두려움이 없어지는 날이 오긴 할까.


그리고 또 ‘외국인’들의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자세에 대한 부분도 좋았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 완전히 공감했다.


이건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율로 따지면 적은 편인데 주류 범죄로 만들어서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썩은 언론들.


그들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왜 항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가 그게 궁금한 거지. 힘 있는 사람들이 범죄는 더 자주 저지르는데 왜 다른 건데?


김승섭 교수님의 책은 항상 읽으면서 이런저런 주제에 대한 생각을 폭넓게 확장시키거나 깊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줘서 좋다.


이 일화가 씁쓸했던 것은 질병과 죽음의 당사자인 환자가 철저하게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의학에 빼앗긴 채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마지막까지 죽음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미루기 위해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로 인해 환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를 잃어버렸지요.

(중략)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의 죽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피해야 하는 나쁜 것으로 취급받지요.

설사 이 이야기 속 환자와 달리 자신의 병명을 정확히 알고 있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에도,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피할지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그렇게,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일부이면서도, 말할 수 없는 무엇이 되었습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229~230p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거나 한국인보다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인의 범죄율이 외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외국인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데에는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외국인을 묘사하거나 언론을 통해 외국인의 범죄가 더 부각되거나 빈번하게 보도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강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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