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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Jun 14. 2019

오늘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한 마디로 짜릿하다.



보는 내내 짜릿하게 만들던 긴장감의 향연. 모든 장면마다 느껴지는 광기와 질투. 감정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폭발하고 가라앉아 잠잠한 듯싶으면 또다시 폭주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장면이 더 충격적이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캐릭터들끼리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앤, 사라, 애비게일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애비게일에게 마음을 뺏긴 것 같다고 마음속에서 확신하는 순간, ‘진짜? 나보다 쟤가 매력적이라고?’ 하면서 사라가 치고 나오는 것 같았다. 이러니 정신이 혼미해질 수밖에. 혼자 봤으면 혼잣말을 수도 없이 했을 것 같다. “나한테 왜 그래??”

미묘한 감정선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내 주게 표현하는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더 페이버릿은 흐름이나 연출도 훌륭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배우들의 연기이지 않을까 싶다.

엠마 스톤. 그녀의 캐릭터 소화력은 어디가 끝일까? 이번에도 놀랐다. 이렇게 매번 놀라게 할 수가 있나? 자꾸 이러면 점점 더 기대치가 커지는데 말이다. 철저하게 신분 상승에 대한 야망으로 뭉친 애비게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을 하고 첫날밤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권력에 대한 걱정을 한다. 결혼한 남편이 우리 첫날밤이야.라고 던진 한 마디에 내키지는 않지만 의무는 하겠다는 듯이 다가가 바라보지도 않고 자신의 걱정거리에 대해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응대해주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레이첼 와이즈. 중반 부분까지는 역시 난 엠마 스톤이지라는 마음이었는데 그걸 중반 이후에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게 끝까지 가서 결국 마지막에 제일 기억에 강력하게 남았다. 개인적으로 제일 압도적이었던 건 왜 너는 나를 사랑해주지 않느냐는 여왕에게 사랑하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과 편지를 쓰는 장면. 편지를 쓰는 장면은 큰 연기를 한 것도 아니고 쓰는 모습이 보이는 것뿐인데 내레이션에서 분노와 애정이 동시에 묻어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표정이나 액션이 아니라 그저 목소리만으로.

솔직히 내가 너무 과대평가한 건가 싶을 정도로 애비게일에게 크게 당하는 두 번의 장면(차, 편지)에서 사라는 너무 순진했다. 그래서 약간 허무한 감도 없지는 않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사라는 권력도 어느 정도 중요했지만 결국 앤에 대한 사랑이 좀 더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애비게일의 야망이 그 정도인지는 몰랐던 거고 너와 나는 목적이 다르다는 말을 했던 거겠지.

올리비아 콜맨.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여왕님. 히스테릭하고 위태로우면서도 이상하게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카리스마 있는 대사를 하는 장면은 내 기억에는 단 한순간도 나오지 않는데 이상하게 위태로움 밑에 얇게 깔려 있는 힘 같은 게 느껴졌다.

​영국을 지배하는 여왕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거대한 권력을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나약한 사람. 시종일관 텅 빈 눈동자로 어딘가를 응시하던 그녀 말고 여왕 역할을 대체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고였다.

능력 있는 개인이 모여 팀으로 시너지를 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혼자 있을 때도 매력적이지만 역시 캐릭터들이 함께 있을 때의 리듬이 좋았다. 애비게일과 사라의 관계성이나 사라와 앤의 관계성이나 그런 것들이 재밌었다.

뜬금없을 수 있지만 이런 게 진정한 느와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칼이나 총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서로 배신하고 욕망하면서 감정과 관계를 죽이는 어두운 영화. ‘더 페이버릿’이 딱 그런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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