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스포)
자신이 만든 환상에 사람을 끼워 넣고 거기서 벗어나면 실망하는 이런 일은 영화에서처럼 연인 관계에서도 자주 일어나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사람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지만 그래도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켈빈처럼.
켈빈은 선을 넘었다.
너무 냉소적인 거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으나 솔직히 켈빈이 다시 만난 루비에게 변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처절한 반성 끝에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묘사했지만 알다시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파국의 절정에서 본 루비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충격적이어서 더욱 켈빈을 믿을 수가 없다.
한번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다시 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루비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를 보낸 걸 텐데 이것도 좀 찜찜하다. 아무튼 결말이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인정하는 사람마저 드문 세상이니 타인을 그렇게 끌어안는다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겠지. 그래도 그런 사랑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언젠가 만나면 내 맘을 활짝 열고 나도 상대를 온전히 사랑해줘 야지. 이런 기대는 항상 품고 산다.
영화를 보면서 오랜 짝사랑 후의 연애의 문제점이 계속 생각났다. 짝사랑이 길어지면 그 사람에 대한 자신만의 환상이 생긴다. 그래서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들에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많은데 잘 풀고 해결하면 문제가 없지만 고이 쌓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 그 탑이 무너져 관계는 끝난다.
인격적으로 멋진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텐데 나는 그저 지질한 인간인지라 그걸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켈빈스러운 면이 있었던 거고 그래서 더욱 켈빈을 못 믿는 거고.
나에게는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게 본 영화이긴 하다. 사실 가볍게 보려고 선택한 거였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당황스럽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