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0.
조카들에겐 거짓말을 많이 한다. 주로 아이들이 즐기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는 방식이다. 큰 조카가 겨울왕국에 한창 빠져있을 땐 엘사가 한국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에렌델 왕국 아니야?”라는 물음에 “에렌델 왕국이 한국에 있어, 다음에 삼촌이 데려가 줄게”하고 답했다. “진짜?”하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 달란 요청에 “삼촌은 너무 힘이 세서 그네를 밀면 예린이가 저기 프랑스까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 삼촌이 어릴 때 그네 잘못 탔다가 에펠탑 앞에 떨어졌거든”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어떻게 돌아왔냐 묻기에 거기서 또 그네에 올라 힘차게 발을 굴러 날아왔다고 했다.
이외에도 많다. ‘치링치링 시크릿 쥬쥬’의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린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 인형탈을 쓰면 만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뽀로로 친구들의 운전기사도 했었다는 이야기, 삼촌이 귀에다가 바람을 불면 바닷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 등등.
어제도 거짓말을 했다. 큰 조카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생일선물로 최근에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캐치! 티니핑’의 캐릭터 피규어를 사두었던 터라, 가방에 몰래 숨겨서 누나네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케이크 촛불을 불기 전, 조카에게 슬며시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예린아, 조금 있다가 생일파티할 때 티니핑 애들 여섯 명이 올 거야. 삼촌이 데려올 건데, 그 아이들은 아주 작은 모형에 담겨서 올 거야.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살아있는 거니까 예린이가 잘 보살펴 줘야 해.
눈이 번쩍 한 아이는 그러겠노라며 차차핑도 와? 베베핑은? 하츄핑도 왔으면 좋겠다, 하며 소파 위를 뛰어다녔다. 얼른 선물을 쥐여주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혼났다.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고, 대망의 선물 증정 시간. 쇼핑백에서 피규어를 차례로 꺼낼 때마다 환호가 터졌다. 딸기케이크를 먹다 말고 엎드려 피규어들을 관찰하는 조카에게 누나가 왜 그러냐 물으니 “좋아서 그러지”란다.
두고두고 기억될 아름다운 광경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고 앞에 앉으니 조카가 내게 말한다. “삼촌, 다음 생일 땐 딱딱한 장난감 말고 폭신폭신한 인형 사줘.” 뭐야 너, 장난감이라는 걸 알았던 거야? 여태껏 속는 척해주었던 거야? 그냥, 삼촌이 만든 세계관을 즐겨 주었던 거야?
이런 상상도 해 보았다. 조카들이 커서 내게 거짓으로 무언가를 부탁한다면 어떻게 할까. 만약 그 부탁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동시에 오직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속아줄 것이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세상에 한 명쯤은 있어도 좋을 테니까. 태어나준 것만으로 그 정도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니까.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나라면 더없이 기쁠 테니까. 결국엔 아이들도 내가 다 알면서 고개를 끄덕였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
방 안에 혼자 들어가 피규어를 늘어놓고 놀이를 시작한 조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돌아서는 나를 보고 “잘 가 삼촌, 얘들은 내가 잘 돌봐 줄게 걱정 마”하며 손을 흔든다.
어쩌면 보살핌을 받는 건 내 쪽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