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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03. 2021

파도가 부른다

2021.09.03.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다. 무악재 고개를 넘어 독립문을 비껴 월암공원의 녹음을 흘긋거리다 정동길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 중 하나다. 짧지 않은 내리막을 누리다 보니 덕수궁 돌담길이다. 드문드문 걷는 사람들을 피해 골목을 빠져나와 우회전. 숭례문을 빙 둘러 회사에 도착했다. 그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가 흩어지고, 등줄기가 후끈하다 금세 서늘해졌다. 햇볕 안 여름, 그림자 속 가을이었다.


들숨마다 뒤섞이는 늦여름과 초가을의 정취가 여행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오늘의 공기는 특히 포르투갈, 그중에서도 나자레를 거닐던 그때와 꼭 닮았다. 2017년 9월이었다.


나자레의 첫인상은 영 꽝이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어둑어둑할 무렵 도착한 그곳은 자욱한 안개 탓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캐리어를 끌고 저 높은 언덕 위 숙소까지 가는 동안 거리에선 불빛도 인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방에 짐을 풀고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한탄하다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쾌청한 하늘과 따가운 햇살 선선한 바람의 조화. 날씨의 가호를 받은 마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물웅덩이 옆으로 발을 내딛으며 해변으로 갔다가, 백사장 끝자락에 자리한 푸니클라를 타고 꼭대기까지 갔다. 경치를 감상하며 바다와 바다 사이 능선을 따라 걸었더니 동굴이 나왔다. 그속에는 나자레 태생의 전설적인 서퍼의 사진과 서핑보드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자레가 서퍼들의 성지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가 친 곳이기도 하다. 커다란 파도를 찾아 예부터 서퍼들이 찾아온 모양이다. 동굴 옆으로 펼쳐진 바다 위에서 역시나, 수많은 서퍼들이 보드에 몸을 싣고 있었다. 휘슬이 울리고 깃발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동네 대회라도 펼쳐진 듯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파도와 인간이 뒤엉키는 걸 오래도록 구경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담임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 낚시하는 사람, 그보다 더 한가한 사람이 낚시하는 거 구경하는 사람이라 하셨는데. 그 순간은 나도 참 한가했다. 서핑을 파도낚시라고 표현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서퍼들은 한가한 사람들일까?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대개는 그 한가함도 망중한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겪은 서핑 그 자체는 한가함과 거리가 멀었단 점은 재밌다. 외려 너무너무 바빴다. 넘어졌다가 헤엄쳤다가 보드에 올랐다가 파도에 올랐다가 또 넘어졌다가 헤엄쳤다가 보드에 올 오르려다 미끄러졌다가···.


돌아보니 지난 한 달은 마치 서핑 같았다. 진짜 파도 대신 집안일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탔다는 차이가 있지만. 와, 독립된 공간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게 이리도 수고스러운 일일 줄이야. 밀려갔나 한숨 돌리면 어느새 몰아치는 파도, 파도, 파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서핑이 재미난 것처럼, 그래도 요즘의 생활이 즐거운 건 보드 위에 홀로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같이 물을 뒤집어쓰고 같이 자빠지고 같이 물을 먹다가 서로를 보면서 한바탕 웃을 메이트 덕분이겠지. 파도가 부른다. 갑시다,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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