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6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는 계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깊은 밤을 넘어 새벽까지 술잔을 주고받을 때, 설렘 가득 안고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로 미뤄왔던 약속들로 캘린더가 빽빽해질 때. 또 뭐가 있을까. 마스크를 벗게 되면 한동안은 집 밖에 있는 매 순간이 생경할 테지.
코로나 전이나 후나 해외를 나가지 못했단 사실 이외엔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온 나이지만, 아 진짜 끝이 보이는구나, 하는 옅은 감격이 최근 찾아왔다. 2020년 5월 경부터 폐쇄되었던 회사 건물과 힐튼호텔을 잇는 뒷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면적은 넓지 않지만 나름의 울창함과 계절의 색채를 갖춘 정원이 있다. 그리고 그 한켠에는 내가 하루에 두세 차례는 손에 쥐는 철봉이 있다. 이제 턱걸이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이렇게 일상의 한 면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록으로 뒤덮인 하늘도 괜히 한 번 쳐다보고 인스타 스토리도 찍어 보면서, 와우.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게다가 나무들은 왜 벌써부터 이리 퍼런 거야. 완충된 에너지로 점프다.
턱걸이를 시작한 건 대략 3년 전의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곳에서다. 정자세로는 서너 개 할똥말똥였는데, 요샌 컨디션 좋은 날엔 스무 개까지 찍는다. 13개 언저리에서 꽤 오래 정체였는데 개수가 갑자기 확 늘었다. 역시 꾸준함은 위대하다, 라는 멋들어진 생각보단 글로벌로 기준을 잡아도 이정도면 상위 0.1%안에 들지 않을까, 자뻑에 잠겨본다.
그만 깨어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같은 층에서 생활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선생님의 소리. 텃밭을 가꾸러 온 모양이다. 얼굴을 반 이상 가린 마스크는 여전하지만, 왠지 가려진 미소들이 보이는 것만 같고 전보다 활기차 보인다. 하긴, 나도 그 가파른 계단 오르기가 만만찮았는데 아이들에겐 더 그랬겠지.
너희들에게도 일상이 하나 돌아왔구나, 생각하는데 의문이 들었다. 문이 닫힌 게 2년 전이니까 저 아이들 중 몇몇에게는 뒷문을 통과하는 게 생전 처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그야말로 새로운 모험, 탐험, 개척의 발걸음이 아닐까? 그래서 더더더 신나있는 건 아닐까? 하늘로 몸을 당기며 ‘어 이게 되네?’ 고양되었던 2019년 어느 날의 나처럼.
고개를 드니 알파벳 두 글자가 보인다. ON. HILTON의 앞 네 글자가 나무에 가렸다. 그래, 진짜 ON이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보자. ON and ON and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