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2
골프를 배우고 있다. 딸 그리고 사위와 함께 필드를 나가는 것이 소원인 장인어른의 염원도 이뤄드릴 겸 오래오래 지속할 취미도 만들 겸, 약 두 달 전에 야심차게 연습장에 등록했다. 일시불로 거금을 긁으며 최소 주 5회 이상 맹렬하게 연습해 꽃이 만발한 5월엔 필드 데뷔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퍼팅을 배우는데 공도 정면으로 잘 가고 30m 거리에서 홀 컵에 한 번에 공도 넣고 그랬다. 선천적 유연성 결핍 탓에 몸으로 하는 건 웬만하면 다, 특히 동그란 걸 갖고 하는 건 거진 젬병인 나로선 생소한 희열이었다. 나 진짜 재능이 있는 건가?
그간 골프를 권하던 이들이 건네던 말들이 떠올랐다. 턱걸이만큼만 꾸준히 하면 금방 늘 거다, 골프는 키가 작은 사람에게 오히려 유리하다, 체형이 딱 골프 잘 칠 체형이다 등등. 평생 양파만 해도 좋으니 “키가 너무 커서 골프에 부적합” 소리를 들어보고 싶지만, 어쨌든 여러 대사들이 머리를 스치며 열의를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갈수록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팔은 자꾸만 굽고 골반은 안 돌아가고 몸은 기울고. 홧김에 있는 힘껏 휘둘러봐도 턱턱 땅땅, 턱도 없이 땅만 쳐댔다. 반팔 티 반바지에 선풍기를 강으로 놓아도 속에서 끊는 천불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발길을 끊던 차… 결혼 후 첫 생일을 맞은 처가행이 결정되었다
1박 2일의 대구 나들이는 골프 특훈에 다름 아니었다. 짐을 풀자마자 곧장 스크린 골프장으로 향해 18홀을, 당연히 나는 올 양파, 돌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스윙 연습기로 자세를 교정 받았고, 다음 날 아침에도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팔을 휘둘렀다. 감탄했던 부분은 장인어른의 강의력. 그렇지 그렇지, 아니지 아니지, 잘하고 있다, 캬- 아깝다 등 추임새와 감탄사를 연발하시면서도 아주 알아듣기 쉽게 쏙쏙 요점을 집어주셨다. 그걸 제대로 이행했느냐와는 별개로.
어제는 일부러 말을 안 했는데, 신서방 가르쳐보니 소질이 있다. 금방 늘겠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식사 자리에서도 스승님의 격려는 이어졌다. 그리고 몇 번 쓰지도 않으셨다는 스윙 연습기도 기꺼이 가져가라 하셨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새로이 각오를 다져다. 그러나,
연습장으로 향하는 길은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나마 유튜브로 시청각 학습이라도 하고 있음에 위안을 얻는다. 오늘 점심땐 우연히 강호동 골프 하이라이트를 봤는데, 와우. 역시 어떤 분야의 탑을 찍어 본 사람은 다르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그의 인상적인 대사 하나.
프로는 상상하는 대로 되고, 아마추어는 걱정하는 대로 된다.
멋진 말이다. 그 무엇에서도 프로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멋진 말이다. 그러니 뒤땅 칠 걱정하지 말고 우아하고 호쾌한 스윙을 상상하며 힘을 내보자. 첫 걸음으로, 뻐꾸기 골프를 끄고 타이거 우즈 베스트 샷 모음을 켰다. 낫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