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Apr 26. 2022

오빠가 글을 안 쓰는 게 너무 웃겨

2022.04.20

오빠가 글을 안 쓰는 게 너무 웃겨.


침대에 누워 폰을 만지작거리던 수민이 말했다. 무슨 의미냐 되물었더니, 예전에는 밤늦도록 일기도 쓰고 그러더니, 자신을 만나고부턴 한 글자도 쓰지 않는 게 재미있다며, 오빠가 예전엔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신감이 상당하군,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엔 피식했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인생 대부분을 그것을 위해 투신해오지 않았나 싶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이십대 중반 무렵 일종의 개안을 한 이후의 일이다. 이전엔 마음속 깊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석에 틀어박혀 쭈그러져있어도 나의 진가를 알아본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는 세기말 일본 코믹스적 희망을 품은 채로 진짜 쭈그러져만 있었다.


종종 이야기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어딨나, 사랑받으려면 사랑받을 짓을 해야지”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내심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강동원이 아님을, 그러니 나는 타인에게 나를 좋아할 개연성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줘야 하는 존재임을. 당연한 건데, 솔직히 아직 이 직시는 좀 쓰다. 다음 생엔 강동원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현실에 눈을 뜬 뒤론 갖은 수단을 동원해 관심을 갈구해왔다. 성공도 실패도, 행운도 실수도, 환희도 절망도 다 그 과정의 부산물들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 <메탈 로드>의 주인공들도 스스로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음악에 몰두하던데, 딱 내 모습 같아 깊이 공감했다. 나의 기타는 약 7년째 창고에서 썩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예전 일기들을 훑어보면 대개 톤이 비슷하다. 약간 멜랑꼴리하고 꽤 느끼하고 우수에 젖은 ‘척’은 하는데 정작 안구는 건조하다고나 할까. 분명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웃긴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갖기도 했는데… 허허. 반대로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수민을 웃겼다는 건 쌉싸래한 아이러니.


요즘의 나는 외롭지 않은 건가? 흠, 흠. 그런 것 같다.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눈뜨고 밥 먹고 일하고 장난치고 놀다 보면 잘 시간이다. 홀로 노트북 앞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타닥타닥 소리를 내던 시간에,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거나 누워서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어린애들도 하지 않을 장난과 농담을 일상 구석구석에 섞어가면서.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알 수 없다만, 어쨌거나 요샌 그렇다. 외롭지 않다. 심심하지도 않고 온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단 갈증에 허덕이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재밌고 피곤하고, 전반적으로 괜찮다. 명랑 시트콤 같은 나날이랄까.


이참에 외로움을 동력으로 삼지 않고, 인정투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드는 법을 익혀나가는 것도 좋겠다. 그러려면 일단 그럴 시간부터 만들어야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봇)듀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