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Apr 26. 2022

ON!

2022.04.26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는 계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깊은 밤을 넘어 새벽까지 술잔을 주고받을 , 설렘 가득 안고 비행기 티켓을 끊을 ,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로 미뤄왔던 약속들로 캘린더가 빽빽해질 .  뭐가 있을까. 마스크를 벗게 되면 한동안은  밖에 있는  순간이 생경할 테지.


코로나 전이나 후나 해외를 나가지 못했단 사실 이외엔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온 나이지만, 아 진짜 끝이 보이는구나, 하는 옅은 감격이 최근 찾아왔다. 2020년 5월 경부터 폐쇄되었던 회사 건물과 힐튼호텔을 잇는 뒷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면적은 넓지 않지만 나름의 울창함과 계절의 색채를 갖춘 정원이 있다. 그리고 그 한켠에는 내가 하루에 두세 차례는 손에 쥐는 철봉이 있다. 이제 턱걸이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이렇게 일상의 한 면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록으로 뒤덮인 하늘도 괜히 한 번 쳐다보고 인스타 스토리도 찍어 보면서, 와우.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게다가 나무들은 왜 벌써부터 이리 퍼런 거야. 완충된 에너지로 점프다.


턱걸이를 시작한 건 대략 3년 전의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곳에서다. 정자세로는 서너 개 할똥말똥였는데, 요샌 컨디션 좋은 날엔 스무 개까지 찍는다. 13개 언저리에서 꽤 오래 정체였는데 개수가 갑자기 확 늘었다. 역시 꾸준함은 위대하다, 라는 멋들어진 생각보단 글로벌로 기준을 잡아도 이정도면 상위 0.1%안에 들지 않을까, 자뻑에 잠겨본다.


그만 깨어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같은 층에서 생활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선생님의 소리. 텃밭을 가꾸러 온 모양이다. 얼굴을 반 이상 가린 마스크는 여전하지만, 왠지 가려진 미소들이 보이는 것만 같고 전보다 활기차 보인다. 하긴, 나도 그 가파른 계단 오르기가 만만찮았는데 아이들에겐 더 그랬겠지.


너희들에게도 일상이 하나 돌아왔구나, 생각하는데 의문이 들었다. 문이 닫힌 게 2년 전이니까 저 아이들 중 몇몇에게는 뒷문을 통과하는 게 생전 처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그야말로 새로운 모험, 탐험, 개척의 발걸음이 아닐까? 그래서 더더더 신나있는 건 아닐까? 하늘로 몸을 당기며 ‘어 이게 되네?’ 고양되었던 2019년 어느 날의 나처럼.


고개를 드니 알파벳 두 글자가 보인다. ON. HILTON의 앞 네 글자가 나무에 가렸다. 그래, 진짜 ON이다. 그러니 온 마음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보자. ON and ON and ON!

매거진의 이전글 Hello Worl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