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죽음을 맞닥뜨린 내 모습을 마주한다.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란 두려움은 없지만 죽음 앞에서 내 모습에 대해 과연 얼마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인생을 살았는지 상상해본다. 후회만 가득 남은 상태의 삶으로 내 마지막 인생을 못마땅히 평가하며 눈을 감고 싶지 않으려면 어떻게 지금 살아야 할까에 대한 생각이다. 열심히 돈을 벌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럽지 않았던 삶? 나름 투자도 해가면서 돈을 비축하며 부모님께 넉넉하게 효도금을 드리며 살았던 삶? 내 몸을 갈아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냈던 삶?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며 자신의 발전을 이루었던 삶? 이 모두 훌륭한 삶이겠지. 이 중 하나라도 이루어냈다면 만족할만한 삶이겠다.
하지만 우리는 깨달음과 실수를 반복하게 설계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망각의 선순환 구조랄까. 고통도 잊어버리고 즐거운 일도 잊어버린다. 술자리 등에서 이 같은 답이 없는 문제들을 답보하며 시대에 맞게, 연령에 맞게 자신의 우선순위들을 조절해가며 산다. 강한 열망으로 치열했던 삶은 대개 인생 전반부에 치닫고, 자식이나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후반부에 고즈넉이 배치하며 안정감을 찾는다. 그런 삶들을 우린 봐왔고, 그게 역사적으로 진화론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삶이라는 것을 몸소 부모님들을 통해 배워왔다.
오늘은 '기억'과 '시간'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과연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쉬운 접근법을 택하여 예시를 통해 나를 포함한 독자들을 이해시켜보고 싶다. 이 2개가 주는 인생의 시사점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죽음 앞에선 나 자신이 아니라 내 '기억'과 마주한다.
우리는 기억의 동물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립거나 찬란했던 과거에 취해 그 시점을 종종 탈환하며 스스로가 결코 망각의 동물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다시 또 그렇게 내일을 준비한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그렇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누워 하루를 정리한다. 좋은 시절에 대해 자기 전에 회상하기도 하고, 후회스러웠던 시절에 대해 억지로 눈을 더 질끈 세게 감는다.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연결시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고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 조각들을 연결함에 있어 게으른 적이 없었고, 특히 소중한 이들과 같이 그 조각들을 연결하는 짜릿한 경험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짜릿함은 대부분 '함께' 있을 때 발생되며 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주체들이 있을 때 그 느낌은 몇 곱절 늘어나게 된다. 즉,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을 최대한 만드는 것이 1순위라고 흔히 생각하며, 나머지의 우선 순위들(사회적 위치, 재정적 안정화, 자기 계발 등)은 그 1순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이 기억들에 대해 꽤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산다. 순간을 기억하고 싶을 때 사진을 찍고 보관한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 화려한 배경이 담긴 내 모습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으며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현상을 '현재'에 고정시킨다. 10년, 20년, 30년 뒤에 이 사진을 봐도 그때의 느낌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들을 보며 어떻게든 기억을 현재에 고정시키며 잊지 않도록 살아간다. 그만큼 기억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고, 좋은 기억은 최상위층에 위치한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 또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사진을 찍어 기억을 남기는 것보다 더 강렬한 저장 장치를 스스로 찾아냈다. 그것은 동영상을 찍는 것도 아니었고 사진도 기념품도 물론 아니었다. 기억하고 싶은 나만의 카메라의 필름은 핸드폰이 아닌 내 머릿속에 남기고 싶었고 몸의 반응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연습을 통해 계속 내 습관으로 남기고자 노력 중이다.
나는 시간을 역행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행복은 대부분 지난 다음에 찾아오고 좋은 기억들은 수개월, 수년이 지나고서야 '그때가 좋았지'라는 덫에 항상 빠지는 나 자신을 보며 핸드폰을 통해 추억하는 방법은 결코 나를 자유케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행복한 바로 그 순간, 가슴이 벅차지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 순간,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눈을 감으며 80대 노인의 내 모습을 소환한다. 어느덧 살아왔던 기억이 희미해지고 몸도 예전보다 성치 않을 나약한 내 모습, 사랑하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외로운 내 모습 말이다. 수많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추억 부자일 거라 부디 믿는 내 늙은 모습으로 시간을 이동시켜 과거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시점을 떠올린다.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며 미련이란 감정도 억지로 밀어 넣어본다.
그 시절로 딱 한 번만 돌아갔으면. 다시 돌아가면 내가 더 잘할 텐데.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며 현재로 돌아온 내 모습을 본다. 젊었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고, 떠나가지 않았던 소중한 사람들이 바로 내 곁에 있으며 가슴 벅찼던 그 밤하늘의 공기마저 모든 게 그대로였다. 거울을 보니 늙은 내 모습이 아니라 30대인 건강한 내 모습이 비친다. 하늘이 내게 기회를 다시 준 것임을 확신하고 나는 옆에 사람들과 온전히 이 시간을 다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미처 하지 못한 말, 미처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미루지 않고 현재를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최대로 지켜낸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살아가게 된다. 남편, 아내, 부모님, 가족, 연인 등 모두 포함이다. 현재는 냉전을 벌이는 관계들도 있겠고, 수개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을 안 했던 사람들도 수두룩 할 것이다. 모든 인연을 챙길 필요는 없지만 내가 빚진 인연, 고마운 인연은 결코 잊어서 안된다. 나의 아버지의 연세는 80이시고 어머니의 연세가 76이시다. 나는 내가 태어날 때의 아버지의 나이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 과연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시간을 역행하며 기억을 이리저리 소환시키고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 우리 모두가 감사했으면 한다. 80대 노인 본인의 모습을 보고 현재로 돌아와 오늘의 감동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