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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24. 2021

PCEC-56 당포(唐浦)

역사에 남은 선박들

196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능가하고 있던 시절이었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의 새마을 운동이 불붙기 시작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후, 여전히 남북은 첨예하게 맞서고 있었고 크고 작은 국지도발이 빗발치던 시절,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사실이지만 북한에 의해 납북 위기에 처했던 어민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불의의 기습으로 침몰했던 한 군함이 있었다.


초계함(patrol corvette)은 보통 우리가 함정(艦艇)으로 간단히 분류하는 전선(戰船) 단위에서 함(艦)의 범주에 들어가는 가장 작은 단위의 전투함을 말한다. 전함이나 순양함처럼 원양을 작전범위로 가지는 대형 전투함과 달리 작은 덩치지만 그 덩치에 비해 강력한 무장을 장비하고 빠른 속도와 기동성으로 연안의 경계에 임하는 함정을 주로 이렇게 칭한다. 보통 500톤에서 2000톤 사이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함/대공미사일 체계 등을 갖춘 첨단시설들도 장비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60년대 후반, 초계함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미 해군 초계함 PCE-898. 우리나라로 도입되어 PCEC-55 옥포함으로 명명된 노량급 초계함

전쟁 직후인 1955년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1983년에 완전히 퇴역한 노량급 초계함(PCEC : Patrol Craft Escort Control)은 1942년부터 건조되어 미 해군이 사용하던 PCE-881(PCE : Patrol Craft Escort)을 도입한 것이었다. 네이밍쉽이었던 PCEC-51 노량함은 미군 PCE-882함을 1955년 도입하며 실전에 배치되었으며 이후 PCEC-59 사천함까지 모두 8척이 도입되어 활약하게 된다. 


기준 배수량 640톤에 전장 56.23m, 선폭 10.05m에 최고속도 16노트. 총원 109명(장교 10명, 하사관/병 99명)이 승선 가능했고 Mark-22 - 3인치(76.2mm) 포를 주포로 장비했고 40mm, 20mm포를 부포와 더불어 대잠 침투에 대한 폭뢰 투하기까지 갖추었지만 태평양전쟁 중에 건조된 배들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이미 선령 15~20년을 넘기던 역전의 노장들이었다.


1944년 1월 29일, 미 해군에 도입된 PCE-842 MARFA 함은 전쟁 중 루이지애나주에 소속되어 미국 연안으로 접근하는 적전력을 탐지하는 초계 임무에 종사하다 1961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인도되며 PCEC-56 당포함으로 명명된다. 노량급 초계함들은 모두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큰 승리를 거두었던 지명을 사용하여 명명되었는데 압도적인 적의 군세를 맞아 언제나 열세로 전투에 임하면서도 결코 지지 않았던 충무공의 승리를 염원했던 것.

PCE-842 MARFA. 1961년, 대한민국 해군이 인수받으며 PCEC-56 당포함으로 명명된다.

56함, 운명과 맞서다(1967. 1.19)

1967년 1월 19일, 한참 명태가 성어기에 접어들 무렵, 동해어장은 수많은 어선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획량이 곧 돈이 되는 상황에서 어민들은 많은 배들이 붐비며 높은 어획량을 기대하기 힘들던 남쪽 어장보다 위험을 감수하면 높은 어획량을 거둘 수 있던 NLL 이북의 북한 어장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결국 조업을 위해 많은 어선들이 NLL을 넘게 된다. 애초 어선의 북방한계선 진입을 차단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적들의 도발에 대비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당포함은 계속적인 방송으로 어선의 북진을 막으려 했지만 워낙 많은 배들의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북방한계선을 넘은 어선들을 향해 북한 PBL급 경비정 2척이 출현하며 상황은 급 반전하게 된다. 당포함은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을 어선들을 나포하려는 것으로 판단하여 어선들을 뒤를 쫓아 북으로 향했고 경비정보다는 훨씬 앞서는 무장을 가진 당포함의 위세에 눌린 탓인지 북한 경비정은 슬그머니 선수를 북으로 돌려서 돌아갔다.


그리고....


13시 55분, 북한 땅 고성의 해안절벽이었던 수원단 해안포대에서 기습적인 포격이 시작되었다. 통상의 위협사격이 아니라 아예 일제사격으로 포문을 연 것. 절체절명의 상황, 초계함 한 척의 화력으로는 애초 대항이 불가능했고 강한 화력이 집중되며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회피기동을 시작하려던 순간, 타기실과 기관실을 직격한 포탄으로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곧이어 기관이 정지하며 바다 한 복판에 자리 잡은 고정 목표물로 전락해버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

당포함이 침몰하기 직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동급함이었던 PCEC-53 한산함
한산함과 함께 당포함 구조에 참가했던 DE-71 경기함

결국 이어진 포탄에 의해 반격을 가할만한 화력들도 모두 무력화되고 말았다. 피격 소식을 들은 동급 함정인 PCEC-53 한산함과 DE-71 경기함이 달려오면서 북한의 포격은 멈추었지만 당포함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살아남은 승조원들이 부상을 입거나 생사불명 상태인 전우들의 구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이미 배는 기울기 시작한다. 함장의 퇴함 명령이 떨어지며 35분간 악전고투했던 당포함은 결국 최후를 맞는다. 승조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으나, 11명은 소생하지 못했고, 11명은 중상, 28명은 당포함과 함께 동해바다에 잠든다.

퇴함 명령 후 전복되어 침몰 중인 당포함. 38-39-45N, 128-26-47E 당포함이 최후를 맞은 지점이다

단 30여분의 시간 동안 당포함을 향해 쏟아진 포탄만 180여 발이었으니 처음부터 북한이 노렸던 것은 위협 정도가 아니었던 것.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모항이었던 진해에서 출동한 해군의 기함이었던 충무함(DD-91)에 당시 김영관 해군참모총장까지 승선해서 달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모습에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충무함(DD-91) 후부 갑판에 안치된 전사자들에게 묵념하는 당시 강서룡 국방차관과 김영관 해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

북측은 1967년 1월 21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제239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남측의 초계함이 자신들의 영해를 불법 침입하여 갑자기 해안을 향해 수십 발의 선제사격을 퍼붓는 명백히 적대적인 행동을 저질렀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애초 초계함의 무장 자체가 은닉된 지상 화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함정과 함정 사이의 교전에서나 효용을 기대할 수 있는 빈약한 것이었다는 것, 또한 당포함의 위치가 북측의 주장처럼 영해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과 달리 북한 해안에서 4해리(7.4km) 지점으로 당시 국제법으로 통용되던 영해의 기준인 3해리 바깥이었다는 것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당포함 전사자 명단과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묘표

북한은 당포함을 격침시킨 이후로도 1968년 1월의 1.21 사태, 같은 해 10월 말의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4년 6월 28일의 해경 836 경비정 격침 등 수많은 도발을 자행하게 된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인 손원일 제독이 작사하고 그 베필이셨던 홍은혜 여사가 작곡한 군가 '바다로 가자'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 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 끝까지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 하여


우리들은 나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대한의 해군

험한 저 파도 몰려 천지진동해도 지키자 우리 바다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 하여


당포함의 승조원들은 납북 위기 빠졌던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고 그 때문에 포화 속에서 희생되었다. 이 군가의 가사처럼 바다에 몸과 마음을 바쳤고 그 바다를 생명을 다하여 지켰던 것.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임무에 목숨을 걸었고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던 그들의 희생이 어느새 50년을 넘어 60년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후배들도 선배들의 뒤를 따라 조국의 바다에 목숨을 바쳤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0. 3.26 - PCC-772 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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