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재성 Mar 01. 2022

이 세상 사는 동안

인생의 전반전을 보내고

생(生)과 사(死)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언제나 함께 표현되는 대표적인 수사다.

선악, 미추, 낮과 밤...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는 남과 북까지 끼어들게되는 여러가지 상반된 수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절대적인 것으로 단연 꼽을만하다.


2021년 5월 25일은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정확히 30년이 된 날이었다. 

당시 승선생활 중이시라 집에 계신 날보다 아니 계신 날이 더 많았던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유로 집밖으로 떠돌고 있던 내가 손을 잡고 있는 동안 마지막 숨을 내쉬셨고 요즘으로 치면 한창 나이셨던 일흔에 눈을 감으신 것. 할아버지께서 마지막 숨을 내쉬시고 더 이상 들숨이 없으신 것을 확인했던 것이 나였고 안방에 걸린 시계를 보고 아침 열시 삼십분이라고 혼자 그 시간을 마음에 박아넣었을 때,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 할아버지 가셨어요.'


의사도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을 판별할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던 스무살 짜리였지만 그 순간, 할아버지께서 떠나셨음을 알 수 있었고 순간 손잡고 있던 우리 부자와 발치를 지키던 모든 식구들의 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세월만큼 사연들이 쌓이기 마련이고 가장 어른이셨던 할아버지의 최후는 살아생전 쌓아오셨던 수많은 사연들을 한꺼번에 당신의 손에서 우리의 손으로 옮기신 사건이었지만 그 묵직한 의미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피할 수 없고 누구나 마주하게 될 현실로써의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 사연들에 앞서 어깨를 눌러왔다.

퇴계원에 잠드신 할아버지




난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투병 중이셨던 어느날, 아침잠에서 깨어나신 외할아버지께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가 성당 땅을 한 평 샀는데 그 땅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더구나."


외할아버지께서 떠나시기 전 날밤, 아버지는 부산에 입항하셨고 접안까지 하고 상륙했을 때 찾았던 처갓집에서 장인의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으셨단다. 마침, 폭풍주의보가 내려지면서 아버지는 배로 귀선하는 길까지 막힌 상태에서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고 삼우날이 지나고 다시 배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둘째 외삼촌과, 외숙모, 외할머니, 첫째 외삼촌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며 외할아버지의 꿈처럼 성당 땅에 식구들은 차례로 몸을 누이셨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가족들은 그들에게 물려받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 

춘천에 마련된 우리 외갓집 가족묘


이 세상 사는 동안 내 흘릴 눈물들

이 생명 다한 후에 다 씻어지리니

이 길을 가는 동안 지쳐 쓰러져도

그 보다 더욱 귀한 건 생명을 봄이라


곤한 내 혼아 눈을 들어 저 빛을 향하여

아무도 뺏지 못 할 생의 자유를 되찾자


이 세상 사는 동안 내 받을 상처들

이 몸이 묻힌 후에 다 잊혀지리니

이 길을 가는 동안 지쳐 쓰러져도

그 보다 더욱 귀한 건 자유를 봄이라


곤한 내 혼아 눈을 들어 저 빛을 향하여

아무도 뺏지 못 할 생의 자유를 되찾자


안치환 - 이 세상 사는 동안

매거진의 이전글 "이 사람을 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