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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Jun 28. 2017

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한 생각

빨리 해치워버리려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권위

(1) 남을 지휘∙감독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2)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 또는, 그런 사람.


권위주의

어떤 일을 권위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태도. 또는, 귄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한 가족 옆에 서게 됐다. 아빠, 엄마, 그리고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그들에게 우연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들이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사정이 궁금해 은근슬쩍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사정은 이런 듯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들이 보도의 가장 바깥, 차도의 가까이에 가서 선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고, 아들이 그 말을 듣지 않자, 아빠가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나무란 것 같았다.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거기서 아들의 칭얼거림, 혹은 정당한 자기주장,이 시작된 거다. 왜 말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랬냐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아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아빠는 아주 덤덤한 말투로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지."하고 말했다. 아들의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내내 아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엄마는 짜증이 났다. "아, 그만해.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랬잖아. 말을 들었어야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들은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상황에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을까. 아이의 잘못, 혹은 아이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서는 혼내고 지적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렇듯 담담하고 무심하게, 아이의 항변을 듣지도 않은 채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아들에게 공감하며, 마음속으로 격하게 화를 낸 것은 나 또한 수 차례 비슷한 레파토리에 처해봤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 전, 내가 혼나던 상황들을 나는 패턴화할 수 있다. 주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엄마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말도 꽤 잘하는 편인 데다 고집도 세고 감정적인 나는 엄마가 싸움에 지치고 엄마를 감정적으로 바꿔놓을 때까지 몰아친다. 그러다 갑자기 가족 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아빠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혼낸다. 효자손 같은 것을 한 손에 들고는 한 번만 더 엄마에게 대들면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빠와 친하지 않고, 말이 아닌 다른 방식을 무서워하는 나는 더 항변하고 싶은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꾹 참고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걸어잠근다. 엄마와 나, 둘 사이의 문제를 아빠에게 넘겨 해결하려는 엄마에게 분한 나는 한동안 엄마와 말을 섞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항변을 이어간다.


권위주의적 해결은 간단하고, 신속하며, 편리하다. 부모의 감정소모를 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횡단보도의 그 아들이 부모에 대한 이성적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때, 아들은 자신의 권위주의적 부모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나는 청소년기 내내 "권위주의적인 우리 아빠는 불합리해.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자는 제안은 모두 허울뿐이야."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아빠에 대한 강력한 편견은 내게서 아빠의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면모를 발견할 기회를 빼앗아갔다. 그럴 마음의 구석을 남겨두지 않았다. 


지금의 편리한 권위주의는 횡단보도의 그 부모에게 장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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