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예슬 Oct 23. 2020

집안일이 체질

자존감과 웨이트 트레이닝과 집안일의 상관관계

요즘 유행하는 간단 성격유형검사를 해 보았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질문… 그거 가지고 어떻게 나를 다 알겠어?’ 머리론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부단히도 타임 킬링을 쫓는 내 손가락은 이미 사이트에 접속하는 중이었고.... 무엇보다 누군가 나에게 집중해주는 감각, 나를 쏙쏙 알아 맞혀주는 감각은 대단히 유혹적이다. ‘당신은 사실 이런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주나 타로, 신점 등은 아마 영원히 동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특정 사이비 종교 집단이 ‘심리 검사’를 구실로 사람들을 꾀어내는 전략은 아주 신통하다고 생각한다.


간이 MBTI 검사보다도 검사 문항이 적었던 SPTI 검사 결과, 나는 ‘오징어 숏다리’ 인간이었다. 시크하고 건조한 사람. 할 말 없으면 대화 종료. 남이 뭘 하건 노관심. 공감 능력 없음. 나한테 누가 간섭하는 것도 싫음. 내가 좋아하는 건 질릴 때까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재가 되면 그제야 일하는 사람. 오, 다 맞는 말이었다. “귀찮은 거 안하고 싶어요. 효율적인 게 좋고 노력은 최소화해요.” 그중에서도 이게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귀차니즘을 의인화하면 본가에 살 때의 내가 될지 모른다. 특히 고등학생 때의 나.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일단 교복을 벗는 게 너무 귀찮았다. 교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노닥거리다가 잠드는 바람에, 교복 입은 그대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방은 간헐적으로 치웠다. 삘 받으면 밤 새서 치웠고, 삘이 안 오는 평소엔 내 원리 원칙에 맞춰 어지럽히고 물건을 쌓아두었다. 내 눈엔 너무나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내 방인데 부모님 눈에 너무나 더럽게 보일 때면 잔소리가 뒤따랐다. 이렇게 사람이 기본도 안 되어 있는데 학교 공부 잘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 과연 반대의 상황에선 잔소리가 없었을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집에서 내 방의 독립권만큼은 보장해 달라는 항변은 먹히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뒤론 적당히 깨끗한 방 상태를 유지했지만, 집안일에 쾌감까지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집안 청소는 아빠가, 설거지와 요리, 빨래는 엄마가 했으니 애초에 나는 거의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가끔 모두가 먹은 걸 내가 설거지해야 하는 상황에는 못되게도 남의 일을 내가 한다는 부당한 느낌까지 받았었다. 집안일은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킹맘인 엄마가 대부분의 집안일까지 도맡는 부당한 구조가 우리 집에 자리잡혀 있다는 인식이 박힌 뒤론 의식적으로 집안일을 거들었지만, 여전히 남의 일을 보조적으로 ‘돕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가 독립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네 집 깨끗해?” 내가 혼자 살고 있다는 말에 잇따른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응. 깨끗해.” 질문자는 장난스레 반대의 답을 상정한 것 같았지만, 내 집이 깨끗한 건 팩트다.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팩트. 집에 놀러왔던 친구들도,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 방문했던 부모님도 인정한 부분이다. 내 집은 잘 정돈돼 있고 꽤 쾌적한 편이다. (물론 샤워 직후엔 간간이 머리카락 뭉치들이 화장실에 머무르긴 한다.)


게다가 나는 이제 집안일이 좋다. 좋아졌다. 아무래도 집안일이 체질인 것 같다. 집안일을 통해 기분이 개운해져 좋고, 집안일의 결과로 깨끗한 집을 얻어 좋다. 설거지와 빨래, 청소, 정리가 다 좋다. 하다못해 쌓인 쓰레기를 밖에 가져다 버리는 것도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생활의 모든 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내 삶 전부를 내가 스스로 통제하는 감각으로 되돌아와 좋다. 본가에선 내가 애써 방을 치워도 방 밖으로 나가면 내가 전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했다. 엄마의 감각으로 정리된 부엌, 아빠의 감각으로 쌓인 잡동사니들….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살았던 부모님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지만, 동시에 나와 완전히 분리된 타인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게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의 한 강연에서 만났던 장강명 작가는 ‘나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라는 감각에서 자존감이 나온다면서,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제안했었다. 몸만큼 정직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여기에 내 버전의 답을 하나 더 덧붙이겠다. 바로 혼자 사는 내 집의 집안일이다. 나는 아직 웨이트 트레이닝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하지만 집안일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엇비슷한 효과를 낸다. 나는 내 집안의 일 하나만큼은 완전히 제어하고 있다는 그런 확신의 감각이 있다. 집안일도 정직하다. 내가 한 만큼 깨끗한 결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여기서 쾌감을 느낀다.


나는 ‘집안일만’ 체질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결코 집안일이 주(主)가 되는 주부의 삶을 살 순 없다. 하지만 혼자 살아보니 집안일을 기꺼이, 즐겁게 부(副)로 삼을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


후! 벌써 책상에 먼지가 또 쌓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