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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Jun 20. 2022

여행하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하와이 오아후섬 여행 기록

당신은 몹시 들떴습니다. 무려 3년만에 여권을 쓰게 되었으니까요. 길고 고단했던 프로젝트를 마친 당신. 3주간의 연차를 낸 당신. 3차 백신 접종도 마친 당신. 당신은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목적지는 하와이의 오아후섬입니다. 


왜 하와이로 가느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의 친구가 말했어요. “우리 한국의 하와이 제주도에 가자.” 당신은 생각했죠. 진짜 하와이를 갈 수 있는데, 왜 ‘한국의 하와이’를 가야하지? 그래서 당신은 ‘진짜 하와이’로 떠나게 되었답니다.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 혼자서도 척척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당신이지만, 이젠 여행하는 법을 다 잊은 듯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욕심을 냅니다. '어쩌면 하와이에선 매일 아침 토스트를 해먹을지도 몰라.' 빵을 좋아하지도 아침을 챙겨먹지도 않는 당신이지만, 부푼 마음으로 토스터가 없는 에어비앤비는 후보에서 탈락시켰습니다. '틈날 때마다 와이키키 해변으로 산책을 나가야 한다고!' 틈이 날 때면 누워있는 것을 가장 잘 하는 당신이지만, 어쩐지 당신은 하와이에서 새로운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하와이 오아후섬에 도착했습니다. 


당신은 친구와 감탄 배틀을 이어갑니다. 하늘 색깔 좀 봐. 바다 색은 완전 에메랄드 빛이야. 완전 투명해. 바닥에 있는 산호가 다 보이잖아. 야자수 나무도 엄청 많아. ‘한국의 하와이’와는 비교가 안 되네. 이렇게 생긴 게 반얀트리였어. 날씨가 말이 돼? 미쳤다. 당신은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행복하다고. 행복은 날씨의 형태로 찾아오는 것이었다고. 하와이의 가장 큰 여행 상품은 단연 ‘4월의 날씨’여야 한다고 말이죠. 찰칵. 찰칵. 도무지 당신이 휴대폰을 내려놓을 수 없는 날씨입니다.


사실, 당신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당신입니다. 하와이를 즐기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당신. 그러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여행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하는 것이 ‘진짜’ 여행은 맞는지, 어쩌면 크게 소비하고 자랑하는 행위에 불과한 건 아닐지 심오해지다가, “앗 이건 정말이지 안 찍을 수가 없잖아!” 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지요. 당신은 언제나처럼 생각이 많고 언제나처럼 정답을 구하진 못합니다.


당신이 당신임을 잊었던 당신. 역시 모든 것은 욕심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2주간의 여행 중 단 한 번의 아침도 먹지 않았습니다. 에어비앤비 선반에 있던 토스터는 꺼내보지도 않았죠. 늦게 일어나는 여행자에게 아침을 먹을 여유는 없었답니다. 


당신은 정말이지 하와이에 와서 아플 계획은 없었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에 가고, 거대한 호오말루히아 식물원에 가고, 카카아코 파머스 마켓에 가고, 자전거로 카일루아를 돌고, 라니카이 필박스와 다이아몬드 헤드에 올라가고, 서핑을 하고, 스노클링을 하고, 노스쇼어까지 드라이빙을... 할 계획은 있었지만요. 하지만 당신은 원래 그다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지요. 과하게 열심히 돌아다닌 당신의 목구멍엔 결국 하얗고도 노란 염증이 피어났고, 하루는 온 몸을 집어삼킨 열 때문에 내내 침대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날이 있으면 열심히 쉬는 날도 있어야 했던 것처럼, 열심히 여행한 날이 있으면 열심히 여행을 쉬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오래 걸었으면 잠시 앉아야 하고, 숨을 고르며 물도 마셔야 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입니다. 하지만 텅 비었던 마음의 에너지를 채운, 조금은 달라진 당신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건 서울에 있을 때 당신이 매일같이 하던 일이었죠. 하지만 하와이엔 당신의 계획을 감시하는 이도, 평가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니 실수할 여지도 없죠. 이곳에선 당신의 어떤 계획도 성공입니다. 그러니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그래서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해도 즐겁습니다. 누워서 전자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당신. 알라모아나 해변에 터를 잡고 누운 당신은 당신의 습관에 알라모아나의 파도 소리를 더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이라는 사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당신의 조각을 찾는 여정. 이게 여행의 이유였던가요. 이제 조금은 여행하는 법이 기억날 것도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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