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인장 Aug 09. 2016

그림자의 무게

[사랑을 배운다]&[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두 존재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들은 서로의 그림자로 태어나 완벽한 개별이 되지도, 하나가 되지도 못한다. 서로에게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 그것은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찰나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 작은 차이가 권력과 의무를 부여한다. 그들은 그렇게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갖고 살게 된다.
형제, 자매, 그리고 남매로.
타인의 시선에서 하나인 그들이 사실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그들의 비극이다.



  두 권의 책은 각각 자매와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배운다]의 로라와 셜리는 열한 살 차,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여성 작가들은 그들이 한 부모를 두어서 겪어야만 하는 비극을 개성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고타의 소설은 사실 형제의 이야기라고만 하기에 많은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녀조차 정확하게 지명하지 않고 상황만 보여줍니다. 역사보다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녀는 그 이야기를 자신과 오빠가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여성작가의 개성은 문제와 구성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추리소설의 여왕인 아가사의 노년기에 쓰인 이 책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문체와 스릴 있는 구성으로 우아하고 완벽한 비례를 갖춘 르네상스 조각상 같습니다. 그 발끝부터 얼굴까지 찬찬히 훑어보아도, 한걸음 물러나 전체를 보아도 매끄럽습니다. 반면 아고타의 꾸밈없고 담담한 문체는 장인의 벽돌로 쌓은 균형미 있는 건축물의 느낌을 줍니다. 벽돌 하나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그것의 위치가 완벽하고 쌓임이 깔끔합니다. 그리고 가끔 그 벽돌이 어디선가 날아와 뒤통수를 스치고 떨어집니다.  기분 좋은 놀람이 장난처럼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같은 부모를 두었을 뿐인 두 개의 인격은 종종 비교로 개성을 무시당하거나 차별받습니다. 개별의 존재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음으로 일어나는 비극입니다.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은 생존에 직결된 사항이다. 한정된 자원의 분배는 서로를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언제나 부족함을 겪고 있는 한쪽뿐이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다 자책하고는 결국 포기해버린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그들이 생존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사라진 한쪽의 그림자로 일생을 살아야만 한다.


 '열 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고 합니다. 그중 더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가장 아픈 손가락 하나 때문에 나머지가 병들어 썩어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두 책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항상 어머니입니다. 한걸음 뒤에서 출산과 육아를 겪어 비교적 객관적인 남성과 다르게 직접 겪은 여성은 그들의 애착과 상실을 더 강하게 느끼기 마련인가 봅니다.  


  찰스.... 금발머리를 젖히며 웃던 찰스. 매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밝고 잘생기고 총명한 아이였다. 정말 특별한 아이였다. 자식 하나를 데려가야 했다면 로라를 데려가시지... -중략-
'우리 아들... 예쁜아들... 내 새끼... 아직도 믿기지 않아. 차라리 로라였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앤절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보다 냉정하고 솔직하고 더 감정에 충실했다.

[사랑을 배운다]-8p


  로라는 태어난 순간부터 둘째였고 마지막까지 그랬습니다. 그녀가 태어나자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오빠가 있었고 그가 소아마비로 세상을 뜨고는 작고 예쁜 셜리가 태어납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한 아이의 마음은 신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로라는 그녀의 부모에게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손가락일 뿐이었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가장 정확하게 본 사람은 이웃에 사는 독신인 존 벨 독 교수뿐이었죠. 그는 로라의 부모를 탓하지 않고 그녀가 속한 위치로 그 사실을 설명합니다.


 "둘째 아이의 문제는 실망스러운 결말이기 쉽다는 거야." 존은 훈계하는 투로 말했다. "첫아이는 모험이지, 첫 출산은 두렵고 고통스러워. 여자는 출산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남편 역시 그렇게 생각해. -중략- 그런데 대개는 갑자기 잇달아 둘째가 생겨. 앞선 과정이 모두 반복되지만 이번에는 별로 두렵지 않고 대신 훨씬 지루하지. 그래서 태어난 아기는 두 사람에게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서의 의미가 없어. 부모에게 크 위험 부담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근사하지도 않고."

[사랑을 배운다]-21p


  클라우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겨진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사라진 자신의 반쪽인 쌍둥이에게만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클라우스에게 어머니의 사랑이란 창밖에서 지켜보는 만찬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아이.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고 나서, 루카스 몫인 세 번째 접시를 찬장에 도로 넣거나, 아니면 개수대에 던져서 깨뜨려버리거나, 루카스가 거기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음식을 덜어주기도 했다. 또 어머니는 한밤중에 내방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루카스의 베개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잘 자, 좋은 꿈 꾸고. 안녕. -중략- 어머니는 정부가 주는 돈을 받으면, 그 길로 시내에 가서 비싼 장난감들을 사다가 루카스의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 그녀는 내게 경고까지 했다.
-여기 손대면 안 돼. 이 장난감들은 루카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놔둬야 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3권 184-185p





  두 권의 책에서 일어난 각각의 사건으로 그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로라의 삶은 셜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되고 루카스에게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이 됩니다. 그렇다고 셜리와 클라우스의 삶이 충만하고 완벽한 하진 않습니다. 셜리는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는 로라의 사랑이 무겁고 버겁습니다. 클라우스는 루카스가 나타나면 자신의 가치 없음이 증명될까 두렵습니다. 일방적인 것 같았던 비극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라의 그런 마음을 잘 아는 건 이웃의 존 벨 독 교수입니다. 그는 독신에다 심술궂은 사람이지만 상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봅니다. 그는 종종 혼자 있는 로라에게 말을 붙이며 그녀를 초대하기 위해 단 음식을 잔뜩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의 로라가 개를 키워야 한다는 말에서 그녀의 불행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알 수 있습니다.  

 

 "개는 말이야." 존이 강의하는 투로 시작했고, 그의 말투는 언제나 듣는 사람을 몹시 짜증 나게 만들었다. "인간의 자아를 발달시키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거든. 개에게 주인은 경배하는 신 같은 존재야. 오늘날 퇴폐적인 현대 문명 속에서 신은 경배보다는 사랑을 받는 존재라 할 수 있는데, 개에게 주인이 바로 그래. 많은 사람들이 개를 기르고 싶어 하지. 그게 자신들을 중요하고 힘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거든."

[사랑을 배운다]-18p


  악동인 루카스의 눈으로 보기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욕으로 부르는 할머니도, 품에 안고 재워주는 선생님도, 후원인인 페테르도 그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 사실을 은근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재 탄생시켜 자신의 노트에 등장시켰을 것입니다. 따뜻한 다정함을 겪어보지 못한 그는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클라우스는 함께 하는 것 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부정하고 비어있는 쪽을 찾아 외로움을 자청합니다.

  그들은 하나였다가 둘로 나뉜 쌍둥이입니다. 생의 시작이 그랬고 국경을 기준으로 나뉠 때도 그랬습니다. 루카스의 노트가 클라우스에게 넘어갔고 그것은 클라우스의 손에서 하나의 책이 될 것입니다. 서로 달라져 버린 그들이 책으로 하나가 된다는 힌트를 서점 주인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2권-302p



  두 권의 소설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함께 소개한 이유는 그 중심이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냉정하다 싶을 만큼 정밀하지만 따뜻한 관심으로 그려진 이야기는 그들의 불행을 보여주면서도 행복을 빌어줍니다.


  삶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경쟁자. 종종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인 일들을 강요받기도 하는 관계지만 부모님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할 동반자. 소설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모든 형제는 약간의 비극을 겪어야만 하는 관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에게 닥친 비극이 결코 한 명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들로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겠습다.

작가의 이전글 어설픈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