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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Mar 31. 2017

열세 번째 잔, 버블티

마음의 맛

  다갈색 밀크티 아래 까만 타피오카가 빼곡하게 담겼다. 검지 손가락만큼 굵은 빨대를 빠르게 내리꽂자 밀봉되어 있던 컵 안에서 홍차 향이 폭하고 피어오른다. 빨대 끝에 걸리는 말랑거리는 촉감. 천천히 빨아들이면 입으로 들어온 밀크티 향이 같은 속도로 코를 지나가고 타피오카는 빨대 끝에서 오르락내리락 제자리를 맴돈다. 이렇게 계속. 



"그럼 여행을 둘이서가?"

"응. 한 명이 휴가를 못 냈어."


  연신 놀랍다는 반응이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할 긴 시간도 없어고 기력도 없었다. 나는 네가 흥분해 떠들도록 내버려두기로 한다. 


"그 친구가 여행 가서 너한테 고백한다. 분명."


  그냥 두었다가는 산으로 갈 것 같은 너의 호들갑에 조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아니라고 부정하자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있을 수 없단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물오물 씹다가 나도 모르게 넘기고 다시 한 모금 빨아들인다. 까만 진주알 같은 타피오카 한알.

마음이 동글동글 구르다가 밀려나듯 씹힌다. 머금고 있던 밀크티가 입술과 같은 온도가 되면 슬쩍 삼키고 입안에 남아있는 차 향이 향기롭다. 마음이 봉긋 솟았다 탱글탱글 구른다. 

  당사자인 내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너는 호기롭게 오만원을 걸겠다고 말한다.  이해시키길 포기하고 빨대만 힘차게 불어댄다. 표면에서 터지는 거품들이 내는 보글보글 소리에 끊어진 대화. 남녀가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는 한 명이 마음을 숨겨야 한다던 너의 말을 의미 없이 생각해본다. 


네가 나를 좋아할까.

까만 한알.

내가 너를 좋아할까.

또 한알.

 알면서도 너의 말에 설레는 게 내 마음이 너의 말에 달렸구나. 


  우리가 지금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좋아서가 아니라 싫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매일 매 하루를 설명할 필요 없고 가볍게 만나고 편하게 헤어진다. 내가 골라낼 음식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며 네가 못 먹는 음식을 내가 기억한다. 내 지난 연애사의 구차함을 네가 알고 너의 지난 여자들을 내가 기억한다. 

  우리의 만남은 무던하고 평범하다. 불편하지 않다. 열정적인 마음보다 평범함을 더 원하는 이유는 이제 우리가 사람에게 지쳐서 일 것이다. 이걸 내가 너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너는 우리를 이해할 마음이 없기에.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너는, 우리는 무엇인 걸까.  


 다갈색 밀크티 아래 까만 타피오카가 빼곡하게 담겼다. 검지 손가락만큼 굵은 빨대를 빠르게 내리꽂자 밀봉되어 있던 컵 안에서 홍차 향이 폭하고 피어오른다. 빨대 끝에 걸리는 말랑거리는 촉감. 천천히 빨아들이면 입으로 들어온 밀크티 향이 같은 속도로 코를 지나가고 타피오카는 빨대 끝에서 오르락내리락 제자리를 맴돈다. 이렇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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