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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15. 2019

개 입니다만 지나가도 될까요?

큰 개의 외출


  이 글이 개에 대한 공포를 혐오로 매도한다고 삭제하길 바라시는 분이 있어 재차 확인하였으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이 있기에 미리 고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개에게 인사해주었던 어떤 작은 아이의 완벽하고 사랑스러웠던 인사에 감동하여 쓴 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지만 간혹 생각하시는 바를 인지하지  못하고 내뱉으시는 말에 상처 받았던 내용도 있습니다. 반려견과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 모든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편협한 견해가 나타나 있을 수 있습니다.




  주말 아침, 햇볕이 투명한 것을 보니 미세먼지 수치가 낮을 것이 분명했다. 산책을 나가지 않을 핑계가 없었다. 이런 외출하기 좋은 날씨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개가 산책하기에 좋은 날은 아니다. 12kg의 중형견인 봉구에게도 그런데 대형견들은 어떠랴.  


  요즘같이 개 물림 사고에 대한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올 때면 개들의 산책길은 더더욱 험난해진다. 알고 있다. 내 개가 타인에게는 위협적인 생명체라는 것을. 중 대형견과 사는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그렇다. 보통 새벽에, 밤에 인적이 드문 길로 산책을 다니지만 마주침은 피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 누가 탈까 조마조마하며 12kg짜리 개를 안고 구석을 향해 등 돌아 서있고, 길에서 마주치면 화단으로 들어가 서서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럼에도 날 선 말들은 귀에 꽂힌다.


“어휴, 뭐 저런 걸.”

“저렇게 큰 개가 입마개도 안 하고 나왔어.”

“개를 아파트에서 왜 키우는 거야?”

“개가 너무 크잖아.”


  대부분의 저런 말들은 혼잣말처럼 흩뿌려져 대꾸를 하기가 어렵다. 내게 어떤 행동을 원하는지 답이 없어 무언가를 해주기도 어렵다. 결국 한 손에 안기는 소형견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늦은 밤에 산책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끔은 계절이 바뀌었음을 햇살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 조심스럽게 산책을 나간다.


  이른 시간임에도 날이 좋아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은 많았고, 게다가 도청사 앞 광장에는 플리마켓이 열려있었다. 함께 산책 나온 동생이 살짝 둘러보고 오겠다 해서 멀찍이 봉구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여자아이가 멀리서 봉구를 보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멍멍이” 하고 작게 말하길래 무서운 건가 싶어 앉아있는 봉구의 하네스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살짝 웃어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굳은 듯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넓은 광장에서 딱히 몸을 숨겨서 피해줄 만한 곳이 없었다. 아이는 천천히 바닥에 조심스럽게 쭈그려 앉더니 양손을 들어 살짝씩 흔들었다.  

“멍멍이 앉아.”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가 “응, 멍멍이가 앉아있어.” 하고 말하는걸 보아 봉구가 앉아있어서 아이도 따라 앉은 모양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완벽한 인사였다. 위협적이지 않은 안정 거리. 눈높이에 맞춘 자세 낮춤.


  보통 아이들의 경우 돌고래 울음 같은 고음으로 “강아지다.”를 외치며 돌진하거나 무작정 만지겠다며 다가와서 봉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경우 겁 많은 봉구는 꼬리를 다리사이로 말아 넣고는 정신을 놓고 반대방향으로 도망가려 하거나 안아달라고 펄쩍펄쩍 뛴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인사는 마치 잘 배운 대형견 친구들의 매너와 비슷했다. 자세를 낮추고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음으로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이의 순수함이 교육으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본능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후, 뭐 저런 걸.”  

“그렇죠. 제가 저런 대단한 개와 사네요.”


“저렇게 큰 개가 입마개도 안 하고 나왔어.”

“일단 위법은 아닙니다만 저희 개에게 공격성이 보인다면 하려고 준비는 해뒀습니다.”


“개를 아파트에서 왜 키우는 거야?”

“저도 봉구를 위해 마당 딸린 집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조금 도와주시겠어요?”


“개가 너무 크잖아”

“그렇죠. 사료값 좀 썼습니다.”


  이런 대화는 서로 기분만 상할 뿐 답이 없다. 가능하다면 정확이 행동을 요청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개를 무서워해서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 주세요.”

“제가 지나가는 동안 개를 확실히 잡아주세요.”

“개를 잠깐만 안아주시겠어요?”


   내 개가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무처럼, 공기처럼 평안하고 무관심하게 잠깐 쉬었다 가길 바랄 뿐이다. 혐오의 발언이 아니라 요청과 대화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 살아온 동물이지 않은가. 멀리서 자세를 낮춰주던 아이의 사랑스러운 관심 표현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었다.


  분명 우린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갖추고.

 

실례지만 저희 잠시 여기서 쉬다 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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