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중 딱 1초를 다시 살 수 있다면
샤넬의 대표 시계, J12가 출시 20주년을 맞았다. 김고은부터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까지. 샤넬의 뮤즈들이 "지난 20년의 세월 중 딱 1초를 다시 살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담은 광고 시리즈가 20주년을 기념해 유튜브에 올라왔다. 놀랍고 신비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평소 광고를 둘러보길 좋아하는 나를 샤넬의 J12 광고로 이끌었고, 그중 하나가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을 잡아두었다.
"지난 20년 중 1초만 다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앞으로 다가올 1초를 선택하겠어요."
행복한 과거의 순간보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앞으로의 1초를 선택하겠다는 파라디의 말은,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의 1초를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의 과거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후회하는 건 없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제 많이 괜찮아졌다,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줄곧 말하던 나였지만, 이 광고를 보며 나 자신에게 그렇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몇 달간 끝도 없는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렀고, 나는 여전히 내가 싫어하던 과거의 나와 화해하지 못했고,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었다. 어떻게든 겉은 웃으려 하고 있었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바네사 파라디가 말한 대답은 절대 쉽게 나올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수많은 역경과 고민, 슬픔과 분노의 순간들을 온전하게 살아내고, 과거의 상처들까지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며 안아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답할 수 있는, 그런 한 마디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과거라는 거울을 정면으로 쳐다볼 자신이 없는 나에게, 파라디의 대답은 그래서 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2020년이 되었고, 삶은 여전히 쉽지 않다.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고, 막막한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의 절반쯤에 온 지금부터는, 어색하게나마 내 과거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더 열심히 하려 한다.
지난 20년의 1초가 아닌, 내일의 1초에 더 설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내 주변 사람들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