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hanmary Mar 12. 2024

이토록 정성스러운 혼자만의 밥상이라니

오늘은 뭘 해 먹어 볼까?

가장 먼저 산 것은 양장피 그녀에게 선물했던 유리잔이었다. 사실 첫눈에 반한 첫 컵이었다. 집에서 살림을 거의 안 하다시피 하니, 그릇이나 컵등의 식기류에 당연히 관심이 없던 나였다. 하지만 이 컵은 어쩐지 그녀에게 주기보다는 내게 선물하고 싶던 컵이었다. 같은 컵이면 어떠하랴. 내 찬장도 내가 사랑하는 그릇들로 채우고 싶어진 첫 순간이었다. 


예쁜 유리컵이 생기니 어쩐지 대충 차려먹는 또는 먹어치우는 내 밥상이 미워졌다. 이 컵에 맛있는 생과일 주스를 따르고, 그에 어울리는 브런치가 먹고 싶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재테크 관련 영상만 가득하던 내 유튜브는 어느덧 요리 관련 영상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1층에 있는 빵집에서 맛있는 식빵을 사다가 프렌치토스트도 해 먹고 어쩌다 가끔은 파스타도 해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대부분 혼자 먹는 음식이어서 그런지, 몹시 흡족하게 즐거운 식사자리는 아니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라기 보다는 어쩐지 한 끼를 때우는 것 같은 식사시간이었다. 분명 전보다는 식사시간이 즐거워졌지만, 아직이었다. 식사시간 또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점심시간은 12시였다. 하지만 지금 나의 점심시간은 11시이기도 했고 2시이기도 했다.  20년이 넘게 혼자 먹는 시간들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혼자 먹는 밥은 어쩐지 영원히 맛있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 된 유튜브 동영상 하나는 내 집밥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된다. 그녀는 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가정주부였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며 지냈던 것 같은데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전업주부가 된 것 같았다. 동영상으로 통해 접한 그녀는 어쩐지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밥보다 빵을 좋아하던 그녀는 매일 아침 부지런히 빵을 구웠고 음식을 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새댁인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 얼마나 오랫동안 집밥을 해 온 것일까. 레시피 따위는 보지 않고 계량계량 따위는 개나 줘버린 그녀는 정말로 그저 감으로 음식을 뚝딱뚝딱 차려냈다. 그녀의 음식 솜씨에 놀란 것은 잠시, 그녀는 다음 장면에서 나를 더 놀라게 한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예쁜 접시에 곱게 차려낸 그녀. 점심부터 손님이 오시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럴 수가 이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상차림이 아니던가. 그녀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하루 3끼를 꼬박 차려먹는데 최소 2 끼니는 혼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상차림은 대단히 귀한 손님이 맞는 것처럼 정성이 넘쳤다. 간단한 한 끼 식사를 뚝딱 만들어 냈지만 예쁜 그릇에 소복이 담았고,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담아냈다. 그녀의 밥상을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한 음식을 음~~~ 하며 감탄하며 먹는 그녀의 모습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이토록 정성스러운 혼자만의 밥상이라니. 


그랬다. 그저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주 작은 마음가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예쁜 컵과 어울리는 그릇들을 샀다. 그저 편하게 쓰고 싶어서 산 코렐들을 당근마켓에 팔아버렸다. 편하게 쓰지 못한다고 해서 사지 않았던 무거운 도자기그릇들을 들였다. 다소 무겁기도 했지만 예쁜 그릇들에 담아 먹을 음식들은 생각하지 어쩐지 웃음이 지어졌다. 올리브오일을 사고 발사믹식초도 사 본다. 꿀도 사보고 맛간장도 사본다. 여전히 나는 초보요리사였다. 내가 참고할 만한 레시피들에서 필요하다고 말하는 소스나 양념들이 내 냉장고와 찬장에는 있지 않았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빠지면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역시 그랬다. 최소한의 양념들은 구비를 해 놓으면 뭔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얼마나 이 양념들을 쓰면서 내가 요리를 하게 될까라는 생각에 갸우뚱해졌지만, 그래도 만만의 준비를 마쳤다. 


혼자 먹는 밥상이지만 정성스럽게 차렸다. 예쁜 접시에 소복이 담았다. 더 이상 나는 한 끼를 때우는 밥상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밥상을 기록해 본다. 나날이 요리사가 되어 가는 기쁨에 친구들을 한 스푼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나의 집밥인생과 홈파티 인생이 시작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니 오늘은 양장피를 준비해 봤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