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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건오 Sep 06. 2023

도면을 친다는 것

설계사무소 직원으로서 나 스스로를 낯설게 보는 것


언어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도면은 권력이다



대학 수업에서 도면은 건축가들의 언어이며 유일한 규정(code)이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부 연구생 시절에 연구했었던 BIM 4차 프로젝트에서 제 업무 범위는 '공간'을 '컴퓨터 코드'라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미리 변형해둔 건축 법규(code)에 어긋나는지 확인하는 기초 작업 이었습니다.


이때, BIM을 표준으로 가져가려는 국토부의 기조 연설을 들으면서 한 업계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디자인은 통용되는 언어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도면에서 CAD도면으로, 관공서 납품이 프린트된 도면에서 세움터 파일 업로드로 바뀌는것을 언어의 변화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미약하게나마 기여한 연구는 기존의 언어체계와는 완벽하게 다른 개념이므로 나름의 큰 사명감을 가지고 CAD라는 언어를 BIM이라는 언어로, 선들의 나열을 정보로, 그림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것에 몰두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학부시절 저는 발표를 잘하는 편이었고, 모든것을 도면에 표현하는 정교함보다는 "말로 떼우려고 한다"라는 평가를 종종 받았습니다. 설계성적은 늘 좋았으므로 디자인에 대한 평가였다기보다 선배들이 "나"란 사람에 대해 약점을 지적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하였지만 실제로 도면의 모호함을 말로 커버하고 즉흥적으로 대했던것도 맞습니다. 솔직하게 도면 치는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3D표현이나 BIM과 같은 프로그램에 좀 더 관심이 있었던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저의 약점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서울시 "함께 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화장실 도면만 다루게 되었습니다. 17개 학교를 실시 도면까지 치며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졸업하고 취직했던 회사는 기획 업무를 중점으로 다루는 회사였고, 라이노와 엔스케이프와 같은 실시간 렌더 프로그램을 다루면서 좀 더 시각적으로 "쨍"한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열중하였습니다.  


학부 연구생 시절 수강했던 대학원 수업에서 도면을 작성하는 방법에 따라서, 건축가의 생각과 표현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였고 디자인 툴이 손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AI로 넘어오면서 경계가 불분명하고 객체 스스로가 기능으로만은 정의 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언어를 생산하는 도구가 인간의 생각의 범주를 결정함을 깨닫게 되며, 내 생각의 자유로움이 도구에 한정지어진다는 사실에 한때는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고 한때는 현존하는 툴들을 다 다룰 수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한때의 꿈이자 목표이지만, 스스로가 부단히 노력해야하는 하나의 경지로 (비록 당연하게 불가능할지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사실 설계 사무소의 직원으로 있으면, 당연하게도 '도면'을 볼 수 있는 사람들 하고만 미팅하게 되다보니 "도면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간혹, 나이드신 교수님들이 도면 수정이나 도면을 못보시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분들이 그분에 대해 평가를 박하게 하는것을 들으며 저 또한도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고 두세번 더 체크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로 '도면을 보는 것'과 '도면을 수정하는 것'은 우리 업에서 당연하다고 느꼈습니다. 


회사에 있으면 그래서 이런 저런 부탁을 받습니다. 다른 인테리어 회사의 견적과 여러 디자인을 보여주면서 이게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난처한 부탁 부터 좁은 공간이니 도면 좀 쳐줄 수 있냐는 무리한 부탁까지 "도면"을 수정하고 고민하면서 전문가의 견해를 요구하면서 간단한 일인듯 정말 부탁(의뢰가 아님)하는 경우가 많았고 거절할때마다 "도면 치는게 무슨 대수냐!"라는 식의 핀잔을 듣고도 그래도 내가 건축 설계 일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찾아준게 어디냐는 위로를 스스로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탁을 받았고 "내 프로젝트로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동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늘 찾았던 것은 적은 예산이여도, 디자이너의 의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말그대로 "꿈의 클라이언트"를 고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돈 버는 일보다 가슴 뛰는 일, 명분이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아직 철없는 건축가의 몽상 내지는 망상 같은 고집입니다.


그 결과, 건물을 몇개나 세우고 집을 몇번이나 인테리어를 하며 준전문가에 다다른 회사에서 자주 뵙던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정말 난생 처음 인테리어를 하고, 난생 처음 나의 공간을 디자인하며 예산 뿐만 아니라 도면을 보는것도 어려워서 현장에서 먹줄로 그려주며 설명을 한 진정한 의미의 "일반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 저도 또한 회사가 가지고있는 탄탄한 자원은 사용할 수 없으므로, 목수부터 청소 잡부까지 직접 전화하고 소개받으며 인력을 구축하고, 자재상에 하나하나 연락하고 B2B 계약을 급하게 맺으며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클라이언트도 나도 프로가 아니라 배워가는 일들을 시작하였습니다.


면목 두산 아파트 인테리어 수리 공사 (가)도면 _ 23년된 구옥으로 나름의 장단이 있다


6~8월 나의 최선을 넣었던 시간들입니다.  두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끝내고 프로젝트를 복기하면서 나의 잘잘못과 나의 상념들을 소회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중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을 인용으로 표현하자면,  "언어는 권력"이라는 미쉘 푸코의 견해입니다.  내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소통했던 방식은 "도면"이라는 언어였습니다. 내가 존중받고 끝까지 그 현장에서 책임을 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고 "도면"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디자인을 도면이라는 언어로 권위를 가지게 하였고, 권위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유를 통해 이것이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그래야만 했다'라는 일관된 논리 체계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디자이너인 내가 전면에 나선것이 아니라 '도면'이 그자체로 권위를 가지게 했던 현장입니다. 물론 권위와 권위적인것은 구분해야하므로, 때론 도면이 독선적이고 권위적일까봐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하며 수정하고 변형하였습니다.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기분이 상하기도 했고 그것은 나의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던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럼에도 제 목적이 이 현장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좋은 공간"을 예산 안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므로 싸워서라도 설득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표현이 과격하고 고쳐야할점이 많지만 어쩌면 정말 순수하게 돈이 목적이 아니여서 그랬나봅니다. 도면을 나와 클라이언트의 합작물이라고 생각하였고, 어떤 순간에도 이를 구현하는것이 우선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어려운 현장이었습니다. 처음보는 목수들, 타일공들, 전기 사장님등과 협업하며 이 도면이 왜 이래야하는지, 작업 하기 힘들어도 왜 이렇게 해줘야하는지 설득했어야 하고 이 20~30년차 선배들을 설득하기위해서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했어야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사수가 없으니 물어볼 수 없었고 스스로 자책하며 스스로를 기대어 진행했습니다.


언어는 권력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도면대로 진행했고, 도면대로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마감이 부족한 부분은 도면에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잘 된 부분은 도면에 디테일을 풀어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의 손(도면)이 닿은 부분은 잘 되었고, 안 닿은 부분은 미흡했습니다. "언어는 권력"이라는 말 뒤에 괄호치고 (언어는 나의 책임)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권위를 가진 이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산안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잘 마무리 된 것으로, 그리고 앞으로 사는 이가 그곳에서 안온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첫번째 내 생각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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