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상의 끝에, 다음 학기부터는 수업을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의 짧은 실험은 마무리되었다. 적은 돈에 만족하며 왕복 8시간을 출퇴근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물론 학생들과의 만남은 재미있었고 보람도 있었지만, 돈을 뛰어넘는 보람은 없으니까.
그리하여 2022년 2학기 홍대 강의를 맡은 마지막 수업 주였다. 아쉬움을 뒤로한 내 마음을 알아주듯이, 서울은 때 이른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아침 기온은 -9도 아래로 떨어졌고, 체감 기온은 -15도라는 예보를 보았다. 역시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실 서울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겨울마다 찾아오는 남극을 뺨치는 추위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실제로 체감온도가 남극보다 낮은 때도 발생한다고 했다. 남극 기지에서 근무한 분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서울이 더 춥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그렇게 서귀포는 내 중년의 터전이 되었다. 적어도 10도 정도는 높으니, 겨울이라도 훨씬 살만 하다.
추위에 관해선, 나도 엄살이 심하긴 하다. 인정한다. 하지만 날씨도 충분히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서울, 정확히는 광교에 살 때다. 2017년 1월 4일이었다. 너무 추워서 날짜도 기억한다. 아침에 개를 산책시키려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갔는데, 갑자기 칼바람이 후려쳤다. 말 그대로 내 뺨을 후려쳤다. 추운 걸 떠나서 너무 아팠다. 나도 모르게 열받아서 소리를 질렀다. "야이 시발 새끼야!" 누가 시발 새끼인 건지 목적어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욕을 해야만 하는 그런 날씨였다.
.
수요일 새벽 출근을 앞두고 화요일 밤 짐을 싸면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복을 입을까 말까? 당연히 입어야지. 아내가 말했다. 내복을 입으면 맞는 바지가 없는데? 양말은 뭘 신지? 신발은?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며 늦게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어 집 밖을 나서는데, 서귀포의 추위도 만만치 않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한라산 중턱을 넘는데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역시 내복을 입기 잘했다. 제주가 이 정도면 서울은 훨씬 독할 테니까.
공항에서 공항 전철역으로, 전철을 타고 홍대입구로, 홍대 입구에 내려서 개찰구로. 개찰구를 지나치자 본격적인 냉기가 느껴졌다. 역시 시작되었구나. 거대한 전장에 출정하는 졸개의 기분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막상 출구 위로 올라오니... 그렇게 춥지 않았다. 아니 추웠다. 그런데 버틸만한 추위였다. 칼바람이 내 뺨을 후려치지도 않았고, 나도 모르게 쌍욕을 내뱉지도 않았다. 뭔가 맥이 풀리는 기분. 이 정도 추위를 가지고 뉴스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인가? 나는 그렇게 중무장을 한 것인가? 그렇게 겁을 먹은 것인가? 물론 춥긴 추웠다. 생각보다 괜찮네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내 속눈썹에 작은 고드름이 생겼다가 녹고 있었다. 정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진정한 위기와 공포는, 예상하지 못했을 때 완전히 방심한 상태에서 찾아온다.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걸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서프라이즈'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몇 번 경험해 본 것은, (당연히) 처음보다는 훨씬 견딜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홍대 정문 쪽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숨이 차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20대 학생들이 부지런히 등교를 하고 있었다. 방금 자다 깬 듯한 남학생은 손이 벌겋게 얼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는데 앞을 걸어가는 여학생은 수면바지를 입고, 수면양말과 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