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신입사원 시절, 입사 동기 중에 나이가 많은 누나가 있었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뒤늦게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 입사한 케이스였다. 그 누나는 부자였다. 자기 입으로 부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 누나는 새하얀 피부에 동안이라서 네댓 살 어린 동기들보다 훨씬 더 어려 보였다. 본가는 타워팰리스였다. 입사하고 얼마 후 결혼을 했다. 남편분도 본가가 타워팰리스라고 들었다. 누나의 신혼집도 타워팰리스였다.
그 누나는 결혼하고 얼마 후 출산휴가를 갔다. 1년 가까이 보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회사에 복직해 있었다. 회사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처음 가진 의문은 '왜?'였다. 그때만 해도 부자에 대해 이유 없는 거부감을 느끼던 삐딱한 20대 남자였던 나는, 오랜만에 만난 누나에게 솔직하고 해맑게 질문했다.
"누나, 굳이 힘들게 회사 안 다녀도 될 텐데 왜 복직하셨어요?"
그랬더니 그 누나는 정색하며 답했다.
"신욱아, 아기 키우는 게 회사일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 힘들어."
"너는 모를 거야. 정말 아기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고 바쁜지. 진짜 진짜 여유 시간이 하나도 없어. 나 진짜 집에 있어도 샤워할 시간도 없었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니까? 회사가 훨씬 덜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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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흘러 12년? 13년이 지났다. 나는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아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아침, 아기 방에 있는 모든 패브릭을 창 밖에다 털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깨달았다. 샤워를 한 지 3일이 지났다는 것을. 아기는 태어난 지 56일이 되었다.
누나 미안해요. 12년? 13년 전에 누나를 오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