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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Jul 20. 2023

자네는 이 땅의 기운을 버틸 수 있겠는가

제주도 최고의 풍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롤스로이스를 탄 나이 지긋한 회장님이 추천한 제주 최고의 풍수, 서귀포 칼 호텔에서 우리들 CC 사이 토평동 일대. 생각해 보니 제주에서 성공한 이왈종 화백의 (과거 작업실이자) 현재 미술관이 그 위치의 끝자락에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있다. 언젠가 왈종 미술관의 풍수에 대한 이야기를 동료 교수님께 한 적이 있다. 왈종 미술관이 풍수가 좋은 것 같다고 예찬론을 펼쳤더니 이 교수님이 정색하는 것이다. "거기가 4.3 사건 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요. 정방 폭포 가면 한여름에도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고요." 


깜짝 놀라 찾아봤는데, 사실이었다. 정방 폭포는 서복 공원과 왈종미술관 사이에 놓여 있다. 4.3 사건 당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방 폭포 근처에서 희생되어, 폭포가 핏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서복 공원 안에는 희생된 제주 도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비도 있다. 


4.3 사건은 생각보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제주로 이사오기 전에는 그런 과거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토박이들의 경우 오랜 조상이나 이웃 중 희생자도 있었다고 한다. 4월이 되면 제주 전역에 4.3 사건과 관련된 캠페인이 벌어진다. 


이왈종 화백도 정방 폭포의 사연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럼에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아무튼 이래저래 대단한 분이긴 하다. 태연한 강심장으로 그 옆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잘도 살아오신 것이다. 어쩌면 그런 기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타고난 그릇인 것일 수도 있다. 사람에게 그릇의 크기는 존재한다.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자기 그릇으로는 역부족인 사람도 있다. 


제주도에 살다 보면 영적인 땅이라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풍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기운이 강한 곳'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된다. 또 다른 기운이 강한 대표적 지역으로는, '박수기정'을 들 수 있다. 


박수기정은 중문과 산방산 사이에 놓인 절벽 지형이다. 중문에서 해안가를 따라 예래 포구로 내려가면, 산방산을 등진 채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을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어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면, '짠' 하고 기막힌 경치가 펼쳐진다. 산을 등지고 숨어 있는 해안 마을인 것이다. 마을 서편의 절벽을 보면 뭔가 고대 장수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몇 년 전, 그쪽에 주택을 지어보면 어떨까 하고 땅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마을 동편에 베이힐이라는 리조트가 있는데, 그 뒤편 언덕 위에 주택들이 모인 땅이 있었다. 언덕을 따라 경사진 땅이었다. 뷰가 정말 좋았다. 언덕 위에서 박수기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물로 나온 땅 옆에는 누군가 이미 근사한 주택을 지어 놓았다. 


그 주택은 진입로에서 보면 주차장만 덩그러니 있다. 하지만 경사를 따라 아래로 지어진 집이라 실제로는 3층 정도 높이였다. 거실 창으로 경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봐도 굉장히 비싸게 지은 집 같았다. 부자 동네들 중 언덕에 자리 잡은 곳들이 종종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언덕 위 진입로에 1층만 보이고, 경사를 따라 아래로 층이 늘어난다. 프라이버시와 뷰를 둘 다 잡는 것이다.


아무튼 그 주택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80년대에 유명했던 모 가수분의 소유였다. 그분은 9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가 되었고, 지금은 유명한 부동산 투자자라고 한다. 제주에 이주했을 때 그 땅을 발견해 주택을 지은 것이다. 언젠가 TV프로에 나와 근황을 공개하며 집을 공개했는데, 진입로와 뷰를 보니 내가 본 그 주택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다. 몇 년 후 그 주택을 팔고 나왔다고 한다. 유튜브인지 어디에 나와 후일담을 공유한 적이 있다. 박수기정은 기운이 굉장히 강한 곳인데, 그 기운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들어가 살면 정말 크게 성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강한 기운이라고. 그래서 어중간한 사람이 터를 잡으면 오히려 잘 안 풀릴 수도 있다고...


뭐 믿거나 말거나 아닐까. 내 경우 풍수지리는 한 65% 정도 믿는 편이다. 나머지 45%의 의지로 바꿀 수는 있다고 보지만, 나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 주택의 옆 땅은 가격도 괜찮고 뷰도 좋았지만, 결과적으론 뭔가 주식 자금을 깨기 귀찮아서 말았다. 가수 아주머니의 집에 어떤 주인분이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옆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들어가 살아 봤다면 내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테스트해 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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