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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Aug 13. 2023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법

어렸을 때는 비빔밥을 그렇게 싫어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졌다. 비건 음식 때문이었다. 건강관리 차원에서 비건 식사를 몇 번 도전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요리실력이 원래 없다. 비건 음식이라고 도전해 봤자 딱히 맛있을 리가. 그러다 보니 실패하지 않는 비빔밥을 자주 찾게 된 것이다. 


비빔밥을 먹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해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특별한 레시피나 재료와는 상관없다. 다만 간단한 행동 강령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어릴 적 비빔밥을 싫어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비빔밥이 싫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밥을 먹을 때 기다란 나물이 치렁치렁거려서 먹기 불편한 것

2. 냉장 보관된 나물을 넣다 보니 금방 식는 것


숟가락 가득 비빔밥을 펐을 때, 나물이 삐져 나오면 먹기가 번거롭다.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도 지금도 주둥이가 작은 편이라... 더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하루는 비비기 전에 세팅된 나물을 가위로 잘게 쪼아 보았다. 그랬더니 비비기도 훨씬 쉽고 먹기도 편했다. 


한편, 비빔밥은 따뜻하게 먹어야 더 맛있다. 보통은 냉장고 털기를 위해 이런저런 나물반찬을 한 데 넣고 비비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밥이 따뜻하더라도 비비고 나면 금방 식어버린다. 대부분 음식이 그렇듯, 식기 전에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다. 그런데 비빔밥은 출발선부터가 냉담한 것이다. 


그래서 비빔밥에 비비기 전에 나물을 전자레인지에 한 번 데우면 좋다. 밥과 함께 비비고 나서 데워도 되지만, 전자레인지 특성상 온도를 균일하게 하려면 또 비벼야 한다. 최초로 비비기 전에 데우는 게 낫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나면 나물 반찬들로 비빔밥을 해 먹기도 한다. (우리 동네만 그런가?) 이럴 때는 나물을 세팅하고 (하염없이) 절을 하느라 상온에서 알맞은 온도가 된다. 례가 끝나고 갓 퍼올린 뜨끈한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 내 큰댁은 경북 대구인데, 친척들끼리 모여서 제사상에 있던 도라지, 고사리, 무, 시금치, 콩나물 등등 나물 반찬으로 비빔밥을 먹곤 했다. 


희한한 건, 우리 할머니가 꼭 다시마튀각을 넣어 주셨었다. 고봉밥에 나물을 듬뿍 세팅하고 그 위에 다시마튀각 몇 조각을 얹은 후, 숟가락으로 잘게 부순다. 그리고 박과 소고기를 넣은 탕국의 국물을 조금 뿌렸다. 그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비빔밥에는 고추장을 넣는 게 국룰이지만, 대구 큰댁에서 제삿밥으로 비빔밥을 먹을 때는 고추장을 넣지 않는 게 더 맛있었다. 


할머니는 5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전 5년을 병상에 누워만 계셨다. 그래서 할머니와의 기억은 거의 1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찾을 수 있다. 할머니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같이 먹던 제사상 비빔밥만 남았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끓여준 빨간 소고기 무국의 맛도 남아 있다. 


그게 우리가 가족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면 다행이지만, 먹는 걸로만 기억하기엔 역시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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