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그러니까 제주의 북쪽에서 한라산을 올려다볼 때. 그리고 남쪽 서귀포에서 한라산을 올려다볼 때. 두 방향에서 보는 한라산의 인상은 많이 다르다. 한 번은 우리 동네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라산을 올려다보았는데, 한라산 꼭대기의 모양이 뭔가와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생택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그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아 그걸 닮았구나. 하고 한심하게 혼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궁금하면 서귀포 여행을 왔을 때 한번 보시길. 정확히 그 형상을 떠올릴 수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전혀 안 닮았는데?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라산 꼭대기를 보며 한심한 상상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다. 그 여유를 어른이 되어서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제주살이를 하면? 조금은 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나는 어린왕자를 한 번도 완독 한 적이 없다. 무슨 수학의 정석도 아닌데.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그렇다. 나는 국민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다.) 곤충이나 공룡이 나오는 책만 봤다. 중학교 때, 어린왕자가 명작인 걸 알고 사긴 했다. 문제는 허세를 부린답시고 영문판을 산 것이다. 중학생 영어 실력으로 읽을 수 있을 리가.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입시에 휘말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왕자를 다시 읽는다는 게 뭔가 희한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왕자를 완독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나중에 딸이 커서 어린왕자를 사게 된다면 벽장에 숨어서 몰래 읽어 봐야지. (꼭 벽장에 숨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하지만 생택쥐페리의 다른 단편을 한번 읽은 적은 있다. '야간 비행'과 '남방 우편기'가 묶여 있는 소설집이었다. 알다시피 생택쥐페리는 비행기 조종사였고, 그래서 하늘을 날다가 비운의 죽음을 당했다. 하늘을 나는 것을 너무 좋아했으니 좋아하는 걸 하다 죽은 거라고 해야 하나.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집요하게 추구하는 글쓰기 외적인 활동이 있다. 영감의 원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택쥐페리는 하늘을 날았다. 나는 꾸준히 해온 게 웨이트 밖에 없는데. 웨이트 같은 걸로도 영감이 떠오를 수 있을까. 어차피 하루키나 생택쥐페리 같은 거장이 될 꿈은 없지만.
아무튼 한라산 꼭대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좋은 활동이다. 언젠가 말한 적 있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온 나이 지긋한 회장님'은 매일 아침 한라산 꼭대기를 보며 인사를 한다고 하셨다. "할머니, 오늘은 구름 뒤에 숨어 계시네요." "할머니, 오늘은 하얀 눈 모자를 쓰고 계시네요." "할머니, 오늘은 봄 꽃으로 치장하셨네요."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그 회장님은 한라산과 소통하며, 푸념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고, 기쁨도 나눈다고 하셨다. 뭔가 멋지다. 한라산은 제주도를, 그리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을 보듬어 준다고 하셨다. 하지만 누구나 보듬어 주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한라산의 영혼을 믿는 사람들만 챙기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굳이 믿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딱 한번, 와이프와 크게 싸움을 하고 너무 힘들었을 때, 새벽에 나가 산책을 하다가 한라산 꼭대기를 보고 말을 걸어 본 적이 있다. "할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 순간이 너무 오글거리고 한심하고 웃겨서 얼어붙어 버렸다.
일단 말은 걸었는데. 그다음 액션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라산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별 수 없이 터덜 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그날 오후에 와이프와는 화해했다. 부부사이가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한라산에게 말을 건 게 정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라산 입장이라면,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을 더 챙기고 싶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