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훈 Dec 01. 2023

Z세대는 인공지능 말투를 배웁니다.

문해력 같은 한가한 문제가 아닙니다. 글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여러분께 게임을 하나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주시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리워드는 <지식인이라는 인증>이 될 것입니다. 왜냐고요? 이제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식인이라는 방증이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긴 글 끝까지 읽고 지식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글의 종말 이야기 시작합니다.










참 슬픈 일이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제가 몇 년 간 펜을 놓고 최근에는 유튜브를 개설해 글이 아닌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공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여기서 2회 브런치북 대상을 받아 청소년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좋아했던 제가 말과 영상으로 메시지의 전달을 바꾸게 된 데에는 '그 사건' 이 있었습니다.






ㅣ 새로운 문맹의 세대


요즘 학생들 공부에서 한창 유행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문해력(文解力)




말 그대로 문자를 통해 전달된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혹시 '문해'의 반대말을 아시나요? 바로 '문맹(文盲)'입니다. 제법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지요? 우리나라 기본 문맹률이 1% 라는 연구결과가 있을 만큼 문맹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어휘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문해력이라는 이슈가 새롭게 떠오른다는 건 분명히 말해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학생들의 '문맹'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3.11.16 아시아경제 기사. 고지식이 높은 학식?>






ㅣ 문해력? 독해력?


제가 학생이던 90년대에는 사실상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독해력(讀解力)'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요. 이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①단어
→ ②문장
→ ③문단
→ ④글
→ ⑤행간



국어 실력은 위와 같은 순으로 발전합니다. '독해력'이 보통 ④글 ~ ⑤행간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 논점이 되는 '문해력'은 단어 ~ 문장 수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과 문단은커녕 문장의 완성, 단어의 이해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지요.



<'20.1.27 EBS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제10부 중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



과장이 아닙니다. '고지식'을 높은 학식으로, '사흘'을 4일로, '지구력'을 지구의 힘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단어와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니 문단과 글의 이해는 요원합니다.


글을 읽고 독해를 하려면 적어도 문단 까지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단어와 문장 자체를 모르니 독해력이란 단어보다 근본적인 '문해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죠.


단어를 몰라서 수업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놀랍지 않습니다. 반농담으로 선생님인 제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단어를 모르면 사회 과목은 어떡해? 농민 봉기 같은 게 나오면 시대상황과 사건까지 이해해야 하는데 '봉기'라는 단어부터 어려워할 거 아냐."
"봉기가 문제가 아냐. '농민'을 모를 수도 있어."
"..."






ㅣ 언어 습득의 변화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것을 찾아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언어 습득 방식이 중요한 하나가 될 텐데, 90년대~2000년대 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영상이 많지 않았습니다. TV 프로그램도 시간 맞춰 봐야 했고, 영화라도 보려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다가 보고 또 갖다주어야 했으니까요. (인터넷?! 그런 건 없었어...)




<기억하시나요, 천리안과 하이텔>



대신 글은 풍족했죠. 책, 신문, 잡지에, 용량이 크고 구동하기 어려운 영상보다 가볍고 정보는 많이 담을 수 있는 문서 파일이 통용되었고 온라인 소통도 주로 문자로 된 PC통신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성세대는 기본적으로 문자로 언어를 습득했습니다. 책이나 영상을 쉽게 만들 수도 없었기에 출간된 책이나 유통되는 영상의 언어는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TV에서 맞춤법 하나라도 틀리면 시청자들에게 제법 그 핀잔을 들어야 했죠.


누구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편지를 썼고, 문자도 유료였기 때문에 한 번 보낼 때 문장을 그득하게 채워서 보냈습니다. 맞춤법과 문장력에 익숙해지는 건 어느 정도 필연이었습니다.




<검색 사이트 순위. 1위 네이버 2위 유튜브. 특히 1020들이 유튜브로 검색을 합니다. 2021 인터넷 이용자 조사>




새로운 세대, 소위 Z세대라 불리는 2000년대생 세대는 언어를 주로 소리로 습득했습니다. 책보다는 유튜브 영상이나 태블릿 교육 콘텐츠 등 소리와 화면을 기반으로 언어를 접했습니다. 문자를 접할 시간은 줄고 그 시간은 소리 언어가 대신했습니다. 영상 제작도 매우 쉬워져 누구나 하다 보니 콘텐츠 속 언어의 완성도도 제각각이 되었죠.


이런 차이는 검색 행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글로 정보를 찾는 기성세대는 네이버나 구글을 켜고, 음성정보에 익숙한 Z세대들은 유튜브에서 검색을 시작합니다. 물론 누구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Z세대의 언어 소통과 이해의 기본 방식이 문자가 아닌 소리(음성)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ㅣ 소리 언어가 왜 문젠데?


이러한 차이가 왜 문해력에 문제를 발생시켰을까요? 소리로 언어를 접하니 맞춤법은 약할 수 있겠다 싶지만 언어 이해력 자체는 왜 떨어진 걸까. 그건 문자와 달리 소리의 경우 '내 속도'에 맞춰 언어 이해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먼저 읽을 때의 상황을 볼까요?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책을 읽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천천히 읽는 사람도 있고 빨리 읽는 사람도 있고, 읽다가 잘 이해가 안 되면 잠시 멈추기도 하고 앞부분을 잊었으면 다시 돌아가 읽고 오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읽을 때는 습득과 이해의 속도가 나를 중심으로 정해집니다. 말하자면 내가 언어보다 주도적인 위치란 것이죠.


읽는다는 것은 주도적인 행위이고 그 능동성의 결과로 '이해'를 얻게 됩니다. 이해를 하지 않고 활자만 읽는 것은 노력은 들이고 얻는 것은 없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럼 들을 때는 어떨까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소리 언어는 다릅니다. 1분짜리 영상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는 똑같이 1분이 소요됩니다. 이해력이 좋은 사람도 아닌 사람도 똑같이 1분 동안 소리로 언어를 습득합니다.


습득과 이해의 속도를 나에게 맞춰 조정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잠시 멈춰 생각하거나 앞부분을 다시 들어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언어가 일정한 속도로 제공되고 내가 열심히 그것을 쫓아가야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비주도적인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언어보다 열세라는 겁니다. 생각과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끊임없이 언어가 제공됩니다. 따라서 이해 없이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며 많은 단어와 문장을 접해도 읽는 것과 다르게 이해의 양과 깊이가 현저히 적을 수 있습니다.




<'심심한 사과' 트위터 논란을 아시나요. 더뉴스 및 조선일보 발췌>




언어(文)는 많이 접하지만 이해(解)가 적기 때문에 언어(문)와 이해(해)의 연결성이 약해집니다. 기표와 기의를 잘 이을 수 없고 문해력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결국 현재의 문해력 위기는 문자가 아닌 소리가 주가 되며 언어 해석의 기회를 많이 잃게 된 데에서 기인한다 볼 수 있습니다.


** 아, 이런 반문을 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 나는 들으면서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이미 다양한 언어생활을 통해 훌륭한 문해력을 갖추신 분일 겁니다. 그래야 듣는 대로 바로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 문해력을 이제 갖춰야 하는 세대들에 관한 것입니다.






ㅣ 글을 놓치게 된 사건


그래서 Z세대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제 글쓰기와 무슨 관계일까 싶으실 수 있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누가... 읽을까?




저는 성인이 아닌 청소년 공부 관련 글을 많이 썼습니다. 브런치북을 통해 출간한 <공부자존감> 책도, 이어서 출간한 <서울대 수석은 이렇게 공부합니다> 책도 학생 공부 책이었죠. 어떻게 하면 공부가 필요하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문장을 적었습니다.




<교보문고 청소년 베스트셀러에 올랐었죠>



책도 나름 사랑받았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섹션에 제 책이 얹혀있는 건 작가로서 참 감격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원을 하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반쯤은 자조적인 말투로 말입니다. 요즘 학생들 누가 책을 읽냐고. 그리고 이 멘트를 날립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니 책 읽어.





아차! 싶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제 책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공부에 흥미를 못 붙이고 공부가 괴로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책이었는데! 친구는 요새 학생들 중에 책을, 그것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공부와 관련된 책을 통으로 한 권 읽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일부러 발췌독을 할 수 있도록 목차를 나누고 어디서부터 읽어도 괜찮도록 구성을 했지만, 정보 습득 방식이 글에서 소리로 넘어가버린 친구들에게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제법이나 높은 허들이었을 겁니다. 정작 제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이 책은 있는지도 모를 관심 없는 책이 되었을 터였습니다.




<쓰다 보니 300페이지가 넘어간 제 책입니다>



저의 생각을 글로 전달하려 해도 저처럼 '문자로 소통하는 세대'와 지금의 '소리로 소통하는 세대'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글을 멈추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ㅣ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세대


게다가 언어와 관련한 특이한 현상들도 발견됐는데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이 인공지능의 어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그런 힌트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단어 수준에 머무르는 일상 소통법>



1. 맞춤법을 틀려도, 단어를 잘못 이해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차피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에게는 다소 틀리게 전달해도 '알아서' 맞는 단어로 변환해서 이해함

검색창의 자동완성 기능이나 핸드폰 키보드의 추천 단어완성 등도 같은 맥락



2. 문장을 완성하지 않고 단어들로 이야기를 나누는 점. 특히 서술어 부재.

인공지능과는 정확한 서술어를 쓰지 않고 단어들로 이야기해도 '알아서' 이해하고 소통이 가능함

서술어로 상대 인간에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부담감



3. 인공지능 어투를 따라 하는 현상

아래 영상의 경우,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아이가 많은 시간을 인공지능 언어와 함께 지내게 될 시 실제 언어생활에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특별한 경우긴 하지만 아이가 태블릿 학습지의 발화를 일상 언어로 사용합니다>




각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투를 기반으로 사투리를 습득합니다. 만약 아이들이 태블릿이나 핸드폰, 여러 인공지능 기기 (애플의 시리나 삼성의 빅스비 등)에서 나오는 말투와 많은 대화를 하고 산다면 자연스럽게 그 인공지능의 말투를 일종의 사투리처럼 습득하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벌써 그것이 느껴진다고 하면 기우일까요.)


저만해도 영어 연습을 위해 구글 AI 어시스턴트와 영어로 대화를 여러 번 해보았습니다. 아직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아 지속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ChatGPT 라면 영어 회화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ChatGPT 의 영어 어투를 배우겠죠. 그것이 표준 악센트와 어법이라 생각하고.



<실제로 ChatGPT 와 회화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 생각보다 훌륭합니다. Talk-to-ChatGPT>






ㅣ 유튜브를 시작하다


글을 읽자는 이야기를 글로 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 새로운 세대. 그 아이러니 때문에 글 쓰는 것을 멈추고 고민하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아예 놓은 건 아니지만 문자와 음성으로 같이 전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읽자는 이야기를 영상에서 말해야 그걸 들은 누군가가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어색한 기대를 가지고 말이지요.



<글쓰기 자체에 대한 고민>



제가 성인,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Z세대를 대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런 미래가 피부로 와닿았달까요.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대.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실제로 그 필요성이 줄어드는 세대. 그 세대가 성인이 된 시대는 과연? 브런치스토리를 좋아하는 한 작가로서 끝이 보이는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지애도 홀로 느낍니다.






ㅣ 글의 제국시대는 끝나는가


글의 제국시대는 끝났을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글이라는 형태가 단지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존재했었는지도 모르지요. 글은 이제 언어의 절대적인 자리에서 내려와 의사 전달 수단 중 하나 정도의 위치를 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없어지고 생겨나는 언어라는 자연은 현재 인류의 마음을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표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언어가 여러 이유로 그 가치에 대한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첫 세대가 지금의 Z세대일테지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서늘함이 저만의 노파심이길 바라봅니다.






ㅣ 마지막으로...


시대에 맞게 저도 변화를 합니다. 글뿐만 아니라 음성으로 전달하는 언어 작업이죠.


예를 들면 이런 영상. 카톡만 바꿔도 문해력이 좋아지는 비술(!)을 담은 제 영상입니다. 다 같이 봐주시고 지속할 수 있도록 구독과 좋아요, 질문 댓글 많이 주세요.



<아이러니합니다. 책 없이 올리는 문해력이라니. 하지만 정말이니 꼭 보세요! 클릭!>



이제 글을 필연적으로 읽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책 좀 읽으라고 해도 그 뒤에는 '왜?' 라는 의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준비하고 글을 읽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이를 납득시키는 행동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아직 거칠지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군요.


글 안 읽는 게 뭐 대수냐, 맞춤법 틀려도 다 알아듣는다 말하지만 언어는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깊은 생각을 언어로 하기 때문에 언어가 약해진다는 건 곧 사고력이 약해진다는 것, 즉, 머리가 나빠진다는 걸 의미한다. 정확한 표현으로 '무식(無識)'해지는 거지. 유식(有識). 삶의 난이도를 낮춰주는 유식함. 그것이 글이 너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저와의 게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요즘은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댓글로서 글 읽는 사람이라는 <지식인 인증>도 해주세요. 같이 글을 사랑해 주셔서 행복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험 볼 때마다 흔들리는 멘탈...어떡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