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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종이 Aug 30. 2016

<배트맨> 팀 버튼 VS 크리스토퍼 놀란

두 감독의 걸작 <배트맨> 시리즈 어떻게 봐야 할까

※팀 버튼 <배트맨> ,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나이트> 중 하나의 내용만 골라 보고싶으신 분은 그 부분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Ⅰ. 1938년 DC코믹스에서 슈퍼맨의 다음 타자로 내놓은 이 시꺼먼 박쥐인간은 거의 한 세기가 다되도록 사랑받고 소비되어 왔다. 당연히 스크린에서도 이 매력적인 히어로를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많은 배우, 감독들이 <배트맨>을 거쳐갔다. 그중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걸작이라는데 이견이 거의 없는 두 개의 <배트맨> 시리즈가 있다. 바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다. 이 두 시리즈는 약간의 세대 차이가 있기에 주요 팬 층이 다르다(약 20년의 간격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종종 넷상에서든 현실에서든 이 두 감독의 영화를 '과하게' 사랑한 나머지 다른 시리즈를 폄하하거나 '감히' 명함도 못 들이밀 정도라고 격투를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두 시리즈의 세대 중간 즈음에 박쥐처럼 적당히 걸쳐있는 내 소견으로는 이 두 시리즈는 '둘 다' 막상막하의 걸작이다. 그런데 단순히 '둘 다 좋아요' 정도로 끝낼 얘기가 아니다. 두 감독의 시리즈는 큰 줄기부터 작은 디테일까지 지향하는 바와 표현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즉,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만 공유할 뿐이지, 두 감독이 메시지부터 시작해서 기술, 음악, 철학, 액션 등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만든 영화다. 따라서, 나에게는 감히 이 두 시리즈를 비교할 능력도 통 없지만 이 두 감독이 <배트맨>을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 글을 보탠다. 아무쪼록 내 글이 양 팬덤의 화합과 이해 영화계의 평화에 기여하길 빈다. 자 그럼 우선 두 시리즈가 공유하는 <배트맨>이란 '무엇'인가?


Ⅱ. <배트맨>은 '보수주의'의 상징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유한 중산층 계급의 외동아들이다. 당연히 브루스는 인품과 덕을 갖춘 그의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평소처럼 극장에서 부모와 공연을 보고 함께 나오던 중, '몰상식'하고 '야만'스러운 노동자처럼 차려입은 '빈곤층 범죄자'에게 총을 맞고 부모를 잃고 만다(시리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큰 틀은 건드리지 않고 유지한다). 즉, 브루스는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하층민의 범죄에 의해 행복한 가정을 빼앗긴 기억을 가진 자본가다. 배트맨은 그렇게 '탄생'한다. 빈곤층 범죄자들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응징하고 중산층(넓게 보면 시민)의 안전과 이권을 수호한다. 그는 어떤 측면에서 봐도 기득권이다. '백인'이며 '남성'이고 '자본가'이다. 그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통제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보수주의'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히어로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이 부르주아 지배계층의 속성을 가진 히어로를 읽어내는 키워드가 두 감독이 다르다. 여기서 큰 줄기가 한 번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팀 버튼은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기득권이 가진 양면성이라고 해석했다. , 배트맨은 낮에는 모범적인 지도층이 밤에는 하층민에 대한 혐오와 복수심으로 코스튬을 입고 휘두르는 폭력의 상징이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은 항상 무표정인 거의 우울증 환자처럼 그려놨다. 반면에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읽어낸다. 사회 지배계층인 그는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대중을 위해 희생하는 진정한 진짜배기 '귀족'이다. 그의 고귀한 뜻을 모르는 대중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대중에게 한없이 베푸는 모습은 지도자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다(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덴트의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속편 라이즈에서도 자신을 오해하고 증오하는 대중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는 지도자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정도만 봐도 이 두 개의 배트맨 시리즈가 얼마나 다른 텍스트인지 알 수 있다.


※보수주의는 때로 부정적 의미로 인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쓰이는 보수주의는 정치철학 이데올로기의 중립적 개념으로, 사회제도의 질서와 안정성을 우선 가치로 보는 이념으로 보면 되겠다.

배트맨은 '백인'이고 '남성'이며 고가의 최신 장비로 무장한 '자본가'다. 질서와 법을 수호하는 보수주의자다.

Ⅲ. 자, 이제 배트맨이 누군지는 알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두 감독(팀 버튼 ,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낸 배트맨 시리즈의 비교 지점을 짚어보자. 큰 줄기로 보면 사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B급 잔혹'동화'다.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의 탈을 뒤집어썼지만 시종일관 표현은 '만화'적이다. 히어로 영화를 표방했지만 그들에 대한 시선은 내내 삐딱선이다. 그에 반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탁월한 블록버스터 A급 영화의 절정이다.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극을 달리며 그 안에 철학적 메시지도 감동을 줄 수 있게 어렵지 않게 깔려있다. 메시지만 있는 영화는 졸작이고 재미만 있는 영화는 범작이다. 두 개 다 잘 섞어둬야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포괄적으로 나만 이해하는 말을 해봤자 글 읽는 사람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느낌만 가지고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보면 된다.

 굳이 비교 지점을 잡아보자면 첫째로, Who요, 둘째는 Where, 셋째는 How로 단순하게 나눠볼 수 있겠다. 여기서 각각 카테고리는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을 수 있고 편의를 위해 나눈 것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ⅰ) Who?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제목이 배트맨이니까 당연히 배트맨이 주인공이지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두 시리즈의 몇 안 되는 공통점이 바로 그들의 카메라는 배트맨이 아닌 다른 사람을 포커스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팀 버튼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실 '악당(빌런)'들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배트맨의 비중이 형편없이 작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또한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비교해봐도 버튼 감독의 카메라는 압도적인 비중으로 악당들을 조명한다. 팀 버튼의 악당들에 대한 유별난 사랑을 느껴보자. 

1) 팀 버튼의 조커 Joke-er(잭 니콜슨) 

                c.f) 놀란 - Joke-er (히스 레저)

 팀 버튼 조커의 아이덴티티는 예술가다. 그 예술가의 철학은 무정부주의다. 항상 웃고있는 조커는 무표정의 보수주의자 배트맨(브루스 웨인)과 완벽하게 대척점을 이룬다. 조커는 공업용 강산성수로 본래의 얼굴을 잃었다. 따라서 살색 분칠을 해야만 인간다운 얼굴로 돌아온다(반대로 배트맨은 가면을 벗어야 인간다운 얼굴로 돌아온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유머'를 말한다. 정부를 향해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달라느니 여자와 춤추면서 "우리는 마치 미녀와 야수 같아 안 그래? 하지만 달링 당신을 야수라고 부르는 놈들은 가만 안 두겠어 "라는 소리를 지껄인다. 그는 부하에게 라디오를 들고 다니게 한다. 그러고선 나쁜 일을 저지를 때마다 깊은(?) 음악적 소양을 뽐내며 자체 BGM을 골라서 재생한다. 또 권위 그 자체인 박물관 안의 고전 미술에 가차 없이 낙서를 가한 것은 현대미술의 흐름 중 하나인 다다이즘을 연상케 하며 독가스가 든 풍선의 모습은 키치 아트를 표방한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는 외롭다. 속으로 우는 것을 숨기기 위해 녹음기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녹음해서 다닌다. 이토록 예술적인 악당을 묘사하는데 주인공은 오직 배트맨이야!라고 말하긴 어딘가 민망하다.

 반면에 놀란의 조커(고 히스 레저)는 어떤지 짚고 넘어가 보자. 분명 조커가 강렬한 인상을 주긴 하지만 팀 버튼 영화에서와는 그 비중과 성격이 명백히 다르다. 그의 정체성 또한 무정부주의라고 읽어낼 수 있지만 그는 괴이한 광기를 가진 예술가라기보다는 섬뜩한 사이코패스 범죄자다. 요약하자면 팀 버튼 조커는 코믹스러운 악당이자, 관객이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다(어찌 보면 배트맨보다 더). 반면에 놀란의 조커는 배트맨이 타도해야 할 순수악으로 규정될 뿐. 감정이입의 여지는 남겨두지 않는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이 영화평론가 시절 때 팀 버튼의 <배트맨>을 조커라는 남성이 주인공인 갱스터 느와르 필름으로 읽어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2) 팀 버튼-배트맨 리턴즈의 두 악당 

  '펭귄맨' 과 '캣우먼'

 중요하고도 중요한 얘기가 돌아왔다. 1편의 흥행 이후 팀 버튼은 워너브라더스로부터 2편의 자율권을 확실히 얻어냈다. 즉 그 말은 감독의 재량이 커진 것. 쉽게 말해 감독 꼴리는 대로 찍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트맨의 비중은 더 줄어들고 악당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은 카메라를 통해 현시된다. 악당이 두 명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딱 티난다.

예수와 생일이 같은 그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지하수도로 버려졌다(팀 버튼 배트맨 리턴즈)

 우선, 펭귄맨은 온 가족이 '행복'한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나 누구보다 사랑받아야 할 때 기형아(장애인으로 은유될 수 있다)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는다. 예수와 같은 날에 태어난 그는 예수가 '부활'한 나이인 33살에 지하 하수도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올라와' 대중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며 '인기'를 얻는다. 그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의 조그만 관심에도 환장하고 그 순진함으로 인해 배신당할 때 누구보다 크게 상처받는다. 그의 야심이 배트맨의 얍삽한 (?) 방해에 의해 좌절된 후 다시 자신과 함께 자란 펭귄들에게 돌아가는 장면은 맘이 짠하다. 그가 그토록 화려한 쇼맨십을 좋아하고 시장 자리를 노린 것은 누군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 배트맨은 펭귄맨이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가족 '펭귄'들을 조종해서 그를 소탕한다. 펭귄들만은 안된다며 소리치는 펭귄맨의 절규는 과연 그가 악당일까 고민하게 한다. 이후 그의 죽음도 역대 히어로 영화 악당의 죽음 중 가장 감성적인 것으로 손꼽힌다. 유일하게 그에게 사랑을 줬던 펭귄들이 그의 마음의 고향인 지하 하수도에서 장례를 치뤄준다. 과연 이토록 공들인 캐릭터가 악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인공이 아니라고?

여성상위 체위는 여성인권이 신장된 문화권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현상 (팀 버튼 배트맨 리턴즈)

 캣 우먼은 '여성'이다(한 영화에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현대사회의 대표적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악당이 둘 다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캣 우먼은 싱글로 사는 외로운 도시 노동자이자 남성들에게 억압받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용주(물론 남성)에 의해 떠밀려 추락사당하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나머지 주연인 남자 3명 모두에게(배트맨, 펭귄맨, 고용주 맥스) '위'에서 아래로 3번 '추락'당한다. 그녀는 추락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래서 남성에게 추락당한 여성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브루스 웨인과 맨얼굴로 만나든 가면을 쓰고 만나든 항상 '그녀 She'가 '그 He'를 '위'에서 누른다. 이는 명백히 섹스의 은유다. 섹스에서 여성 상위 체위는 여권 신장이 이루어진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덤으로 말하자면, 캣우먼이 탄생할 때 그녀의 방에 있던 'Hello There'이라는 인테리어를 캣우먼 스스로 O와 T를 부셔버리며 'Hell Here' 이라는 메시지로 바꿔버린다. 역시나 고담이라는 대도시는 가진 것 없는 여성노동자에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에 반해, 단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캣 우먼은 액션과 흥행을 위한 요소로 투입되었을 뿐이다. 단순히 '쎈 언니' 요소만 보여주고,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 그녀에게 동정과 공감의 시선을 보낼 여지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팀 버튼의 악당 캣우먼은  '페미니스트' 악당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가진다. 더 이상 캣우먼은 무찔러야할 평면적인 악당1 이 아니다.


얘기가 길었다. 팀 버튼은 악당에게 시선을 보내고,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놀란의 카메라는 대체 누구를 집요하게 잡아대는가?


 놀랍게도, 다크나이트의 주인공은 '브루스 웨인'이다. 말장난하자는 게 아니다. 놀란의 시리즈는 정작 '다크나이트' 당사자인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이라는 한 인간에게 정서적 몰입과 시선을 집약시킨다. 놀란은 악당들의 사연이나 속성을 잡아내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영리하게도 브루스 웨인이라는 배트맨의 또 다른 자아를 잡아내는데 집중했고 훌륭하게 성공했다. 사실 배트맨은 이중인격자다. 이중인격자들은 분열된 인격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진 존재들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악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창조한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웨인은 끊임없이 두려움과 싸우는 존재라는 설정을 설명해왔고 배트맨 비긴즈(1편)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다크나이트(2편)에서는 시민들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희생하는 히어로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최종장 3편에서는 자신의 묻어뒀던 또 다른 인격인 '배트맨'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대중들과의 연대를 통해 극복함에 대해 얘기한다.

 그가 웨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팀 버튼보다 애정이 많은 것은 영화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팀 버튼은 어쩌다 배트맨이 배트맨 일을 시작했는지 악당들과 싸울 무기와 무술 실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언급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웨인이 어떻게 배트맨이 됐는지 누구에게 무술을 배웠는지 무기는 누가 만들어줬는지 어떤 생각으로 히어로 일을 자처하는 건지 모든 것에 대해 대답할 수 있게 영화를 구성했다. 영화의 감정선이 주욱 브루스 웨인을 따라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영웅적 개인이 어떻게 개인을 구하고 거기서 사회로 나가서 그들을 구하고 또 어떻게 자신이 구한 대중들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자신을 구해내는지 장장 3편, 합쳐서 약 8시간을 넘기는 현대판 영웅서사시 오디세이다. 그리고 그 고독한 영웅이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영웅과 대중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조망한다. 진정한 정의에 관한 딜레마를 겪는 리더(Leader) 그가 바로 브루스 웨인, 겉으로 얼굴을 드러내진 않지만 자기 영지의 시민들을 보호하는 의무를 가진 중세 개념의 기사. 즉 다크나이트(Dark Knight)다.


ⅱ. Where? 이 영화의 배경은 어디인가

 그 유명한 배경. 고담. 많은 사람들이 고담을 구약성경에 나온 소돔과 고모라를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담이란 말은 뉴욕의 속칭이다. 당연히 경멸 성 짙은 어조로. 고담 (Gotham=바보들의 도시)

좌. 팀 버튼 배트맨의 고담시티

우. 크리스토퍼 놀런 다크 나이트의 고담시티


시각적인 면에서 보면, 버튼의 고담은 스스로 창조한 고딕 양식풍의 느낌이 있는 대공황 시절의 뉴욕을 재현시켜놨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팀 버튼 본인의 세계관과 취향이 반영됐다고 해석하는 편이 용이하다. 그의 영화는 항상 스토리보다 그만의 독특하고 괴이한 동화적 배경의 비주얼을 강조하는 경향이 주욱 있어왔으니까. 반면에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썼다. 이는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팀 버튼의 영화보다 현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구현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실제로, 큰 영화의 태도로 팀 버튼은 조롱이고 놀란은 성찰이라고 볼 수 도 있다. 팀 버튼의 고담 시민들은 바보들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고 언론에 이리 선동당하고 저리 휘둘리는 존재로 구원받을 존재라기보다는 조롱과 냉소의 대상이다. 반면에 놀란의 고담 시민들은 나약한 존재이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폭탄 실은 배 장면에서 서로를 살해하지 않고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희망적'인 존재들이다.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린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고담 시민에 대한 비중은 더욱 커진다. 베인이 테러리스트와 도시를 점령하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명백히 있다. 권력을 그들(기득권)에게 뺏어서 그들 (민중)에게 돌려줄 것이다라는 표어 하며, 범죄자들이 직접 법원에서 자본가를 재판하는 것은 민중재판과 흡사하다. 여기서는 배트맨 혼자 아무리 날고 기어도 상황을 수습할 수 없다. 대중들, 즉 시민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배트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2편인 <다크나이트>에서도 똑같이 연출된다. 조커가 시민과 죄수를 가둔 배에 폭탄을 설치해서 '죄수의 딜레마' 인 게임상태를 만든 장면이 그러하다. 그 때의 배트맨은 대중들이 서로 '협력'하는 선택을 하기를 믿고 기다리는 수 밖에. 그래서 다크 나이트에서의 고담이라는 배경은 영웅과 함께하는 시민사회의 계몽을 표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는 팀 버튼의 고담이 단순히 악당들이 나타나면 우왕좌왕하고 선동당하는 바보들로 표현하는 것에 비해 희망적으로 얘기한다. 그게 두 영화의 태도 차이다.


ⅲ. How?무슨 의도를 위해 어떤 기술로 연출했는가?

팀 버튼의 배트맨은 대니 엘프만의 음악부터 시작해서 구석구석 디테일한 미술이 전부 만화적인 분위기를 지향한다

 팀 버튼이라는 감독을 얘기할 때 사실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음악감독 '대니 엘프만'이다. 그가 참여하지 않은 팀 버튼의 영화는 오직 한 편뿐이며 사실상 2인조 영화꾼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음악은 배트맨의 전체적인 기이한 만화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다. 특히 1편에서 조커가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며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장면은 아주 강렬하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선정했을까. 그리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조커와 시민 그리고 지폐들은 어떻고! 따라서 팀 버튼 배트맨에서 음악은 자칫하면 진지해지고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에서 만화적인 사운드를 통해 괴상하고 기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예를 들어, 악당과 배트맨이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폭발음과 타격음이 들어가는 대신에 통통 튀는 뿅뿅거리는 효과음을 넣는 것은 장난하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상황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CG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에게 주어진 대자본을 가지고 활동사진으로서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다.

 반면에 기술적인 면에서 아주 웰메이드인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갖가지 기술의 절제된 퀄리티가 아주 높다. 우선, CG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놀란의 장인정신은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강하게 드러나 관객들을 그 현실감 넘치는 액션에 몰입할 수 있게 완벽한 사운드 조절과 연출을 제공한다. 제일 유명한 장면인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병원을 폭파시키는 장면. 그 장면을 위해 직접 건물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또한 조커 역의 고 히스 레저가 버튼을 두 번 누르는 장면이 애드리브라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또 액션 동선과 현실감에 있어서는 팀 버튼에 비해 압도적이고 사실적이다. 팀 버튼이 액션이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것은 폭력에 가깝다. 액션동선을 단순하게 짜지만 특유의 쿨한 폭력(특히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폭력은 진짜로 '쿨'하다)은 누구나 압도될 수밖에 없을 듯.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인지, 폭력의 수위가 상당히 세다

 배경음악은 어떤가. 감독은 '한스 짐머'로, 영화음악계에서 대니 엘프만과 마찬가지로 유명하신 분이다. 브루스 웨인이라는 개인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물 간의 관계나 딜레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방해하는 튀는 음악은 삽입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가사가 들어있는 음악이라든지). 그런 면에서 인물과 관객이 정서적인 일체감을 가질 수 있게 은은한 현악 위주의 음악을 깔아줄 뿐이다. 즉 가장 '배경'음악에 충실한 음악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굳이 음악과 기술까지 들먹여가며 비교한 것은 요리할 때도 음식에 따라 칼을 바꾸는 것인데 영화도 그러하다. 영화의 색깔에 따라 이런 디테일의 지향이 바뀐다는 것.


Ⅳ.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내용을 줄이고 줄여 가지를 치고 쳐도 할 말이 너무 많은 영화들이다. 그만큼 명작들이라는 뜻이고. 이처럼 한 가지 코믹스를 가지고도 가지각색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천재들에 의해 영화산업이 발전한다는 뻔한 도덕교과서에 실릴법한 말을 또 느꼈다. 이 글을 위해 다시 배트맨 영화 5편이나 주구장창 보다보니 두 감독의 재능이 이전보다 더 잘 보이는 듯 했다. 각설하고 각 시리즈의 팬들은 서로의 영화가 가진 독자적인 영역을 이해하고 아직 이 영화들 중 한 편도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가서 보시길 권한다 진심으로. 그리고 한 시리즈만 보신 분들, 다른 시리즈도 구해서 보면 참 좋겠다.

팀 버튼 (왼쪽)과 브루스 웨인 역의 마이클 키튼 (우)
'정장 입는 감독'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연기 디렉션 중인 팀버튼
연기 디렉션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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