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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Jan 27. 2020

크루즈 세계일주, 바다를 관찰하는 나날들



크루즈에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


첫 배를 타고 3일까지는 육지에 닿지 않은 채 계속 바다에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바다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매일 매일 바다는 색이 다르고 변덕스럽다. 상하이에서 홍콩을 가는 내내 하늘은 계속 흐렸는데 바다 역시 하늘 빛을 닮아 내내 칙칙했다. 100톤이나 되는 큰 배가 물살을 가르며 세차게 전진하는데도 바다는 생각보다 잠잠하다. 배 꼬리가 보이는 갑판에 서야 그나마 배의 역동적인 자취를 볼 수 있다. 배가 움직이면서 갈라지는 물살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바다 위에서 부서지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출발해 베트남 찬메이 항구로 향하면서 하늘은 급격히 맑아졌고 그에 따라 바다는 옥색 빛을 머금었다. 배가 수면을 헤집고 지나가자 옥색 살결 위로 하얀 거품이 척추처럼 흐드러졌다.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바다의 색은 영롱해져요.


유난히 에메랄드 빛을 품은 바다에 감탄하는 나를 보고 동행은 말했다. 바다의 색을 결정짓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태양이다. 태양과 가장 가깝고 그 빛을 가장 곧게 받는 적도의 바다가 유난히 영롱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다. 날씨에 따라 지역에 따라 바다에 따라 바다의 색은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고 확연하게 다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속이 들여다보일 것만 같은 쨍한 옥빛이었다 어떤 날은 속을 알 수 없는 짙은 군청 빛이었다 탁 한 하늘빛이었다 낯빛을 달리하는 바다를 관찰하는 건 크루즈 여행의 일과였다.

나는 눈에 보이는 바다를 관찰할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 고요한 바닷속을 머리에 그리기도 했다. 들여다 볼 수 없는 바닷 속 깊은 어딘가에는 시커먼 속내가 씨앗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언젠가 우리를 덮칠 것만 같다는 상상에 나는 온 몸의 털이 쭈뼛 서곤 했다. 영화를 통해 티비를 통해 우리 이웃의 사건을 통해 보아온 그런 참혹한 비극은 갑자기 늘 예고도 없이 찾아오니까. 하지만 바다는 항상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로웠고 가끔 성깔을 드러낼 때도 속으로 화를 삭이는 듯 겉으로만 살짝 일렁일 뿐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또한 가끔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바다 속 밑바닥을 바라보며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나를 상상했다. 그것은 때론 위로였고 때로는 공포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따뜻한 물에 웅크린 나는 세상 아무런 것도 필요없이 평온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차가운 물에서 발이 닿지 않아 허둥대는 나는 세상 그 무엇 보다 막막한 공포를 느꼈다. 위로와 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함께 있었다.


자고 있는 사이 나는 하나의 바다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다른 바다로 옮겨 가곤 했다. 가끔은 그걸 알아차렸고 대부분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른 채 배는 움직였다. 바다는 전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는 아니다. 그 모호한 경계선에 나는 늘 구글 지도를 켜놓고 내 위치를 확인하며 내 눈에 보이는 바다의 이름을 확인했다. 남중국해였다 인도양이었다 홍해였다 아라비아해였다 바다는 시시각각 바뀌었다. 예멘과 소말리아 사이의 아덴만을 지날 때에는 배 전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한 해적들이 소형 배로 외국 배를 기습공격해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습격당한 삼호 주얼리호를 청해부대가 구출한 사건, 일명 아덴만 여명 작전 때문에도 아덴만의 해적의 악명은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선장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사람들은 우려와 걱정의 질문들을 쏟아냈다. 선장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그에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하고 있다며 믿음직스럽게 말했지만 그런다고 사람들이 불안감이 씻은 듯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덴만을 지날 때 바다 위에는 유독 작은 배들이 많이 있었다.


“젠, 저 배가 뭔지 알아?” 


“아니?” 


“해적이야.” 


“지금 저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데 해적이라고?” 


“널 잡으러 올 거야.”


 “장난 인 거지?”


스티브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이 해적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크루즈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해적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예맨의 해적은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뎁처럼 화려하지도 피터팬의 후크처럼 악당이라기보다는 내전에 시달리고 어업권에 밀려 생계에 쪼들린 소시민에 가깝다. 생계를 위해 일로서 해적이 되었다면 표적을 삼은 배 외에 모든 배에게 적대적일 필요는 없을 거고, 인사를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적일 가능성도 있긴 할 테다. 하지만 그 작은 배들이 해적이 배였는지, 해양경찰의 배였는지, 어민의 배였는지 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사실 나는 크루즈 안에서 아덴만을 지나면서도 긴장을 하지도 않았고 위험을 감지하지도 못했다.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해적들이 2,000명도 넘게 탄 배를 무모하게 공격할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자주는 아니어도 드물게 있어왔다. 2007년 소말리아 해적이 크루즈를 공격하고 360m까지 근접했지만 미 해군의 출동으로 공격이 중단 되었고, 1,300명의 승객이 탄 영국 크루즈 역시 공격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소말리아 해적들의 기승으로 한 때 크루즈들은 아덴만을 피하려 우회로를 택하기도 했으며, 해적의 공격에 대비해 10일 간 배 내부의 모든 불을 끈 채 암흑 항해를 해 승객들의 원성을 산 럭셔리 크루즈도 있었다.


"저 머리 짧은 사람 보이지. 군인이고 스나이퍼야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 정찰하고 있는거야."


크루즈에서 알게 된 한 친구가 우리 곁을 지나는 남자를 보고 내게 말했다. 위험구역을 지날 때 크루즈에서 군인들을 실제 배치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유유히 식당을 지나는 그가 정말 스나이퍼인지는 좀 의심스러웠다. 스나이퍼라면 가장 높은 층의 갑판에서 망원경으로 정찰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스나이퍼에게도 휴식시간은 존재하는 건가? 대체 그의 어디를 보고 스나이퍼라고 확신을 하는 건지, 내게 그는 그냥 머리 짧은 승객으로만 보였다. 아덴만은 ‘카더라’ 하는 소문으로만 가득 찬 긴장되고 혼란스러운 항해 구간이었다. 뭐 긴장한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돌고래가 나타나 재롱을 피우기도 했다는데, 나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위험천만한 아덴만 구간이 끝나니 수에즈 운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에즈 운하, 아마도 세계사 시간에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거다. 수에즈 운하에 대해 역사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원래 유럽에서 인도와 아시아를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를 돌고 돌아서 수개월의 시간에 걸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이 인도와 아시아와의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지 않고 유럽에서 바로 인도양을 갈 수 있는 운하가 필요했고 그래서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만든 물길이 바로 수에즈 운하이다. 1869년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는 홍해 수에즈 만에서 시작해 지중해의 항구 포트사이드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 운하로 인해 자그마치 10,000km 거리의 항로를 줄일 수 있었다. 길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한다 했던가. 수에즈 운하는 건설을 하는데에도 수많은 피를 흘리기도 했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다툼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을 발발했기에 세계사 시간에 꼭 짚고 넘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그, 그 세계사 책에 나오던 수에즈 운하가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썬베드와 수영장에서 해를 쬐고 노느라 바빴던 사람들도 수에즈에서는 운하와 운하를 끼고 양 옆으로 펼쳐져있는 이집트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운하는 굉장히 좁아서 배가 차를 실어 나르는 모습, 차가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가끔 사람들은 크루즈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두 곳은 손을 뻗으면 닿을듯 가까운 곳에 있었으나 보이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서쪽은 더 인구가 많고 외제차가 질주하고 값비싼 집이 즐비한 반면 동쪽 휑했고 사막이었다. 양쪽 모두 순찰 차량에 올라탄 채 기관총으로 은행을 감시하는 군인이 보였다.


"지금, 지금이 수에즈 운하가 가장 좁아지는 지점이야."


수에즈 운하를 지나며 바라본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알 칸타라 다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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