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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Oct 07. 2020

아일랜드 위스키와 <어쩌다, 크루즈>


꽤 오래전 부터 글쓰는 삶을 꿈꿨다. 초등학교 때 이런저런, 말하자면 독후감이나 통일 글짓기나 뭐나 늘 상을 탔었기에 나는 내가 글을 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나 글을 잘쓰는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도취감에 6학년 때 문집에는 장래희망을 적는 말풍선에 "노벨 문학상을 받고 싶어요" 라는 허황되기 그지 없는 말을 채워넣기도 했다. 말풍선이 아니라 허풍선이었... 여튼 인생의 가장 자신감 넘치는 시기가 지나고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될 것 같은 기세로 지원한 국문과를 졸업하고 글쓰는 이런 저런 직업을 거치고, 긴 세월을 통과하면서 나는 내가 보통보다 조금 글을 잘 쓸 뿐인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버렸다. 세상에는 너무도 반짝이고 재기 넘치고 재미난 글이 이렇게도 가득한데 이런 재미없는 글을 읽을 사람이 대체 어디있을까?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소설가로 등단한 선배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장 큰 단점이 '결핍'이 없는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인생 처음으로 그다지 결격 사유 없는 나의 가정사가 나의 해맑음이 원망스러웠다. 난 늘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에 탄식하고, 나 스스로를 그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폄하하고, 그러면서 또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미워했다. 열개의 씨앗을 뿌렸을 때 꾸준히 물을 뿌려 얻을 몇 개의 싹보다 하나의 씨앗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뿌렸을 때 그 하나의 씨앗이 움틋 싹이 나기 위해서 건뎌내고 노력해야하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꾸준해야 하는지 그 때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여행을 하며 길 위에 서있다 우연히 친구와 함께 책 하나를 냈다. 내가 예뻐하지 않는 글 중에 그나마 예뻐하는 글들이다. 그러고도 7년이 흘렀다. 출판사를 시작한, 내 첫 책의 공동 저자였던 친구는 어쩌다 시작한 내 크루즈 여행기를 책으로 내자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쭈글쭈글거릴 때면 내글이 충분히 괜찮은 글이고 너만의 매력이 있는 글 이라고 날 다독이는 사람이다. 그렇게 <어쩌다, 크루즈>가 시작되었다.


글을 잘 쓰라는 독려의 의미로 위스키를 선물 받았다 'writer's tears' 작가의 눈물. 19세기와 20세기 초 아일랜드는 맛있는 위스키와 뛰어난 작가들이 활동하는 시대였다.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게트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은 자신이 살던 지역의 위스키를 마시며 영감을 얻어 보석같은 문학 작품을 만들어 냈고 아일랜드 증류소 walsh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wtiter's tears'라는 위스키를 출시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3번 증류한 아이리쉬 위스키라면 응당 부드러울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사나웠다. 복숭아 맛과 토피함 캬라멜맛이 두드러지고 끝에 쓴 맛이 꽤 강하게 밀려들어 왔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고소한듯 달콤한 듯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어느 정도 글을 쓰다보면 자기 비하와 혐오에 빠지기 마련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는 자기 글에 대한 비하와 혐오이다. 사납고 쓴 맛은 글쓰는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만 그 굴레와 고통을 맛으로 형상화한 것만 같다. 나 스스로가 나를 할퀴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할퀴는 이 사납고 쓴 맛을 제대로 잘 이기고 받아들여야, 작가로서 성숙해지는 거겠지. 맛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나를 돌아보게하는 그런 맛이다. 쓴맛을 없애려고 아몬드 초콜릿을 한입 물었더니 한결 낫다. 아몬드와 토피가 어울리고 단맛이 쓴맛을 죽인다. 또, 에어링이 시키니 한결 낫다. 작가의 눈물이 빛을 보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한결 차분해진 'writer's tears'를 머금으니 아까는 잘 느껴지지 않았던 꿀 맛이 한 가득 올라온다. 둥글둥글해져서 복숭아, 토피 ,캬라멜이 섞인 맛은 입 안을 기분 좋게 만든다. 쓴맛도 여전하지만 좀 더 여운이 있는 쓴맛으로 바뀌었다.


'하이볼로 먹었을 때는 어떨까?' 싶어 글을 쓰던 어느 날은 하이볼로 "writer's tears" 를 마셨다. 꿀맛이 더 그윽하고 강하게 올라오고 너티함과 캬라멜맛에 상큼하면서도 가볍고 싱그러우며 풀맛도 느껴진다. 탄산수만 섞었는데도 달짝지근한 것이 먹기 편안하다. 하지만 시큼새콤함이 전혀 없어 약간 느끼한 감도 있다. 절대적으로 평가했을 때 엄청나게 뛰어난 위스키는 아니다. 그럼에도, 글쓰는 사람의 눈물이 뭔지 알기에 나는 글 쓸 때 눈물을 흘리는 대신 이 술을 마셨다. 또 이 술을 마시고 글을 쓰면 더 잘 써지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기대하며 글이 잘 안써질 때 "writer's tears" 술의 취기를 빌려 글을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했다. 글은 막바지에 다달았고 위스키는 1/4쯤 남았다. 그리고 <어쩌다, 크루즈> 펀딩이 오픈되었다.


<어쩌다, 크루즈>는 딱히 엄청난 여행기는 아니지만 조금은 신기하고, 조금은 재밌고, 조금은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펀딩이 성공에 임박해 있고 그 이후로 더더더 잘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도서출판 춘자> 흥해라!!! <어쩌다, 크루즈> 흥해라!! 이 글을 시작으로 나는 못미더운 내 글을 좀 더 좋아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좀 더 믿어보려고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건 "꾸준히", "지속적으로" 


펀딩 바로가기 >> https://tumblbug.com/zenzen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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