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나를 믿고 나아갈 용기.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불과 이주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인턴을 지원했던 나인데. 4년 동안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방송 쪽 일을 하기 위해 4년 간 쌓아온 것들을 놔두고 다시 돌아온다는 건 보수적인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기로 결심한 건 6개월간의 짧은 취준 생활 때문이다. 용기의 씨앗을 얻은 과정을 짧게 되새겨보려고 한다.
2학년 때 교직 이수를 하던 중 대외활동을 시작하면서 신세계를 맛보았다. 한 번 사는 인생, 재밌게 펼쳐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별다른 고민없이 교직이수를 보류하고 복수전공을 새롭게 시작했다. 어렸을 때 기자를 꿈꿨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진로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남들이 걷는 길을 비슷하게 걷다 보니 4년은 훌쩍 가더라.
생각보다 현실은 가혹했다. 빛나기만 했던 내 꿈은 조금씩 바래졌다. 정해진 꿈을 갖고 차근차근 올라간 건 아니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했다. 그렇게 졸업할 나이가 되어 사회에 나서보니 '나만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만 보였다. '비교의 늪'에 빠졌다. 고작 워밍업을 했을 뿐인데 취준병에 걸린 것.
여러분은 기업이 뭘 원하는 지 명심하셔야 해요.
무조건 두괄식
증명할 구체적인 예시가 있으면 좋겠죠?
문항을 마무리 할 땐 다시 여러분을 어필하시면 돼요.
나는 변신했다. 기업의 자소서 문항에 맞게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대개 취준생들처럼 20개가 넘게 회사를 지원한 건 아니지만 허전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계속 변신만 하다 보니 내 존재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보이는 삶을 사는 연예인들이 걱정됐다. 자소서에 나를 어필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그들은 어떨까. 그러다가도 지금 연예인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나를 채찍질해갔다. 요즘 흔히 말하는 '지여인'에 '문송'이니까. (지여인: 지방대 여자 인문대생, 문송: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가끔은 '뭐!! 난 지거국이야!'라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감정의 곡선이 요동쳤다.
침대에 누워 매일 고민만 하다 보니 원래 없던 잠이 더 없어졌다. 수많은 걱정 속에서도, '세계일주 여행을 하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현지 주민에게 레시피를 받아 한국에 와서 장사하는 나. 크......' 혼자 행복한 단꿈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꿈같던 여행들을 떠올리며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육 관련 CEO의 글을 봤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새롭게 삶을 꾸려 나갔다는 그의 말. 나 역시 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해줄 마땅한 무언가가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사실 이것들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진 않았다. '왜 없었을까' 를 생각했다. 내 대답은 '욕심'이었다.
평범한 삶이 제일 어렵다고들 한다. 평범함이 제일 어려운지 몰랐다. 정글 같은 사회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랬겠지. 미적지근하고 잔잔하게 살지 않을 거라는 욕심이 항상 컸다. 나만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수많은 선택의 길을 찾았지만 나아가지 못하고 출발점에서 맴돌기만 했다. 게을러서는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는 사회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겠다는 포부가 내 안에 가득 차 있었다. 현실의 민낯은 뒷전이었다. 내일. 10년 뒤. 20년 뒤를 매일 상상'만' 하면서 말이다. 전진을 해야 진전을 할 텐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는 '용기'가 부족했다.
매일 밤 하천 옆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흥에 겨워 힘겨웠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시간을 잠시 빌리면서까지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욕심을 용기로 바꾸기로. 그게 어렵냐고 물어본다면 너무 어렵다고 바로 대답할 것 같다. 이십대의 가운데에 서서,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그 힘겨움. 일단 용기를 내보기로 했는데 걱정병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힘든 임용고시를 견디고 정말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가까운 사람에게 울상 지으며 말했다. 참고로 그는 내가 겪은 사람 중에 가장 현실적이다. "적어도 3년은 해봐야지. 그 어떤 것도 쉽게 되는 건 없더라. 3년 이상은 투자해야 네가 원하는 그런 길을 걸을 수 있는 발판이라도 얻지. 일단 해보고 판단해. 내가 봤을 땐 넌 너무 걱정이 많아. 고민과 걱정 속에서 보내는 1년이 꿈을 향해 걷는 3년 중의 일부라고 생각해봐. 후회 없이 선택하고 집중하도록!"
사실 듣자마자 좀 무서웠다. 3년이란 시간을 견디기엔 내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고 싶다. 분명 좋은 사람이 될 건데 3년도 투자 못하면 영원히 욕심쟁이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지난 취준 생활은 인생에 오래 길이 남을 것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자소설(說)'이라는 인생의 거짓말은 버려두고. 선택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진짜 나를 만나러 가야지. 정말 오랜만에 나를 믿고 나아간다.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전진하기 위해 3년의 출발점에 선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인생의 거짓말'을 과감히 버릴 ‘행복해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마음에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