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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덤리 Mar 05. 2016

음식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

베이글과의 수많은 입맞춤


베이글과의 첫 만남


2년 전만 해도 베이글은 나에게 '건빵'이었다. 뻑뻑하고 딱딱하고, 도넛이랑 비슷한 생김새인데 맛은 전혀 닮지 않았던 낯선 빵. 독서실에서의 일용할 양식을 고르기 위해 동네 빵집만 기웃거리던 나에게 베이글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빵 중 하나였다. 대학생이 되고 어쩌다 보니 베이글과 연이 닿았다. 베이글과의 첫 만남은 역시나! 건빵 같았다. 데우지 않은 블루베리 빵이라니...무언가 익지 않는 것을 먹는 기분? 두 번째 만남 역시 강렬하진 않았다. 언니가 먹다 남은 플레인 베이글 반쪽. 전자레인지에 푹 데워져 말랑말랑했던 식감. 도저히 이 빵과 친해질 리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빵 맛을 즐기지 못하는 단순한 빵순이였다.


왜 먹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베이글을 먹는 언니를 보며 물었다. 나의 의아한 물음을 듣자마자 토스트기를 꺼내더니, 식빵보다 두꺼운 것을 억지로 넣으며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노릇해진 베이글이 내 앞에 나타났다. 지난 두 번째 만남 때는 왜 토스트기에 넣어주질 않았는가. 아무튼 그렇게 베이글은 '베느님'이 되었다. 그때가 교환학생으로서 미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아찔했던 베이글과의 만남은 출국과 함께 잠시 잊혔다.



베이글과의 수많은 입맞춤


  잊힌 이유는 단순했다. 미국 남부 작은 마을의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그곳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봤던 뉴욕의 출근 풍경과는 달랐다. 그래서 베이글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감칠맛을 느끼고 출국하는 바람에 생각날 법도 했는데 말이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다. 인스턴트는 되도록 먹지 않는 나에게 그 맛들은 일탈이었다. 그렇게 미국에 젖어가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 안 베이글 집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선 유명한 프랜차이즈 가게였고, 그곳을 방문하는 건 학생들의 흔한 일상이었다. 출국 일주일 전 먹었던 베이글이 번뜩 생각났고, 그렇게 홀린 듯이 베이글과의 입맞춤을 시작하였다. 


  모든 종류의 베이글 빵과 크림치즈를 섭렵했다. 난 지금까지 나만의 맛집 리스트도 없었고, 한 음식을 미치도록 즐겨본 적도 없다.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햄버거 같은 핫한 메뉴가 나와도 관심이 가질 않는다. 올곧은 맛의 기준도 없다. 그런 나에게 '베이글 with 크림치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베이글로 달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애 최초로 '맛'을 찾게 된 것이다.


  결국 베이글 집을 찾아 나섰다. 대학교 근처 맛집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끊이지 않았다. 미국 동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는 뉴욕 스타일의 베이글을 팔고 있었다. 빵의 높이와 맞먹는 크림치즈를 먹어보다니...게다가 빵은 폭신폭신 쫄깃쫄깃하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두꺼운 크림치즈가 느끼하지도 않았다. 



짧은 시간에 많이도 먹었다!


맛있음과 맛없음을 구별하는 것


  베이글을 맛보는 과정은 즐거웠다. 이걸 한국에서도 즐겨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대앞 베이글 집 말곤 그다지 없었다. 근데 귀국하고 1년 정도 지났을까, 한국에 베이글 가게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눈에 띄게 흔해졌다. 나만 알고 싶던 맛집이 유명해지는 게 싫은 듯 아쉬운 맘도 들었지만,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으니 신났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에겐 더더욱. 덕분에 베이글을 찾는 즐거운 여정은 계속됐다. 물론 빵 속 글루텐이 피부에 미칠 영향이 몹시 걱정되긴 했지만 이미 치즈 인 더 트랩인걸.


  처음 만난 짜릿함은 조금 무뎌졌지만 여전히 새롭다. 빵집마다 식감, 모양, 먹는 스타일, 재료의 종류가 모두 다르다. with 크림치즈의 맛 종류도 말도 못 하게 다양하다. 베이글과 크림치즈의 경우의 수를 조합하면 수백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보장된 맛, 기상천외한 맛, 바로 먹어야 맛있는 맛, 냉장고에 하루 지나야 진가가 나오는 맛, 그냥 맛없는 맛. 정말 수없이 많은 맛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맛있음과 맛없음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 뭐 그런 것 같다며 동의하던 나였는데.. 나도 미식가들처럼 멋있게 통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어설픈 자신감이 들었다. 난 신기하고도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다.



음식은 삶의 방식을 표현한다


  음식은 자아를 구현하는 정체성이 되었고, 음식을 먹는 행위가 개인의 중요한 소비 행위가 된 그런 시대다. 수많은 식당을 다니며 자신만의 맛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식가'. '음식에 대한 조예', '맛' 이런 것들,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맛을 알아가는 과정은 부, 명예, 안정감, 행복 등 어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겪여보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음식의 맛을 알게 되는 건 '노소(老少)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 나이는 존박처럼 냉면을 통달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맛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하는 건데, 난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냥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만의 힐링푸드는 무엇일까? 내가 직접 알아가고 즐기는 그런 맛을 찾아보고 싶다. 꼭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만이 성취의 전부가 아니니까. 언젠가 베이글과는 더 이상 입을 맞추지 않는 순간이 오겠지만, 즐기는 그 날까지 더 맛있는 베이글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감사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다른 음식을 찾아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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