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했던 열정아, 또 만나자.
살아가면서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하게 무언가를 해나갈 때도 있고 치밀하게 계산하며 살아갈 때도 있다. 순수하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계획적이라고 나쁜 건 또 아니다. 결국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일인데 옳고 그름이 필요할까.
근데,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면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순수한 열정으로 임해보려는데 누군가의 계획된 열정에 뒤통수를 맞으면 '아, 틀렸다!'라고 생각에 잠긴다.
한 번쯤은 내 안의 순수한 열정을 맞이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난 그것을 운 좋게도 어린 나이에 만났다. 어떤 대외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생활의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삶의 일부였다. 20대 초반은 아예 그 활동으로 설명 가능하니까 말이다. 진로를 결정한 것도, 휴학을 생각한 계기도, 심지어 술을 맞이하는 자세까지 모두 바뀌었다.
대학교 2학년. 조금씩 지겨워졌던 학교 생활 탓에 그 대외활동이 정말인지 너무 하고 싶었다.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친한 선배의 손길을 따라 무작정 달려들었다. 좀 유명한 활동이어서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결국 내 것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그냥저냥'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랬던 게 대학 생활의 8할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8할의 비결, 사람들이었다.
팀으로 활동해 본 사람은 안다. 서로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이 곳 저 곳에서 갈린다. 소속도 전혀 다른, 생면부지의 만남. 기본적으로 나의 세계는 상대방의 세계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서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나에겐 소중할지 몰라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심지어 그 정도도 다르다. 아무튼. 누구와도 나랑 제대로 맞물리는 게 힘들다는 걸 대학에 들어와 깨달으면서, 어떤 환상의 팀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여러 일을 겪으면서 버렸던 것 같다. 근데, 이땐 좀 달랐다. 같이 활동한 팀원들(언니들)은 최고였다. 이런저런 별별 사람들과 어색하고 즐겁고 이상한 분위기도 느껴봤지만, 여럿이 그렇게 쿵짝이 잘 맞은 건 처음이었다. 동네 친구들과의 케미를 마주한 것이다. 그만큼 잘 맞았다.
물론 환상의 조합이 우연히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 팀워크의 뒤에는 개인의 희생과 책임감이 따른다. 기꺼이 버티고 나가야 한다. 버텨낸다는 건 서로가 그래도 될 존재이고 그만큼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언니들과 나는 정말 잘 해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감사한 건 어린 나이에 희생, 책임감, 팀워크라는 단어를 배웠다는 거다. 하루하루 내 삶의 연결고리처럼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아 귀찮을 때도 많았지만, 한 발짝 성장한다고 느낄 때면 꿀처럼 녹아내리곤 했다. 단 한 번도 선배의 손길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냥 뭐랄까. 지금은 다시 느끼지 못할 고마운 나날이었다.
행복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순수한 열정과 기를 다 쏟아부었다. 다시 한 번 덧붙이자면 대외활동이다. 이 활동은 내 적성에 맞아. 나중에 취직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자소서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겠지? 이런 생각 한번 쯤 떠올릴 법 한데 그렇지 않았다. 사실 자소서에 딱 맞는 좋은 소재였다는 것도 취준생일 때 깨달았다.
자소서에는 빛나는 경험들을 담아 낸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며, 고난과 역경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난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근데 자소설 여러 번 쓰다 보니 점점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했던 시간들을 조금씩 고치고 덧붙이고 또 반복하고 있었고, 그래도 자꾸만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목표를 잡고 계획적으로 활동을 했어야 했나? 대체 난 뭘 얻은 건가? 나도 모르게 되뇌고 있었다. 직무와 연관 지을 만한 연결고리도 찾지 못할 뿐더러 내 순수했던 열정이 좋은 추억으로 남지 못하고 그저 '활용'되는 듯했다. 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스멀스멀 다가올 미래 하나 걱정 않고, 좋다고 일 년 반 넘게 들이댔던 내가 밉기도 했다. 목표를 잡고 활동을 하면서 챙길 건 이기적으로 챙길 줄 아는. 그런 인생의 계산이란 게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계획된 열정. 그것이 금줄처럼 느껴졌다. 마음 깊숙이 반짝이고 있던 순수했던 열정은 썩은 동아줄 같았다. 내 경험들은 결국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노트북 안에 남게 됐다. 사실 자소서를 쓰면서도 알고 있었다. 언니들과의 시간을 딱 그 순간의 행복과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안의 순수했던 열정을 '보호'하고 싶었다. 가식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겐, 대외활동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다. 그 시간들의 어느 틈에도 거짓말로 채워넣긴 싫었다.
내일, 1년 후, 그리고 10년 후. 인생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목표를 위한 것이 된다면 어떨까.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을 것 같다. 물론, 다시 돌아가 대외활동을 한다면 당연 철저하게 목표를 세울 거지만.
계획된 열정에는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하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은 그저 좋아서 하는 거라 기회비용이란 게 없다. 좋으면 못 먹어도 고! 싫으면 마는 거다. 그런 열정은 뭐랄까. 기분이 너무너무 좋을 때 아니면 격한 외로움에 젖을 때 한 번씩 꺼내보는 아련한 추억이 된다. 때로는 그런 열정을 함께 한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 오랜만에 꺼내보는 묵은 이야기가 된다. 계획된 열정으로 만난 이들과의 기억보다는 순수했던 열정으로 만난 이들과의 기억이 더 마음속에 각인되고 자꾸 꺼내보고 싶어서겠지.
동네 친구들이 좋은 건 조금이나마 순수했던 시절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라서 좋고, 함께 해서 좋고, 대판 싸워도 좋다. 내 생얼과 술버릇까지 감싸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들. 그렇게 예전을 그리워하는 건 불현듯 그때의 순수함이 고개를 내미는 거라고 난 생각한다.
살면서 계산이란 걸 해야만할 수도 있다. 그런 내 계산이 다른 사람의 순수함을 해칠 수도 있다. 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순수한 열정이 좀 더 기분 좋은 일이고, 가끔씩 떠올려보고 싶은 이야기 아닐까.
분명 계획된 열정에 또 뒤통수를 맞을 순간이 올 거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또 만나고 싶고, 만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