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가 결혼했다 (3)
자꾸만 방심합니다. 별 거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어요. 우리의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며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터져 나오는 방심이 저를 흔들어놓곤 합니다.
같이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길을 걷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격렬히 흔드는 여자가 우리 앞을 지나가면 괜히 심술 날 때가 있어요. 저는 집에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머리를 틀어 올리고 누워있으니까요. '나도 저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데, 왜 이 사람 앞에서는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야만 하지?' 이상한 고민도 해봤습니다.
그래서 자꾸 사랑을 졸업한 척 하나 봅니다. 당신과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 혼자 꿍-하나 봐요. 그런 제가 참 우습기도 합니다. 비혼주의자였으면서 이런 감정에 휘둘리다니!
결혼하니 딱 좋습니다. 알맞게 행복합니다. 특별한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길어지고 있어요. 이 정도 행복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습니다.
"왜 행복하지?"
그러다가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이 쯤되면 무슨 일이 터져야 할 것 같아요. 일상의 행복을 즐겨야 하는 때에 불행의 암시를 기다리고 있다니. 행복은 모르고 불행은 잘 알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한 사랑이 더욱 서툰가 봅니다.
"괜찮아! 내가 할게."
제가 평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업무든 집안일이든 웬만해선 마다하지 않고 합니다. 부지런한 편이라 상대방보다는 덜 피곤할 거란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결혼을 하니까 배우자에게 괜찮다는 말을 더 자주 해요. 좀 서툰 방식으로요.
고등학교 선후배였던 저희가 졸업 후 10년 만에 만난 그날, 그가 하는 말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고양이랑 둘이 살 거야! 결혼은 별로. 차라리 한 지붕 두 집 형태로 동거하며 사는 게 괜찮지"
"...오........(땅콩주택인가...)"
그랬던 사람이 좁은 신혼집에서 모든 공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으니 오죽 힘들까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더 괜찮아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죠. 그래서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사랑은 상호작용이라는 걸 잠시 잊었어요. 배우자에게 받을 수 있으면서 주는 것만 집중했어요. 서툰 사랑은 졸업하고 괜찮은 사랑으로 입학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은 저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결혼 후 말 못 할 감정으로 툴툴대는 저에게, 배우자가 가끔 건네는 위로의 말입니다. 결혼에 냉소적이었던 과거는 없으니 현재 행복하게 살자고.
별 거 아닌 일상에도 행복해하고 결혼을 꿈꿨던 어린 아이. 저에게 잊힌 그 모습을 천천히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요. 억지로 행복을 누리고자 마다하지 않았던 때에 그를 다시 만난 것도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결혼을 후회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용기의 말인 것 같아요.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들에겐 과거를 추억하지 말고,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사람과 미래를 직접 그릴 수 있다고 말이에요. 비혼을 버린 저는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현실을 도피했던 비혼주의자들이 결혼을 만나 애매하게 개조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서로 위로해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그에게 전할 위로의 말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혼자 괜찮아하지 말고 우리가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단단한 마음을 위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힘써보렵니다.
#비혼주의자의결혼생활
#결혼굴리기
#결혼성장일기
#삶의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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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메인에 등장해버리기. 아직 글린이지만 조금 공감이 되었을까요...?
사느냐 바빠서 글쓰기를 외면하고 살았는데, 6년 만에 메인에 올라보니까 감회가 새롭고 부끄럽습니다..ㅎㅎ
브런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