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저흰 비혼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결혼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모 아니면 도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나씩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같이 산 신발을 신지 않으면 허전한 기분이 듭니다. 둘 다 건조했지만 촉촉한 사람들이었나 봐요. 둘이 만나서 다행입니다. 남 줬으면 결혼하지 않았겠죠.
좁은 집도, 건강하지 못한 밥상도, 어질러진 옷장도 모두 적응 중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넓은 집에서 채소를 몽땅 시켜 된장국을 먹기도 하고, 옷방이란 것도 생길 거라 믿어요. 적당한 선에서 서로를 행복해하려고 합니다. 그게 비혼주의자들의 결혼 아니겠어요.
결혼을 해본 자의 경험이 이렇게 크고 귀한 줄 몰랐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부르실 때, 친구들이 결혼생활은 어떠냐고 물을 때, 상사가 결혼생활은 할 만하냐고 웃을 때마다 믿기지가 않아요. 그냥 '어...? 이미 해버렸네?' 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니. 비혼주의자가 결혼한다고 해놓고 우울한 감정이 솟더라고요. 그러나 감정은 다 한 때였어요. 혼자 히히거리며 털어냈습니다. 그러다 또 흔들려요.
서로 못생겨진 얼굴을 보며 깔깔거리는 삶이야말로 결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소한 일상이 복잡한 감정을 녹였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평범한 삶의 고리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비혼주의자가 결혼했다고 크게 다를 건 없으니까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인생의 통찰력과 지혜는 어디서 오는 걸까. 책을 읽으면 됐지만, 저는 사람책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배움을 주는 환경을 더 찾아야만 했습니다.
결혼을 하니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와 비슷하지만, 저보다는 세상을 많이 알고 훨씬 안정적인 사람과 함께하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최근에 서로의 공간과 시선을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툭탁거리는 대화 말고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어요. 제가 먼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며 툴툴거렸으나 반대쪽은 현명하게 받아줬던 것 같아요. 배우자는 항상 선을 지킵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비혼과 이혼이 흔해진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결혼을 장려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비혼주의자의 결혼생활'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결혼은 결코 우리의 삶을 흔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콤플렉스가 많습니다. 직업, 재정 상태, 가족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결혼을 하기엔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나도 내 삶이 버거운데 그런 삶을 굳이 함께 짊어지고 갈 사람이 있을까? 매일 고민하다 보니 비혼주의자가 되었어요. 결혼을 못 해서 슬픈 게 아니잖아요. 그냥 삶이 힘들어서 좌절하는 거니까요. 그러나 저랑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정말 있더라고요.
'도대체 나랑 왜?'
자존감이 낮았습니다. 내가 무엇이 좋다고 결혼하자고 하는지 의아했어요. 제가 떠올리는 비혼주의자들은 높은 자존감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것과는 반대되는 비혼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사랑이라고요. 진짜 사랑을 모르고 살았어요.
배우자를 만나기 직전까지 외로움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했어요. 그 전에는 억지로라도 연애를 해보려고도 했었는데요. 결국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철저히 외로운 게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나랑 결혼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스스로를 결혼이라는 기준에 끼워 맞추라는 말은 아니지만, 좀 더 생산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질문이었어요. 그 대답을 찾다 보니 결국 저 같은 사람을 찾아버린 거죠.
참 울퉁불퉁했었지만, 비슷한 사람을 만나 쫙 펴졌습니다.
"돈도 없는데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결혼을 하라고요?"
당연한 말이에요. 그러나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나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이 정도 주거 환경이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우린 뭐든 다 잘 먹어서 다행이야'
' 나랑 정리 정돈하는 수준이 비슷하구만~'
같은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인정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하면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내가 만들어버린 높디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겠다는 신기한 지점이 보입니다.
더 이상 나를 부정하지 말자. 모자란 나를 인정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 그렇게 살다 보면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 여유도 함께 찾아오지 않을까 혼자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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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결혼생활에 대한 압박감은 내려놓고, 또 편안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