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는 포졸 1,2,3이 나온다. 그들은 행인 1,2,3일 수도 있고, 기자 1,2,3일 수도 있다. 많은 배우가 그들의 경력을 이와 같은 1,2,3,으로 시작한다. 이름조차 없는 배역이지만 엑스트라는 할 수 없는 배역이다. 더 큰 배역을 위해서, 또는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간단한 대사이지만 그들은 그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아마도 그 배우는 긴장은 하겠지만 신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사소한 역할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짧은 대사 한 마디를 소화 못해서 NG가 나는 경우가 있다. 워낙 짧으니 암기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현장에서 주는 중압감이 배우를 어둡고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적은 역할 때문에 현장의 진행이 더뎌지고 모든 사람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물며 그 적은 역할을 맡은 배우는 어떤 심정일까? 왜 이 적은 배역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그 배우는 마음속 깊이 원망이 타 오를 것이다.
캐스팅하기 곤란한 배역이 있다.
이를테면 연쇄 살인범의 희생자가 되는 여자 배역이었다. 대사가 없었다. 포박 당한채 약물을 투여받으면서 황홀경에 빠지며 의식을 잃는 역할이었다. 하필이면 이 연쇄살인범은 비 오는 수요일 밤에만 범행을 저질렀고, 하필 추운 겨울이었다. 촬영 장소는 더구나 지방이었다. 어느 여배우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고, 멋지게 연기를 보여주었다. 촬영을 마치고 인사하러 분장차에 들어가 보니, 그 배우는 벌써 현장을 떠난 뒤였다. 그 장면을 찍을 때 한 다큐멘터리 PD가 촬영을 했는데, 그 여배우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그 여배우는 싱긋 웃으며 '배우잖아요, 해야죠'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직 그녀를 기억한다. 그녀가 점점 비중 있는 역할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 반갑기 이를 데가 없다. 언젠가 현장에서 다시 만나 비 오는 수요일 겨울밤, 지방에서 찍은 장면을 함께 되새길 날이 오길 바란다.
또 다른 배역은 매춘부 역할이었다. 특별한 대사도 없고 입대하는 남 주인공과 단 하루 짧은 인연을 쌓는 역할이었다. 이런 역할을 엑스트라를 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어느 배우가 이런 역할을 기꺼이 맡아서 할 것인가? 대본이 늦게 나와 급박하게 촬영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여배우를 캐스팅해 쉽게 촬영을 마쳤다. 그녀는 이제 배우의 삶을 접고 주부로, 엄마로 살아간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을 꾸려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위안을 얻는다. 이제 현장에서 그녀를 만날 일은 없지만, 그녀의 안부 포스팅은 항상 내 '좋아요'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역할을 잘 마무리해 준 여러 배우 덕에 연출자로서 나의 삶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조단역 배우는 역할은 적어도 드라마에서 디테일에 해당한다. 주조연 배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큰 파도를 일으킨다면, 조단역 배우는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채우고 흠집을 메워나간다. 잘하기는 어렵지만 잘못하면 티가 나는 역할이다. 이 또한 배우가 채워나가줘야 한다.
배역에서는 이름이 없지만, 난 현장에서 그 배우의 이름을 부르려고 한다. 대본에서 이름을 주지 않았지만, 연출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배우는 꽃처럼 피어난다. 다행히 그 배우의 공연이나 전작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얘기를 꺼내본다. 감독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배우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작은 역을 연기하는 그 배우는 큰 배우로서 평정을 찾는다. 작가가 텍스트로서 배려를 못한 배역이지만, 연출자로서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간혹 여유가 있을 때는 한 번 배역에 '퍼스낼러티'를 넣어보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한 후 밋밋한 '행인 1'이 '충청도에서 올라온 취객'으로 변해 재미있는 감초 연기로 신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을 많이 보았다. 배역의 이름이 없을지라도 배우의 이름은 있다.
배우는 이름을 불릴 때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