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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의 위기 1.

K-드라마 위기 시리즈 (1편) 서론: 위기의 진단

by 용PD

이 글은 2025년 춘계 언론학회 산학협력 특별위원회의 세션에서 발표한 <전환점에 선 K-드라마: 제작 감소와 유통 붕괴 시대의 당면 문제>의 발표문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현재 한국 드라마 산업의 위기 상황을 알리고, 그 해법을 모색하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서론: 위기의 진단 - 황금기는 끝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드라마는 세계를 휩쓸었다. 『오징어 게임』, 『사랑의 불시착』 등의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했고, 우리는 한류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런데 지금 K-드라마 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화려한 성공 뒤에 숨겨진 구조적 문제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기점으로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다. OTT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기존 지상파와 케이블 TV 중심의 드라마 제작 및 유통 구조는 균열을 일으켰다. 전통적인 방송 광고 시장은 위축되었고,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국 드라마 산업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투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의존 구조가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을 낳고 있다. 제작비 상승에 따른 드라마 편성 축소, 투자 위축, 전통적 유통망의 붕괴 등 연쇄적인 문제가 K-드라마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방송통신위원회, 2024).


숫자로 보는 현실

현실은 냉혹하다. 2017년만 해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연간 5개의 드라마 라인업을 유지했다.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금토 드라마, 주말 드라마에 일일 드라마가 일주일 내내 시청자를 찾아갔다면, 지금은 고작 2개의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다. 금토 드라마에 주중 드라마가 한 편 유지되는 정도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케이블과 종편을 합쳐도 전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방송통신위원회, 2023).

더 심각한 것은 제작비다. 2021년 회당 10억 원 수준이던 제작비가 2025년 현재 15억-20억 원을 넘나들고 있다. 불과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다. 평균 200억-300억 원을 웃도는 드라마 제작비는 이미 방송사의 재원 조달 능력을 초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방송통신위원회, 2023).

이런 제작비 상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장 큰 요인은 톱스타들의 출연료 상승이다. 현재 A급 배우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2억-3억 원을 상회하는 실정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면서 배우들의 몸값이 급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배우 개런티만이 문제는 아니다. 제작 스태프 비용, 촬영 장비, 세트 제작비 등 전반적인 제작 인프라 비용도 함께 상승했다. 글로벌 수준의 퀄리티를 요구받으면서 제작 환경 자체가 고도화된 것이다(노창희 외, 2022).


패자의 악순환에 갇힌 K-드라마

이런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 바로 '패자의 악순환'이다(최현미, 2024). 한국 영화계에서 먼저 사용된 이 말이 이제 드라마 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악순환 도표.jpg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다:


• 1단계: 투자 위축 - 제작비가 오르면서 투자 위험이 커진다.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 제작비 상승과 수익 구조의 불확실성으로 투자에 소극적이 된다.

• 2단계: 편성 축소 -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줄인다. 2017년부터 시작된 지상파 드라마 편성 축소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3단계: 배우 개런티 상승 - 편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A급 배우 캐스팅에 의존하고 개런티가 오른다. 방송사는 해외 판매를 위해 A급 배우 캐스팅을 종용한다.

• 4단계: 제작비 부담 증가 - 제작비가 더욱 오른다. 높은 개런티에 글로벌 수준의 제작비가 더해져 부담이 가중된다.

• 5단계: 수익성 악화 - 수익성이 악화되어 투자가 더욱 위축된다. 1단계로 다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고리는 끝없이 반복된다. 마치 쳇바퀴 안에서 계속 뛰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목할 점은 투자의 리스크가 커진 만큼 방송사와 제작사가 도전적인 기획이나 시도에 소극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편성을 보장하는 A급 배우 캐스팅을 위한 유사한 기획에 몰입하면서 콘텐츠의 다양성이 위축되고 있다.


광고 시장의 붕괴

설상가상으로 전통적인 수익원이었던 광고 시장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2022년 약 4조 원 규모였던 방송 광고 시장이 2024년 3조 253억 원으로 약 25% 감소했다(방송통신위원회, 2023; KCC 블로그, 2024). SBS의 경우 2022년 5,200억 원 규모였던 TV 광고 매출이 2024년 2,000억 원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방송광고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SBS가 드라마 한 시간 편성으로 최대 5억 6천만 원의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SBS 전체 하루 프로그램 광고료가 겨우 6억 원 수준이다. 얼마나 많이 줄어들었는지 이 비교만 봐도 알 수 있다.

광고 시장 위축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국내 경기 침체가 광고주의 마케팅 예산 축소로 이어졌다. 또한 디지털 광고 시장의 성장으로 TV 광고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청률 하락과 함께 광고 단가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방송통신위원회, 2023).


유통망의 구조적 변화

전통적인 방송사 중심의 유통망도 약화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글로벌 OTT는 드라마 제작사의 수익을 점차 줄여가며 자신들의 이익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글로벌 OTT의 시장 지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지역 군소 OTT도 투자 여력이 크지 않으며, 그들로부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홍콩의 Viu, 북미의 Viki, 일본의 U-Next 같은 지역별 OTT 플랫폼이 존재하지만, 이들로부터 방송사나 제작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합쳐도 단일 글로벌 OTT 수익의 50% 미만에 불과하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4b).


신진 인력의 기회 축소

고비용 드라마 제작에 A급 인력이 쏠리면서 저예산 드라마 제작이 어려워지고, 신진 인력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 산업에 기회의 창이 점점 닫혀가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크리에이터와 그렇지 못한 크리에이터 간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소수의 검증된 인력에게만 기회가 집중되면서 업계 전체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위축되고 있다.

지금 K-드라마 업계는 단순한 위기가 아닌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성공한 몇몇 작품의 화려함 뒤에서 수많은 제작사가 문을 닫고, 크리에이터가 업계를 떠나고 있다. 현재의 악순환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드라마 제작 주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책과 규제가 작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방송산업 매출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고, 방송 광고 시장이 꾸준히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K-드라마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했다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패자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다시 승자의 선순환으로 돌아설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악순환의 고리 중 어느 한 곳을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이다.


다음 편 예고: "본론: 왜 넷플릭스에 팔려고만 해" - 글로벌 OTT 의존증의 진짜 이유와 지역 OTT의 한계를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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