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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4. 2023

CP의 추억

2011/11/13

방송국에 CP라고 불리는 직책이 있습니다. 입사 15년 차 이상의 차장급 프로듀서가 되어야 맡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흔히 ‘데스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단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현업 PD와 달리 다수의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선후배를 돕고, 경영진과 개별 프로그램, 또는 경영진과 현업 PD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말이 좋아 Chief Producer이지 나이 먹고 조연출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드라마에서 CP는 주로 ‘기획’ 또는 ‘책임 프로듀서’라고 자막이 붙습니다. 그런데 CP 업무를 해보면 ‘기획’ 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계속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뒤처리하다 보면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드라마의 제작 특성으로 말미암아 프로그램 제작의 권한은 주로 개개 ‘연출’에게 주어져 있고, CP는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한’은 없으나 ‘책임’은 져야 하니 방송사 내부에 CP 일을 좋아하는 PD가 많지 않은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승진을 꿈꾸며 자리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CP의 업무는 반드시 해보아야 합니다. CP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국장이나 본부장을 할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이 자리를 맡아봐야 ‘방송 경영’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후속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내외부의 기획안을 검토하고 드라마의 성공 여부를 예상해 봅니다. 따라서 CP에게는 좋은 드라마를 고를 줄 아는 ‘선구안’이 있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고른 프로그램을 진수시켜야 합니다. 특히 연출자가 신인일수록 CP의 경험과 노하우로 후배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일지매’의 연출을 마치고 한 6개월가량 CP 업무를 보았습니다. 그 6개월 동안 공보다 과가 많았기에 제 윗분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CP 업무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때의 쓴 경험이 제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2008년, 12월에 방송할 월화 드라마 라인업이 흔들렸습니다. 애초에 준비하던 드라마가 무산되었고 새 드라마를 급히 편성해야 했습니다. SBS 드라마 스스로 새 드라마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에 외부에서 드라마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찾은 드라마가 윤 경아라는 신인 작가가 준비한 ‘공부의 신’이라는 기획안이었습니다. 작가의 경험이 부족했지만 입수한 두 권의 대본에 작가의 재치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드라마 국장과 담당 CP였던 저는 ‘공부의 신’을 방송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연출자를 선정했습니다. 당시 선정된 연출은 제 선배였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연출자와 드라마의 톤이 맞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SBS 드라마의 인력난으로 탓에 더 좋은 연출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연출과 작가의 불협화음이 노출되었고, CP가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여 드라마의 대본에 수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무실에서 국장과 CP, 연출자의 고성이 오갔고, 홧김에 ‘공부의 신’의 편성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결과를 비관적으로 예측했던 다른 드라마를 편성했습니다. 


불행히도 예상대로 급히 편성한 드라마는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공부의 신’을 방어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연출자와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싫어한 CP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회사에 피해를 준 것입니다. 그 뒤에 KBS에서 그 드라마를 방송했습니다. 대본이 이상하게 고쳐졌고 애초의 장점이 많이 사라져 저는 더욱 마음이 상했습니다.


또 한 번의 실패담이 있습니다. 2009년 초 SBS 드라마는 드라마 기획안 한 편을 입수합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현대판 이야기로, 실업자 남편을 취직시키는 아내의 눈물겨운 분투기, 그러나 경쾌하고 산뜻한 느낌의 기획안과 대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여섯 명의 CP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저도 좋아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또한 신인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드라마로서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의 굴곡이 깊지 않고, 극적인 구조가 약한 게 흠이었습니다. 자칫하면 화제작은 되지만 시청층이 넓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와 여러 차례 만나서 문제점과 수정 방향을 이야기했고, 회사에서는 드라마의 외주 계약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CP 업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저는 이 작품으로 연출 복귀를 허가받았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었고 이에 SBS도 긴축경영에 들어갔습니다. 외주제작사로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었겠지만, 녹녹지 않은 상황이었죠. 이때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MBC에서 준비하던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란 작품을 엎더니 SBS에서 편성되어 있던 이 드라마에 손을 뻗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SBS보다 거의 오천만 원이나 더 제작비를 책정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주제작사에서는 그간의 과정이나 저와의 관계를 들어 회당 천만 원만 제작비를 인상해 주면 좋겠다고 SBS에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SBS의 경영 분위기, 그리고 제작사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가지가 얽히며 작품은 MBC를 통해 방송하게 됩니다. [내조의 여왕]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여기서 제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작품을 고를 때는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작품 자체의 경쟁력을 보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CP는 항상 협상하고 설득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협상의 대상이 긴축 경영을 하려는 회사이건, 제작비를 더 받으려는 외주제작사이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협상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작품을 버리기는 쉽지만 좋은 작품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셋째, 모든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매 상황 최선의 선택을 하고,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져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소신 있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제 드라마 PD 경력에 ‘손에 물 안 묻히고 쉽게 드라마 만드는 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임감 없이 보낸 육 개월간의 CP 업무를 통해 배운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한 달간 휴가를 간 선배를 대신해 CP 업무 대행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지난 CP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당시의 실수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 뒤 다시 드라마 CP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6년의 시간을 CP로, EP로 SBS에서 드라마를 제작했습니다. 지금 알고있는 것은 드라마의 성공과 실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에서 내려준 한 지침을 가슴에 새기고 드라마를 편성했습니다. 그 지침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째, 'SBS에 수익을 올려주는가', 둘째, 'SBS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SBS의 팬덤 형성에 기여하는가'입니다. 


이 세 가지 지침을 가슴에 새기고, 단위 드라마의 경쟁력을 판단하려 애썼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예측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다수가 손을 든 드라마라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고, 소수가 밀어붙인 드라마가 대박을 친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당시 리더십의 의지와 연출자나 작가의 재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성공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수익성의 여부는 예측이 쉽습니다. 그래서 후자를 근거로 의사 결정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워낙 변수가 많아서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 외에, 당시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중요해 보입니다.(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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