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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4. 2023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012/01/19


스티그 라르손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소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독특한 캐릭터와 특유의 정서로 말미암아 영상으로 옮기기 결코 쉽지 않았을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드리워진 그물처럼 촘촘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옮기긴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텍스트에서 무엇을 넣고 뺄지,  각색의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핀처는 될 수 있으면 소설의 뼈대를 흔들지 않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에서 빠뜨린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사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양날의 칼로 작용했습니다. 소설의 관문을 빠지지 않고 모두 통과하다 보니 영화는 이야기를 요약한 듯한 초조함이 보입니다. 문학의 풍성한 행간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그 틈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메웠습니다. 제 결론은 '영화는 아쉽지만, 그 누구도 데이비드 핀처만큼 이 이야기를 요리할 순 없었을 것이다.'입니다. 문학에 못지않은 걸작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관객에게 묻고 싶습니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요? 이해가 잘되던가요? 소설을 읽을 때 저는 미카엘이 여자 캐릭터들과 벌이는 정사가 무척 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섹스'를 욕망의 발현으로 그리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정사 장면이 너무 두드러져 감정적 교감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그리지 않았나 아쉬웠습니다. 소설 속에서 구체적으로 다가왔던 방예르 가문 각자의 개성이 영화 속에는 무뎌져서 그놈이 그놈 같습니다. 그러기에 영화를 보며 범인 찾기를 하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미스터리 구조는 아주 취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전히 매력이 있습니다. 결국, 원작의 작가가 보여주려 한 것은 '인간의 악마성'이고 그 악행이 어떻게 전염되고 인간을 파괴하는가였습니다. 데이비드 핀처가 이런 원작자의 의도를 작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출가로서 데이비드 핀처에게 항상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 가운데 밀레니엄은 가장 긴 러닝타임인 2시간 40분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 두 시간 사십 분을 관객이 지루할 틈 없이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연출가는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고 스테디캠을 사용하고 화면을 움직입니다. 편집의 템포를 빠르게 해 뮤직비디오처럼 현란한 리듬을 주기도 합니다. 관객이 졸지 않도록 자극하는 거죠. [밀레니엄...]의 카메라는 무겁게 자리를 잡고 안정된 구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콘티뉴어티는 역동적으로 전개됩니다. 비트와 템포는 롤러코스터 영화에서 흔히 보듯 급피치를 올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은 경쾌한 박자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출이 관객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연출의 호흡에 빠져들게 합니다. 이야기의 속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성인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영화의 끝은 소설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살해된 여자의 행방은 소설보다는 더 기발한 해법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과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 준 반전의 집착이 오히려 낡아 보이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살인마가 인과응보를 받는 장면은 영화 속의 설정이 백 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관련이 없는 고속도로에서 범인이 사고로 죽는 것보다는, 삼십 년 전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다리 위에서 최후를 맞는 것이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영화와 소설 가운데 고르라면 저는 소설의 편을 들겠습니다. 제 상상 속의 캐릭터와 공간이 영화보다는 소설이 더 실감 나게 그려졌으니까요. 감독이 한 최대의 실수는 캐스팅입니다. 캐스팅을 보면 범인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기왕이면 소설을 먼저 보세요. 그래야 영화를 맛보는 미각도 훼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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