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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PD Jun 14. 2023

TV드라마의 애프터 서비스

2011/11/01 콘텐츠 진흥원 잡지에 기고한 글.

재화나 서비스를 사들인 소비자는, 돈을 낸 이후에도 생산자가 판매한 상품을 책임져주길 바란다. 이른바‘고객 서비스’나 ‘애프터 서비스’가 바로 생산자의 책임인데, 소비자는 생산자가 상품을 판매한 후에도 소비자의 기대를 계속 충족시켜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생산자에게도 제품의 사후 관리 서비스는 중요하다. 기업은 고객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그 결과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기업의 이미지를 고양해, 이후에 기획되는 새 상품의 판매에도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 서비스의 개념을 방송 드라마 콘텐츠 분야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한국 방송 콘텐츠의 고객 서비스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 콘텐츠의 하자(瑕疵) 관리, 파생(派生) 상품 관리, 커뮤니케이션 채널 관리, 이렇게 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자.


하자가 있는 제품은 교환하거나 수리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방송하는 시점이 되면 그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미리 촬영한 초기 방송분은 제작진의 섬세한 손길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촬영시간이 부족해지고, 그 여파로 후반 작업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편집, CG, 색 보정, 음악 믹싱 등이 얼마나 조악하게 이뤄지는지, 그 참상은 다 전하기 부끄러울 정도이다. 이렇게 급조한 작품들이 방송 직후부터 케이블 TV, IPTV 등으로 재방송되기 시작하고, 심지어 외국으로 수출되기까지 한다. 하자가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생산자로서 부끄러운 지경인데, 그 하자를 수리하거나 교환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이러니 한국 드라마는 ‘볼만한’드라마는 있지만,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한 번 보고 치우는 드라마이지 두고두고 감상하는 작품은 아닌 것이다. ‘디렉터스 컷’이라는 이름으로 DVD를 판매하면서 사후 편집, 보정 작업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실상은 연출가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이름뿐인‘디렉터스 컷’이 많이 나와 있다. 그나마도 한국에서는 디렉터스 컷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조직이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재원을 마련한 특정 국가에서만 발매되곤 한다. 한마디로 한국 방송계는 방송만 하고 사라지는‘먹튀’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실한 사후 관리 체계는 완성된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파생 상품 관리, 2차 저작권의 활용 문제로 이어진다. 종합 예술인 드라마는 다양한 분야로 싹을 틔울 수 있는 콘텐츠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를 통해 캐릭터 상품을 만들 수 있고, 관광 상품을 기획할 수도 있다. 드라마를 다른 장르로 전환해 소설, 만화, 연극, 뮤지컬, 영화로 리메이킹 할 수도 있다. 대본을 수출해 외국 현지의 실정에 맞는 드라마로 다시 제작할 수 있다. 심지어는 여러 개의 드라마를 모아 테마 파크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업계에서 위와 같이 저작권을 활용하는 수준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드라마 제작의 가장 핵심적인 인력, 즉 연출이나 작가, 연기자 등이 2차 저작권의 활용에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2차 상품을 기획, 계발하는 전문인력의 수준이나 질이 높지 않다. 방송사나 제작사에서도 ‘One Source Multi Use’라고 구호만 높고 실질적인 투자나 노력은 하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 오리지날 콘텐츠가 만들어 낸 재미를 2차 상품에서 확대, 재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드라마들이 방송 후에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방송이 끝나고 담당 제작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국내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거의 끝난다.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스태프진들은 모두 해체되고, 그 뒤를 드라마와 관계도 없고, 지식도, 애정도 없는 관료 조직이 이어받는다. 공산품으로 따지자면 AS 센터가 문을 닫은 것과 비슷하다. 방송 후 수익을 받아들이는 창구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물며 외국에 수출된 드라마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새로 소비자가 생기는 만큼 그 지역의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정작 수출 당사자는 뒷짐을 지고 있고 현지 수입상이 모든 책임을 떠맡는다. 외국 드라마 소비자는 제작진과 소통하고 싶어하고, 특히 주요 출연진을 만나고 싶어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고 싶어하는 외국 시청자를 위해, 제작 초기부터 출연진들과 사후 관리에 대해 약속할 필요가 있다. 출연 계약서에 ‘국외 드라마 프로모션’이나 ‘팬 미팅’에 대해서 구체적인 조항과 경비, 시기, 대가 등을 미리 약속할 필요가 있다. 또,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도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드라마의 홈페이지는 방송사의 메인 홈페이지의 하부 주소를 다는 방식이었다. ( 일지매를 예를 들면 http://tv.sbs.co.kr/iljimae/ 이다.) 홈페이지를 방송사의 주소와는 별도로 만들어, 독립된 집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서브 디렉터리에 수출한 해당 국가의 주소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조직화하고 시청자 커뮤니케이션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http://www.iljimae.com/japan ) 또 관리 주체도 제작에 관련이 없는 제삼자가 기능적으로 뽑혀 일하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프로그램 제작진이 계속 담당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대 조직의 수동적인 사후 관리보다는 오히려 드라마를 좋아한 팬들에게 위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고객의 만족도를 강화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고객 서비스 센터"를 운영함으로써 상품을 산 고객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입한 상품의 사용법을 알려 주거나 상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환, 또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우리 방송 콘텐츠는 지금까지 이런 사후 서비스가 부족했고, 있다 하더라도 재방송을 하고 그 수익을 관리하는 차원에 불과했다. 우리 미디어 산업계의 크기나 한류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제 사후 고객 관리 서비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사후 서비스가 없다면 지속적인 이윤 창출도 어려워질 것이고 한류도 한 때 지나가는 유행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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