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죽을꺼]연재 4
스마트폰은 시시각각 손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24시간 쉴새없이 새로운 세상 소식들을 전해주는데, 그런 인터넷 기사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읽는 쏠쏠하다. 기사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과연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찬반양론과 함께 민심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렇게 여론이 갈리고 있구나, 댓글들을 통해서 나 역시도 편을 들고 주장하고 익히고 또 배운다. 댓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 중 하나는 이야기의 의중을 꿰뚫는 적재 적소에 딱 맞는 소위 말하는 드립력이 넘치는 댓글을 볼 때 이다. 어떤 댓글들을 보면 무릎을 탁 치며 캬 하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한 댓글은 오히려 본문보다 더 기억에 남아 화면을 캡쳐하여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포털사이트에서는 최근 악성 댓글로 인하여 연예면과 스포츠면에 댓글창을 닫아버리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납득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런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쉬움도 느껴진다.
다행히 그날은 정치란의 기사를 읽던 중이었는데, 정치란은 댓글 창이 아직은 닫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 기사는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내용과 함께, 대학교 정원 미달, 그리고 지방의 소멸이 시작되었다라는 내용을 다룬 기사였던 것 같다. 사태의 심각성에 끄덕 거리면서 사람들은 과연 저출산 대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역시나 댓글을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 한 댓글이 눈에 꽂혔다. 자신이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야 우리나라 멋있지 않냐. 자살률 세계 1위, 그리고 출산률 낮기로 세계 1위.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땅. 무슨 지구 종말 영화에 나오는 저주받은 땅 같아 ㅋㅋㅋ”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땅. 그 댓글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댓글에는 나와 같이 공감하던 이들의 엄지척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그 댓글처럼 우리나라는 점점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루에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반면, 800명이 안되는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다. 통계상 대한민국의 인구는 하루에 80명씩 줄어들고 있다. 지방에 산부인과는 점차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장례식장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설령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기를 갖는다 하더라도, 수 많은 숫자의 아기들이 낙태라는 과정으로 엄마의 뱃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시작된 교육. 세계 고등교육 1위. 그러나 정작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세계 1위. 어렵게 어렵게 유년시절을 거치고 청소년이 되었으나, 아이들은 답답한 나머지 팔목을 면도칼로 긋고 피를 내어 자해를 한다. 체할 때 바늘을 찔러 손가락을 따야 체증이 풀리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할 때 칼로 팔목을 그어 피를 봐야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다. 팔목 자해를 그들은 바코드라 불렀다. 그마져도 넘어서지 못하는 아이들은 결국 옥상에서 뛰어 내려 짧은 생을 마감한다. 10·2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 어렵게 어렵게 다시 대학 시절을 거쳐 취업경쟁을 뚧고 시작한 사회생활. 연간 노동시간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길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다가 사망하는 산재 사망률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힘내어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갑작스런 질병이나 사고, 파산 등으로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가 없고, 나라에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사회복지는 세계 평균보다 낮은 하위 수준. 빚은 빚대로 많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빚을 내어 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땅과 주식과 비트코인에 올인하지만, 그마져도 결국 실패하여 다시 또 삶을 마감한다. 결국 어렵게 어렵게 노인이 되기까지 살아남았지만, 노인빈곤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결국 온전한 삶을 다 살아내지 못하고 자연사가 아닌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노인자살률 1위.
결국 대한민국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모든 과정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는 마치 컴퓨터 게임과 다를바가 없다. 한 발 한 발 낭떠러지 사이에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죽음은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사이사이에 함정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죽어도 된다고 말한다. 저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죽는게 낫지 서로를 위안한다. 아기를 키우기 어려우니까, 원하지 않았으니까 죽여도 된다고 말한다. 배우는 공부가 많으니까, 행복하지 않으니까, 친구들이 괴롭히니까, 따돌리니까, 우울하니까, 죽어도 된다고 말한다. 취업하지 못했으니까, 못났으니까, 돈을 벌지 못하니까, 장애를 가졌으니까, 남들에게 폐를 끼치니까, 병에 걸렸니까, 나이가 들었으니까, 치매에 걸렸으니까, 사람 구실을 못하니까, 똥오줌을 못가리니까 죽어도 된다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치매에 걸린 노모를 부양하던 자녀가 엄마의 목을 조르고, 또 홀로 쓸쓸이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가족들은 끊어진 인연이라며 시신 조차 거부하며 죽어도 된다고 말한다. 삶의 이유는 찾아볼 수 없고, 죽어야 할 이유만 가득한 이 땅에는 오직 생명의 빛은 꺼져가고 죽음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비록 죽음을 이야기 하지만, 생명을 이야기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죽음을 이야기 하기 위해선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삶을 이야기 하지 않는 죽음은 거짓이고, 죽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 삶은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싶다. 우리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공부를 못해도, 친구들이 따돌려도, 돈을 벌지 못해도, 취업을 못해도, 장애를 갖고 있어도, 성소수자라도, 사람 구실을 못해도, 아파도, 나이가 들어도, 혼자 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죽지 말고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다시 살아 갈 수 있게끔, 일어설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는, 살만한 그런 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괴롭고 의미가 없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그러나 모든 꽃이 봄에 피지는 않는다고, 인생이라는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결말을 알 수 없다고, 어떤 이유라도 우리는 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에 한번만 더 살아보자고,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이 땅에서 꺽이고 시들고 주저 앉아버린 죽음이 아니라, 온전히 삶을 살아내자고 그리고 그 끝에 다시 생명을 피워내는 죽음을 맞이하자고, 씨앗 삼아 한번 살아보자고 말하는 그런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죽음이란 껍질을 갈라 생명을 피워내는 그런 강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명은 없고 죽음만이 가득한 이 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