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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 Apr 30. 2016

#. 2 잠이 든 그와, 살아가야 하는 나는.

강가의 상담일지

#. 2 잠이 든 그와, 살아가야 하는 나는. 


  3년 전,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을 보조해주는 사감을 하고 있었을 때 마음이 쓰이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가 처음 학교로 들어오던 날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비가 오던 날, 차 밖으로 절대 내리지 않겠다는 아이를 끌어내 달라고 그의 엄마는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어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려 짐짝처럼 옮기는데, 이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싶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일그러지고, 집 밖으로는 일체 나가지 않고 게임만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로 데려왔던 것이다. 짐짝처럼 옮겨진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돈이라도 쥐어주고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의 엄마를 보고 있자니 그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맘이 들었다. 



 내가 그에게 좀 더 마음이 쓰였던 건, 10년 간 게임중독으로 지낸 우리 오빠와 옆에서 속이 까맣게 탄 우리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한 학기를 함께 보내면서 몇 번이고 그 아이는 내게 돈을 빌리러 왔다. 집에 갈 차비였다. 나는 얘기를 붙일 구실로 집에 가고 싶은 맘이 얼마나 간절한 지 들어보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왜 그렇게 사냐는 설교 말고, 이야기를. 둘 다 동물농장을 즐겨본다는 것 말고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대화는 없지만,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면서 한가한 말들이 둘 사이로 오가곤 했었다. 여름이 지나면서 창백했던 그의 피부도 조금씩 그을어져 갔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서 나는 그에게 차비 만원을 빌려줬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이 집으로 직접 찾아갔지만 그를  또다시 억지로 끌고 나올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학기가 다시 시작되면서 학교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고 그의 이름이 회의 안건에 언급되는 것이 줄어들면서 점점  잊혀지게 되었다. 2학기에 인도와 네팔로 약 3달간 해외 이동수업을 다녀온 뒤에 온 기력이 바닥을 쳤고, 나는 1년 만에 도망치듯 학교에서 나와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의 장례식으로 향하는 데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억지로 학교에 끌려왔던 모습을 보았을 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생각은 변했다. 한 번 더 억지로라도 그를 끌고 나왔어야 했고, 홀로 두지 말았어야 했다. 



 10년을 게임만 하며 속을 썩이던 나의 오빠는 어느 순간, 게임을  그만두었다. 게임보다 사람 만나는 일이 좋아졌단다. 10년 만이었다. 의아했다. 학교건, 어떤 공동체건 갈 때마다 며칠 만에 때려치웠고, 상담을 받다가도 피시방으로 새고, 좋다는 약도 먹어보고, 엄마가 종교를 넘나들며 기도를 하러 다녀도 늘 변할 것 같지 않던 오빠였다. 어느 시기엔가 엄마와 나 모두 오빠를 포기했고 내버려두었다. 피시방에서 이삼일을 꼬박 새우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섬뜩해졌다. 헌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닌데 오빠는 스스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게임중독에 대한 나의 답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억지로 떼어놓으려고 하면 당사자도, 주위 사람도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졌다. 무엇이 오빠는 살아서 변하게 하고, 그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도록 한 걸까?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정도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그는 그럴 운명이었던 것일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 꼭 나약한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죽음은 허무하고 안타깝게만 다가왔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억지로라도 끌어내어 볕을 보게 하는 것이었을까? 부서질 것 같은 가슴을 매어 잡고 있는 그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떠나보내고 살아가야 하는 이의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만 보였다. 어떤 말로도 그녀를 위로할 수는 없었기에, 모두들 한 번씩 그녀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를 먼 곳으로 보냈지만 맘속에 그가 남았고, 풀어 가야 할 질문도 남았다. 특별한 개인의 문제와 그가 속한 사회의 문제는 쳇바퀴처럼 맞물려 있지만, 치유법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회복과 치유법을 찾아주는 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꿈꾸게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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