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우일 Jun 14. 2024

합장(合葬)

-단편소설 습작 1

1


  새벽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진호야 …… 할 …… 머니가 돌아가셨어.”

  폐암으로 투병을 이어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엄마는 일 년 동안 할머니 간병인으로 곁을 지켰다. 낮에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돌봤고, 저녁에는 퇴근한 엄마가 할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내는 것부터, 목이 마르면 물을 입안에 흘려 적셔주는 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이틀에 한 번씩은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내는 일까지 능숙하게 했다. 할머니의 성격이 특별히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엄마는 한 고등학교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떡볶이와 라면 등과 같은 분식을 팔고 저녁쯤 문을 닫으면 집에 들어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얼마나 쉬고 싶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할머니의 굳은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몸을 주무르거나 곁에서 TV를 켜두고 적적했을 할머니를 위해 담소를 나눴다. 물론 대부분 엄마가 할머니 곁에서 혼자 떠들었다.  

  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그 젖은 목소리에서 어떤 파문이 일었다. 마치 그 목소리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의 문양을 새겨넣은 것 같았다. 내가 엄마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먼저 들었던 생각은 기다리고 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의 감각이었다. 어떤 담담함, 안타깝기는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예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닌 것 같았다. 내게 전화하기 전에 많이 울었던 듯이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겨우 슬픔을 추스르고 할머니의 임종을 나에게 알린 것 같았다. 엄마의 간병으로 할머니의 투병 생활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길어진 투병 기간만큼 할머니가 견디어야 할 고통도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지금 돌아가신 것이 할머니에게도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매일 할머니의 병든 육신은 음식을 잘 섭취하지 못해 메말라갔다. 검버섯이 핀 손에는 항상 링거가 꽂혀 있었고, 주름진 얼굴에 숱이 적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의 눈은 서서히 탁해져 갔으며, 폐암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침상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할머니의 몸이 말라가며 근육의 힘이 빠져 걷기 힘들어했다. 용변도 잘 보지 못하던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기저귀를 차야 했다. 할머니가 머무는 안방은 그래서 문을 열면 악취가 올라오고는 했다. 서서히 할머니의 몸은 진이 빠져나갔고 뼈만 남은 얼굴은 생기를 찾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묵묵히 자기 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견뎠다. 그 고통을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이미 출가해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할머니의 병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엄마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어디에 모셨어?”

  “○○동 ○○장례식장.”

  “응, 알았어. 엄마. 바로 내려갈게.”

  나는 통화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차를 운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나의 고향 집은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다. 산자락 밑이라서 산에는 꽃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었고, 산의 능선을 따라 편백 나무들이 솟아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 산자락 마을은 그 영향을 받는다. 봄에는 흙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했고, 여름에는 꽃들이 만개했으며, 가을이면 낙엽들이 집 대문 앞에 수북하게 쌓였다. 그리고 겨울이면 그 추위가 다른 동네보다 더해 칼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해가 떠오를 무렵 집에 도착했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인지라 제법 날이 쌀쌀했다. 차를 주차하고 대문 앞으로 갔다. 그 앞에는 가을 낙엽이 쌓여있었다. 문을 열자 곧 마당이 보인다. 엄마가 마당 손질을 해놓았는지 작은 정원이며, 그 앞에 쌓인 장독이며 그 모습이 정갈했다. 나는 마당을 통과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온기가 남아있었다. 내가 잠시 집에 들릴 것을 알고 엄마가 보일러의 불을 올려둔 것 같았다. 

  나는 당분간 고향 집에서 지내기 위해 챙겨온 짐을 이전부터 내가 쓰던 방에 가져다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에 할머니가 쓰던 방으로 가서 그 안을 둘러보았다. 방은 할머니가 쓰던 모습 그대로였다. 안방에는 요즘 찾기 힘든 갈색의 장롱과 서랍장이 보이고 할머니가 투병 중에 쓰던 침구도 잘 개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이 방이 뭔가 가득해 보였는데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서인지 텅 빈 것만 같았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침상에 누워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숱 없는 파마머리에 검버섯 가득한 주름진 얼굴로 내가 집에 오면 희미한 미소로 입술을 어렵게 떼고는 했다. 할머니 얼굴에 내가 귀를 가져가면, ‘밥은 먹었냐, 하는 일은 잘 되고 있냐, 손주며느리는 도대체 언제 보여 줄 거냐.’ 등등을 물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밥도 잘 먹고, 회사에서 일도 잘해 팀장에게 칭찬도 받았으며, 손주며느리는 앞으로 생길 거니까 할머니도 건강을 회복해 그때까지 오래 살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로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를 드러내 보였다. 그랬던 할머니가 이제 없다.      



2    

 

  오랜 세월동안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가 나를 낳고 아버지와 신혼살림을 차리고 살던 일 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두 사람은 같이 살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같이 산 것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면서부터이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작업을 마치고 차를 운전해 퇴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충돌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트럭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엄마는 졸지에 미망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엄마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엄마 생애에 있어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버지밖에 없었다. 엄마는 보육원 출신이었다. 엄마는 자기 부모에 대해 평소 말하지 않았다. 아마 엄마도 부모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육원에 맡겨지기 전까지 엄마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푸른색 목도리에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다급하게 자신을 두고 뛰어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누가 볼까 두려워 주변을 살피다가 다급히 사라지는 소녀의 모습으로 추측하건대, 네 외할머니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예전의 그 기억마저 이제 희미해져 친모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지금은 없다고 했다. 

  엄마가 보육원을 나온 것은 만 십팔 세가 되는 해였다. 보호 종료 아동이 된 엄마는 보육원으로부터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 셋방을 구한 다음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한 엄마가 잘할 수 있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처음 한 일이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였다. 

  아파트 입구에 서 있다가 경비아저씨의 눈을 피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전단지를 붙이거나,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면 일당으로 오만 원을 받았다. 이외 엄마는 각종 아르바이트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모 지역 건설 현장에서 영수증을 정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엄마는 그곳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만났다. 

  건설 현장 노동자라고 해서 거칠 줄 알았던 아버지는 부끄러움이 많은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 엄마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고 한다. 아버지의 끈질긴 구애를 엄마는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엄마가 자신은 어디 의지할 곳도 없는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엄마는 서서히 사랑을 키웠고 결혼을 약속했다.

  처음 아버지와 엄마가 할머니에게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엄마가 보육원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들이 비록 가난한 집안의 노동자 출신이지만 평범한 여자와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할머니는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보기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생긴 혹이었다. 아버지에게 안 좋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도움을 구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가 교육을 잘 받아서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또한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 집 안의 안사람으로서 남편을 잘 내조할 수 있겠냐는 걱정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는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반대는 두 청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만남을 계속 이어갔고 끝내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잉태되었다. 이 사건으로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역정을 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드디어 할머니의 결혼 허락이 떨어졌고 아버지는 엄마와 다음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한 이후 할머니의 우려와 달리 아버지와 엄마는 깨를 볶으며 살았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엄마가 나를 출산하면서 할머니의 화도 누그러졌다. 엄마에게는 아버지와 함께한 일 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엄마에게 가정이 생겼고 성실하고 든든한 남편으로 두었으며 그 사랑의 결실인 나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가정에 어둠이 덮쳤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잃고 앓아누웠다가 엄마 품에 안긴 나를 보고 의지를 다졌고,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에 내몰렸다. 슬퍼할 틈도 없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트럭 기사에게 합의금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버지와 살던 신혼집 전세금과 합의금을 합쳐 학교 앞에 작은 분식집을 차렸고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손에서 컸고, 엄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나가야 했다.    


 

 3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평소 친분이 있던 마을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장례식장을 찾은 문상객들은 상주인 나에게 할머니께서 천수를 누렸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문상객들은 할머니를 곁에서 간병하던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뒤로 묶고 검은 머리핀을 꽂은 검은 상복을 입고 문상객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문상객들은 엄마를 볼 때마다 할머니를 간병하느라 고생했다며 위로했다. 엄마는 문상객들에게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희미한 미소를 내보이며 애써 자신의 슬픔을 감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차분히 할머니의 빈소를 지켰다. 그때 마침 할머니 곁에서 간병을 도와주었던 아주머니가 빈소를 찾았다. 아주머니는 국화를 할머니의 영정 앞에 올린 뒤에 가볒게 목례하고 나에게 말했다. 

  “진호 군,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상심이 크겠어요. 아마 할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아주머니, 그동안 애써 주셔서 감사했어요.”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엄마가 더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곁을 돌아가실 때까지 큰일 없이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머니의 덕이 컸다. 아주머니는 밖에서 문상객들을 맞고 있는 엄마가 있는 쪽을 보며 나에게 말했다.

  “사모님이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나 우시던지. 그 모습을 보는데 저도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네. 저하고 통화했을 때도 울먹거리더군요.”

  “사모님 같은 분이 없어요. 저도 이 일을 오랫동안 했지만 사모님처럼 환자에게 정성인 사람도 없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가 아프다고 얼마나 신경이나 쓰나요. 자기들 살기 바쁘다고 돈이나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미뤄두지.”

  아주머니는 요즘 세태를 언급하며 혀를 찼다. 나도 아주머니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뜨끔했다. 서울에 취직해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이유로 엄마의 계좌로 간병비로 돈을 조금 보내면서 마음의 짐을 모르는 척 엄마에게 미뤄두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네. 그렇죠.” 

  아주머니는 혀를 차다가 말했다.

  “사모님이 얼마 전에 겨울이 왔다고, 어머님 춥지 말라고 입을 옷이라도 준비해야겠다고 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할머니께서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가셨네요. 그래도 겨울보다 가을이 낫죠. 겨울보다 그래도 가시는 길에 볕이 있는 날이 나으니까.”

  “그러게요. 아주머니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힘든 사람 붙잡고 주책을 부렸네. 저는 가볼게요. 힘내요.”

  아주머니는 나에게 인사하고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는 아주머니의 손을 붙잡고 반갑게 맞았다. 둘은 무슨 할 말이 많은지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고 조문객들의 발길은 밤 열 시쯤이 되어서야 끊어졌다. 

  비로소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할머니 영정 앞에는 조문객들이 헌화한 국화꽃이 가득했다. 사람들의 목소리로 웅성거리던 빈소가 조용해졌다. 피로를 풀기 위해 나는 장례식장 바깥에 있는 흡연실로 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가 조용히 타들어 갔다. 나는 연기를 내뱉으며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밤이 청청했다. 그렇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때 엄마도 빈소를 비우고 나에게 다가왔다.

  “애 뭐하니?”

  “잠시 답답해서 나왔어.”

  “그거 한 대만 줄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엄마도 담배 피워?”

  “아니. 근데 …… 네 할머니 영정 사진 보니 담배 생각이 나네.”

  나는 엄마에게 담배를 꺼내주었다. 곧 엄마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엄마가 문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엄마는 담배 연기를 조금씩 들어 마셨다. 그러더니 이내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 

  “맵다 매워.”

  나는 콜록거리는 엄마 등을 두드렸다. 

  “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러셨어. 자신에게 담배가 남편이자, 친구이자, 아들이라고. 입에 물고 있으면 근심도 태워진다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 이제야 조금 알려나?”

  엄마는 기침이 좀 진정이 되었는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밤하늘을 살피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많이 울었는지 눈가에 붓기가 있었다. 

  “진호야, 네 할머니 가시기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글쎄. 추측이 안 되는데?”

  나의 궁금한 표정에 엄마가 혼자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나보고 독한 것이래. 진작에 자기 말 좀 듣지. 이제는 자기 수발까지 들다가 다 늙어서 시집가지 글렀다나?”

  “할머니답네. 엄마는 다시 시집갈 마음은 있고?”

  “네가 엄마를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이래 보여도 아직 어디 가면 좀 먹히는 비주얼이거든. 엄마가 마음만 먹어봐라. 이 동네 홀아비들은 죄다 우리 집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걸.”

  엄마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농담하는 것을 보니, 엄마가 다행히 할머니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네 할머니가 이제 하늘에서 좀 편안했으면 하네.”

  담담하게 엄마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할머니는 이제 편안하실 거야. 이제 엄마만 편해지면 돼.”

  나의 말에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같이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4   

  

  장례식은 삼 일이 지나고 사 일째가 되는 날 할머니의 시신을 화장해 그 유해를 봉안당에 봉안하고서야 끝났다. 나는 당분간 엄마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며칠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엄마는 장례식이 끝나자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했다. 

  할머니가 입던 옷가지들과 침구류 그리고 외출할 때 쓰던 나무 지팡이까지 마당에 모아서 큰 철통에 넣고 불을 붙였다. 철통에 담아둔 유품들이 타올랐다. 작은 불씨가 점점 커졌다. 타들어 가는 불이 허공을 휘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품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엄마의 검은 눈동자에도 불꽃이 일렁거렸다. 정성스럽게 물건을 태우며 엄마는 두 손을 모았다.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의 혼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엄마는 눈을 슬며시 뜨고 말했다. 

  “너 왜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유품을 모아서 불로 태우는지 아니?”

  “잘 모르겠는데.”

  “생전에 쓰던 유품을 태워서 고이 하늘에 올려보내는 거야. 그러면 망자가 그 유품을 가지고 하늘에서 다시 살아가. 이곳에서의 삶이 죽은 다음에도 저쪽 세상에서 다시 반복되는 거지. 할머니는 그러니까 저곳에서 다시 살고 계시는 거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망자의 물건을 태워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망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도 해. 망자의 흔적이 지워지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망자를 서서히 망각해 가겠지. 그러니까 망자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야 사라지는 거야.” 

  엄마는 불쏘시개로 철통에 담긴 유품들이 잘 타도록 이리저리 쑤셔댔다. 

  “그러면 할머니는 지금도 저쪽 세상에서 살아계신 거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엄마! 그런 데 그런 것은 어떻게 알았어?” 

  “네 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정리할 때 네 할머니가 해준 말이야.”

  “할머니가?”

  “응. 그렇다니까.”


  진호 애미야,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서로를 보내주어야 산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만 붙잡고 있으면 어디 살겠나. 또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그것은 세상 이치에 어긋나는기라. 죽은 사람은 제 갈 길이 있고, 산 사람도 살아가야 할 길이 있다. 죽은 사람 붙잡고 슬퍼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게 어디 쉽겠나. 내도 내 남편 먼저 병으로 죽었을 때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내미 생각하니 어떻게든 살아지지 않겠나. 이제 내는 아들을 먼저 앞세웠으니 남은 손주 얼굴 보고 살란다. 지지리도 질긴 목숨 내는 죽지 못한다. 남편 먼저 떠나가서 가슴에 묻고, 하나 남은 아들 먼저 앞세웠지만 어쩌겠나. 질긴 생 어떻게든 살아야지. 그러니 진호 애미야, 너도 악착같이 살아서 나중에 진호 애비 만나면 말해줘라. 내 잘 살아냈다고.   

   

  엄마는 불쏘시개로 타고 있는 유품들을 집어서 뒤집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던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네 아빠가 죽고 장례 치를 때 여자 혼자 애를 키운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무슨 수로 먹고살지 막막했어. 나 혼자면 예전처럼 살아도 되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당시 밖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리더라. 기가 센 여자를 집에 들여서 그런다고 말이야. 처음에는 나도 화가 났지. 마음에서 천불이 나는데, 어떤 사람이 모든 불행의 원흉이 너라고 해봐. 사람이 미치고 팔짝 뛸 일 아니니?”

  “사람들도 참 너무하네. 말을 너무 함부로 하잖아.”

  나는 엄마의 말에 괜히 화가 났다. 남편을 잃고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할 말들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어. 사람들이 너무한다고 이미 넘어진 사람 이제 밟기까지 한다고 말이야.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네 아빠에게 날 데리러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냥 차라리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혼자서 집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 그건 엄마 탓이 아니야. 그건 그냥 운이 나빴던 거야.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잖아.”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시간이 지나니까, 내 상황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정신 없이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더라. 일하다가 문득 잠깐 쉬는 때에 나중에는 네 아버지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어. 한 오 년 정도 지났더니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는 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

  엄마는 묵묵히 불쏘시개를 철통 안에 넣고 쑤셨고 나는 조용히 엄마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 좋은 사람이었지. 보육원에서부터 날 짝사랑하던 오빠였어. 그 오빠는 보육원을 나와서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에 취직해 일했어. 연봉도 괜찮고 외모도 나쁘지 않았어. 당시 나도 젊었고 마음 둘 곳 없던 나는 그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었어. 우리는 사랑을 했지. 나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었어. 하지만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더라. 어느 날 네 할머니에게 들키고 말았지. 겨울이라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오빠가 나를 차로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어. 그런데 그 모습을 네 할머니가 장을 보아오다가 본 거야. 오빠는 나를 차에서 내려줬고, 나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지.” 

  나는 엄마가 낯선 젊은 남자의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보지 못한 척 지나가더라.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 어색하게 일주일을 보냈지. 네 할머니는 평소처럼 나에게 출근길에 조심하라고 말하며, 진호 너를 돌보았고 말이야. 퇴근 후에는 저녁상을 차려주었어. 왜일까?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나는 궁금했어.”

  나는 이야기가 궁금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그래서 어떻게 했어?”

  “이대로는 내가 답답해서 안 되겠더라. 그래서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먼저 말을 꺼냈지. 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이야. 어머님이 반대하셔도 그 사람을 기어코 만나겠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네 할머니가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말하더라.”     

‘내가 뭣이 중하나. 네 인생이 중하지. 진호는 내가 거둘테니, 넌 아무 말 말아. 그놈이 내 아들보다 좋은 놈이면 가서 행복하게만 살아. 내가 손주 새끼 굶기기야 하겠나. 긴말은 안 하니 신중히만 결정해라.’      

  엄마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날 밤이었어. 나는 많은 생각에 잠들지 못했어. 정말 어머님 말씀처럼 그래도 될까? 너를 어머님께 맡기면 선배와의 사랑도 더 순탄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고 거실로 나왔지. 그런데 네 할머니가 머무는 방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길래 그쪽으로 가봤어. 그랬더니 어머님이 네 아버지 사진을 들고 빤히 바라보고 계시더라고. 그러면서 이러는 거야.”


  이보게, 진호 애비. 그만 우리 진호 애미 좀 놓아주시게. 그만큼 고생했으면 되지 않았나? 자네 팔자가 누구 소관인가. 다 내가 잘못한 탓이네. 진호 애미 팔자가 박복한 탓이 아니라 내 팔자가 박복한 탓이네. 젊어서 남편 잃고 늙어서는 아들을 앞세웠네. 그건 내 팔자지 진호 애미 팔자 탓이 아닐세. 누굴 원망하겠나. 자네의 비통한 심정은 알지. 그것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네. 진호 애미는 그만 보내주시게.    

 

  엄마의 눈가는 서서히 뿌옇게 젖어갔다. 내가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저 옆에서 곁을 지킬 뿐이었다. 도대체 할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엄마가 자신의 곁을 떠나도 좋다고 한 것일까? 젊은 시절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과부가 된 자신을 엄마에게서 다시 보았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할머니가 엄마를 진호 애미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다음 날 사랑하던 오빠와 헤어졌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이별 통보에 상대는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할머니 곁에 남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둘은 헤어졌다. 엄마도 당시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연인과의 사랑보다 할머니의 곁을 더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남긴 유품들이 거의 다 타들어 갈 때쯤에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보지 못했던 푸른색 목도리였다. 그때 나는 장례식장에서 아주머니가 했던 말과 푸른 목도리를 한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푸른색 목도리를 미련 없이 엄마는 철통 속에 던져 넣었다. 서서히 꺼져가던 불이 다시 한껏 타올랐다. 불길은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푸른색 목도리를 휘감았다. 검은 그을음과 함께 목도리는 타들어 갔다. 그렇게 계속 타오를 것 같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엄마는 마저 철통에 남은 불씨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말없이 먼저 마당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엄마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 배고프지? 저녁 준비할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어.”

  엄마는 나에게 말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TV를 켜기 위해 리모컨을 찾았다. 그러다가 소파 앞 탁자 아래에서 노트를 한 권 발견했다.

  나는 그 노트를 집어 펼쳤다. 노트에는 엄마가 남긴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노트의 메모지에는 분식집 운영을 위한 식자재 마트와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또한 노트 사이의 책갈피에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무렵 내가 처음 같이 놀이동산을 가서 찍은 사진이 꽂혀 있었다. 

  그 사진 속의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다리 가운데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는 처음 놀이동산을 가서 설렜던 마음이 기억이나 웃음이 났다. 혼자 웃다가 사진에 희미하게 필기 자국이 보였다.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사진에는 익숙한 엄마의 글씨가 보였다. 그곳에는 ‘엄마와 함께.’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사진을 노트의 책갈피 사이에 꽂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며, 어쩌면 아까 엄마가 불태운 건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만이 아니라 엄마의 삶 뒤에 드리웠던 푸른 목도리를 한 소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저녁 준비에 애쓰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