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있어서 재현의 윤리에 관한 입장
- 윤리적 독법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며
최근 다시 문학에 있어서 '재현의 윤리'가 쟁점이 되는 양상이다. 몇 년 전 재현의 윤리라는 문학계의 문제로 문학평론가였던 형과 말로 다툼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싸움으로 감정이 많아 상하여 절교에 까지 갈 위기에 놓였으나, 다행히 훗날 서로 그날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감정이 격해졌음을 인정한 이후 사과하고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던 것처럼 소설은 '고백의 양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창작물이 허구임을 불문율로 사회 문화적으로 약속을 전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재현에 있어서 '윤리'라는 단어에 의해 문학은 근본적으로 '허구'라는 사회 문화적 약속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필자는 '윤리'라는 말이 불편하다. 신간으로 출간된 평론집을 읽으면서도 느꼈고, 요즘 문학계에 유행하는 텍스트의 윤리적 읽기가 문학과 현실의 관계 사이에 발생하는 잉여와 결여의 차원을 삭제하고 그 관계가 상동성에 기초한 반영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윤리성의 강조가 작가의 집필 과정에서 특정한 미학적 양식적 선택에 관한 자율성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옳은가 고민하게 된다. 자유와 윤리라는 두 가치 테제가 대립하고, 양립하는 양상이다.
문학은 현실적이지만 현실이 아니다. 또한 서사란 허구를 전제하며, 언제나 삶은 문학보다 넓다. 그런데 왜 문학은 윤리적 가치 평가에 의해 모든 문학적 자산을 몇 가지 정치적 언어로 몇 가지 사실 관계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일까? 최근 이러한 윤리적 읽기의 방식에 대해 나름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 김봉곤 소설가 문제도, 텍스트를 허구적 산물이 아니라 윤리 혹은 도덕적 사실의 증거로 환원해 소설이란 초점 나간 렌즈라는 사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의 양식에서 인물은 허구적 구성물이다.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서 모티프를 따올 수 있지만 우리는 허구로 읽기로 약속했다.
만약 그러한 허구적 재현 양상에 반대한다면, 가장 좋은 복수의 방법은 그것에 반하는 다른 허구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재현의 윤리를 따져야 할 소설에 대해 대응하는 공평한 문학적 대결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적 차원 문제를 윤리적 차원으로 환원할 때 그것은 갑자기 링 밖으로 뛰쳐나가서 거리의 룰로 싸우자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또한 작가는 사회적 개인이라는 존재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연습으로 쓰고 있는 단편 소설도 알게 모르게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계를 맺은 수많은 사람들의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녹아있다. 그들 모두가 나에게 재현의 윤리를 근거로 창작한 작품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면, 작가로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작가로서 정석적인 답변은 이러할 것이다. 이것은 허구입니다. 허구라고요! 허구라는 말이 어렵다면, 근본적으로 구라요! 당신이 말하는 그 인물이 당신의 일부일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요. 그렇다면 당신이 아니오.
과연 이러한 답변의 제출이 불가능하다면, 소설은 역사, 정치, 개인의 일기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없다. 작가도 사회의 경험적 차원을 넘을 수 없을 것인데, 소설 쓰기가 과연 가능한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문학에 관해 처음 배울 때 항상 먼저 따라 붙었던 말이 문학은 '허구'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결여와 잉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안에 적힌 것은 언제나 초점을 향하지만 실패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망각하고, 재현의 윤리만을 작가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문학을 사적인 개인의 일기장으로 환원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