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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심 Feb 25. 2016

상실, 그리고 그리움

꿩의바람꽃

                

찬바람 속에서 솜털에  쌓인 채 떨고 있는 봉우리 

숲속에서 꿩의 울음소리라 들릴 때 쯤 꽃을 피운다고 해서 꿩의바람꽃.

이 꽃은 아네모네속에 속한다. 아네모네는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anemos가 어원이다. 

꽃의 여신 플로라의 연인이었던 바람의 신이 플로라의 시녀였던 아네모네를 사랑했다.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버렸고, 끝까지 아네모네를 찾아헤메던 바람의 신이 그녀를 발견하고 끌어안자 플로라가 화가 나서 아네모네를 한 송이의 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 꽃의 영어 이름은 윈드 플라워다. 

사실 이런 신화 속 이야기는 흔해빠진 것이다.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영원한 이별.

어쩌면 그것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이다. 지금도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텔레비전에서 방송하고 있는 드라마의 내용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독 꿩의바람꽃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아마도 '바람' 때문일 것이다.

바람이 품고있는 상실, 그리고 그리움의 이미지.


꽃잎이 없는 꽃, 입술이 없는 입처럼 허전하다


꿩의바람꽃은 사실 꽃잎이 없는 이상한 꽃이다. 누구나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저 하얀 것은 꽃받침이다. 그 안에 암술과 수술이 들어있을 뿐이다. 

왜 이 꽃이 상실과 그리움인지 조금 더 느낌이 온다.

3월 말이나 4월 초, 아직 숲 속에 찬 바람이 부는 때 멀리서 꿩의 울음소리가 들려 봄을 재촉하긴 하지만 숲 속에는 낙엽들만 바스락거리는 그런 계절에 해가 반만 드는 바위 틈 같은 곳에서 꽃잎 없는 꽃, 윈드 플라워가 그 가냘픈 자태를 드러낸다. 






꽃잎 아닌 꽃받침은 흰색에 가까운 연보라색이다


3월이 오면 가장 기다려지는 꽃.

바람의 신이 아니어도 언제까지나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어루만져 주고 싶은 꽃.

흰 눈이 다 녹기 전에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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